캔디캔디

by dropfairy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이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그날의 발단은 <캔디캔디>였다. 캔디는 제쳐두고 안소니랑 테리우스에 푹 빠졌다.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며 로맨스 페이지는 열 번도 더 읽었다. 테리우스가 캔디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은 너무 놀라 닳도록 다시 봤다. 초중학생이 타깃층인데 키스라니? 볼까지 빨개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다.


귀 밑 5센티 단발머리를 얌전하게 귀 뒤로 넘긴 15살 소녀는 <캔디캔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소녀의 책상 위에는 문제집 대신 화려한 삽화가 그려진 명랑소설이 펼쳐져 있었다. 소녀의 눈동자는 바쁘게 종이 위를 훑었다. 안소니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페이지를 되돌아 읽고, 테리우스가 등장하는 대목에선 심박수가 급격히 높아져 손끝이 떨려왔다. 테리우스가 캔디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 소녀는 마치 자신이 캔디가 된 듯 멈칫하며 주변을 살폈다. "이런 걸 봐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과 설렘이 소녀의 얼굴에 교차했다. 소녀가 키스신을 보고 당황하며 심장이 뜨거워진 것은 자신이 마주하게 될 미지의 성인 세계에 대한 첫 예고였다. 소녀는 스스로가 '19금' 수준의 금기를 어겼다고 생각하며 비밀을 간직했다.






"그 책 재밌니? 나도 빌려줘."

"어 재밌긴 한데. 여자애들이 보는 책이야. 오빠는 안돼."

별생각 없이 넘겨주려다가 키스신이 떠올랐다. 테리우스가 글래머를 좋아한다고 했던 대사까지 상기되어 절대 사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은밀한 취미를 고수하기 위해 어떻게든 숨겨야 했다.


"너는 꼭 매를 벌어.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맞잖아."
바닥에 쓰러져 꺽꺽거리는 지윤을 내려다보며 나는 손등의 붉은 자국을 살폈다. 내 눈에서 보았던 그 눈빛을, 이제는 내 친동생이 나를 향해 보내고 있다. 주먹을 모로 쥐고 숨을 몰아쉬었다. 애들 보는 소설책 좀 읽자고 했더니 기를 쓰고 안된다고 달려드는 건 무슨 심보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우스운 건지 나를 무시하는 건지, 통제하지 못하면 내가 통제당할 것 같은 압박감에 정당한 힘을 행사했다.


"새끼야, 군대가 놀이터 같지? 네가 빠지면 네 밑에 애들도 다 빠지는 거야. 그게 싫으면, 네가 알아서 잡아."

김 일병의 뺨을 연달아 후려치던 박 상병의 손바닥은 묵직하고 뜨거웠다. 몇 차례 반복된 무자비한 폭력이 멈춘 순간, 내 군 생활의 혼란도 멈췄다. 알아서 비위를 맞추고 저절로 기어 다니며 어느 누구에게도 맞지 않을 태세를 갖췄다. 고통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언어였다.


'새끼'라고 불리며 박 상병의 무자비한 폭력 아래 비위를 맞추고 기어 다니던 청년은, 그 고통을 가장 확실한 언어로 받아들였다. 그는 생존을 위해 폭력의 계승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지윤의 비명이 파열음이 되어 벽에 부딪혔다. 오빠는 지윤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통제당하지 않는 강자임을 확인하려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다시 피해자가 생겨나는 연쇄 고리가 늘어졌다.






"테리우스의 입술이 캔디의 입술에 닿는 순간을 수백 번 상상하는 동안, 한강 한복판의 다리가 꺾여 내려앉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994년 10월 21일 자 신문지에 박힌, 허리가 뜯겨 나간 다리의 흑백 사진은 볼수록 기괴하다. 거리에는 김건모의 레게 리듬이 신나게 울려 퍼지고 '1인당 GDP 1만 달러 돌파'라는 뉴스들이 쏟아졌지만, 나에게 이 세상은 그저 무너져 내린 '붕괴의 시대'일 뿐이었다. 오전 7시 38분, 평범한 등굣길의 여고생들과 서둘러 버스에 올랐던 출근길 직장인들이 차디찬 한강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운 '부실'과 '방치'라는 단어들은 어른들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자화상을 그렸다. 그들이 쌓아 올린 탐욕 아래 아무 죄 없는 우리 이웃의 여린 숨결이 끊어졌다.





입안에 떫은 풋내가 가득하다. 위액이 변기 속으로 쏟아질 때 심장이 으깨진 줄 알았다. 뭉그러진 벌건 토마토 덩어리와 반쯤 녹아 형체가 으스러진 흰 알약의 잔해들이 왈칵 쏟아졌다. 지윤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입술 위로 번진 붉은 과즙은 전투를 앞둔 전사의 치장 같았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그해, 누군가는 풍요의 미래와 유행가에 취해 있었고 누군가는 끊어진 다리 위에서 울었으며 누군가는 화장실 바닥에서 자신만의 신화를 끝내려 하고 있었다.


바닥에 너절하게 쓰러진 책장에서 책들이 도미노처럼 드러누워 기하학적 패턴을 구성했다. 지윤은 바닥에 널브러진 책 중에 '카뮈'의 책을 건졌다. 시지프는 바위를 밀어 올린다. 시지프는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를 향해 산을 내려간다. 얼마 전까지 그것은 무의미한 형벌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끝없이 반복될 것을 알면서도 산을 내려가는 시지프의 발걸음은 절망이 아닌 자각이다. 지윤은 꼬불꼬불 스프링으로 꿰어 놓은 연습장에 투박하게 깎은 4B연필로 진하게 덧칠했다.


늙어 죽음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쇠락이나 시간의 흐름에 내맡겨진 수동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지윤에게 늙어 죽는다는 것은 삶이라는 육중한 바위를 단 한 번도 놓지 않고 정상까지 밀어 올린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최후의 승전보였다. 단번에 생을 끊어내는 것은 찰나의 결단이면 충분하지만 신이 내린 이 장기적인 형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은 고독한 전사의 끈질긴 투쟁이다. 주름진 살갗과 굽은 등은 굴욕의 흔적이 아니라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나로 존재했다는 훈장이다.






"내가 죽고 싶은 건 사실 세상을 향한 거대한 욕심 때문일지도 몰라."

지윤이 느끼는 죽음의 유혹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마지막 반항이었다. 오빠가 박 상병에게 배운 고통의 언어로 지윤을 변화시키려 했다면, 지윤은 그 언어를 거부하고 침묵의 세계로 돌아가려 했다. 욕심이 커서 현실의 작은 균열조차 견디지 못하고 쉽게 죽음을 떠올렸다. 지윤이 마주한 어둠은 그 어떤 문학적 수사보다도 무겁고 실존적이었다. 지윤의 자살 결심은 가장 완벽한 삶을 살고 싶었던 욕심의 반증이었다.


내가 죽으려 했던 이유는 삶이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무의미한 삶을 견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윤은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다음 문구를 발췌했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아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운명에 대한 가장 뜨거운 반항이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그녀에게 삶은 해답을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끝까지 버텨내며 누려야 할 '투쟁의 장'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죽기 위해 애쓰지 않기로 했다. 늙어 죽는 날까지 시지프처럼 묵묵히, 그러나 명료한 자각을 품은 채 산을 오르내리기로 했다. 연습장 위를 진하게 채운 연필 자국처럼 그녀의 생도 그렇게 겹겹이 쌓기로 했다.


한강의 다리는 끊어졌고 세상은 붕괴의 전조로 가득했지만 나는 생전 처음 '살아보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4B 연필 끝에서 시작된 투쟁이 나를 어떤 노년의 풍경으로 데려다 놓을지, 그 길에서 어떤 핑계를 마주하게 될지 겪어보고 싶어졌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