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놓친 거지?"
바람이 불어 가지가 서로를 스쳤다. 아버지의 유해가 뿌려진 이곳은 설백의 살갗을 드러낸 나무들의 전시장이다. 하얀 몸에 박힌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본다. 작품 같은 전경을 마주하다 그 위에 비친 자신의 초상을 보았다.
"완성은 네 안에 있었다."
현수의 손가락이 마우스 왼쪽 버튼을 광속 클릭했다. 모니터에 모래시계가 잠깐 뜨더니, 기적처럼 [수강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팝업창이 떴다.
"형, '사랑학 개론' 이거 꿀강이래요. 출석만 잘하면 A는 그냥 준다는데? 게다가 타과 여학생들도 엄청 많대요. 완전 대박이죠."
후배의 설레발에 못 이기는 척 '꿀강'을 잡았다. 사실 나한테는 학점보다, 시끄러운 과방 분위기를 피할 구실이 더 필요했다. 통장 잔고와 물감 튜브의 무게를 저울질해야 하는 일상은 동기들의 위로나 격려도 소음으로 만들었다. 수업 시작 한참 전, 아무도 없는 적막을 차지하려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맨 뒤 벽면 구석자리. MP3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이어폰 너머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죠
그댈 위해 해줄 게 없어...
색을 아낌없이 캔버스에 쏟아붓던 계절은 지나갔다. 현실이라는 채권자가 들이닥친 뒤로, 그의 세상은 빛을 잃고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그 기억들이 선율을 타고 가슴 위로 툭툭 떨어진다. 가사 속 주인공처럼 그는 한참 동안을 비틀거렸다. 세상에 내가 없다고 믿으라며 모질게 돌아섰다.
"사랑? 연애? 나한테는 사치다. 조용히 학점이나 채워야지."
강의실로 들어오다 채워져 있는 한 자리를 보았다. 빈자리가 가득한데 여자는 맨 앞줄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강의가 시작되어도 자꾸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피부는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도드라졌고, 단정하게 자란 흙갈색 모발은 윤슬처럼 반짝인다. 내가 사랑했지만, 포기해야 했던 빛의 질감을 닮아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상투적인 말로는 부족하다. 잠깐 마주친 여자의 눈빛이 굳어버린 팔레트 위, 마른 물감층을 자극했다. 여자는 내가 그리다 만 금빛 수채화 같았다.
맨 앞줄 창가, 긴 생머리를 귀 뒤로 넘긴 여자가 앉아 있다. '사랑학 개론' 강의계획서를 읽으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 더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연애 경험이 없는 여자에게 사랑은 배우고 암기해야 할 학문이었다. 공강시간 내내 한적한 강의실에서 책을 읽던 여자는 두 번째 열리는 덜컥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짙은 눈썹을 살짝 가린 앞머리, 반듯한 이마 아래 보이는 깊은 눈, 오뚝한 콧날에 걸린 얇은 그림자. 그는 비밀을 간직한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았다.
"여러분,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사랑을 완벽한 대칭이라 말합니다."
교수는 칠판에 정삼각형 하나를 그렸다. 세 꼭짓점에는 각각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단어가 새겨졌다.
"이 세 요소가 동일한 길이를 유지하며 정삼각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성숙한 사랑'이라 부릅니다. 수학적으로 완벽하고, 심리학적으로 안정된 형태죠."
"사실 사랑의 시작보다 어려운 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수만 배는 더 어려운 건, 그 감정이 깊어지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죠."
교수는 칠판의 정삼각형을 지우개로 슥슥 문질러 지웠다. 상호 직선들이 번지며 모호한 경계가 얼룩처럼 남았다.
앞줄의 여자는 노트를 덮었다.
펜을 필통에 넣고, 책을 크기 순서대로 포갰다.
손끝이 종이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렀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고무창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짧은 마찰음이 났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였다.
하얀 바탕.
검은 눈.
동공 위로 가느다란 선이 겹쳐 있다.
여자의 손이 멈췄다.
종이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남자가 한쪽 어깨에 가방을 걸친 채 서 있다.
손끝에 힘을 주어 액자를 0.1밀리미터 비틀었다. 완벽해 보이도록 미세한 수평까지 반복해서 조절한다. 화가가 아닌 설치 작업가가 된 나는, 예술의 화려한 표면이 아니라 그것을 벽에 단단히 고정하는 이면의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림을 떼려 보니 패널의 작품 설명이 바뀌었다. [항구는 정지된 채 흔들리고 배는 안전한 듯 위태롭다.] 처음에는 이 문구가 아니었다.
내가 미술관에서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 말고 진실을 보세요."
옛 연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복학 후 수강한 교양 수업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불쌍해서 사랑한다고 했다. 내가 이별을 고했고 그녀가 말했다.
"사실 말고 진실을 봐. 네 전부를 사랑하는 내 진실이 안 보여?"
그녀가 내뱉은 '불쌍하다'는 말은 동정이 아니라, 나의 흉터까지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백이 버거웠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내 결핍이 너무 선명해서 발가벗겨진 듯 초라해졌다.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고별을 택했다.
그는 벽에 단단히 박혀 있던 고정 나사를 하나씩 비틀어 뽑아냈다. 끼익 소리를 내며 금속이 긁히는 비명이 전시장의 정적을 갈랐다. 화가가 그려놓은 평온한 풍경화는 벽 뒤편의 보이지 않는 구멍과 노동에 기대어 매끈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현수는 예술의 표면을 지탱하던 그 숨은 지지대들을 하나씩 해체해 나갔다.
"아빠, 내가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는 거 봤어?"
지윤이의 목소리가 자작나무 숲을 메아리쳐 다시 돌아왔다.
삶은 때때로 도취와 공허 사이를 비틀거리며 찌그러진 삼각형들을 그려내지만, 그 미숙한 스케치들이 모여 한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 완벽하지 않은 선들이 겹치고 부딪쳐야 비로소 형체가 선명해진다.
"아빠, 내가 만든 지도를 따라 걸어 볼게."
하얀 몸, 검은 눈앞에 섰다. 아빠가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졌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지만 숲의 숨결로 남아 나를 지켜본다는 건 진실이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지속이었다.
사랑은 상대의 이상형이 되는 과정이 아니다. 자기 자신으로 더 깊어지는 과정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손끝에 길들여지는 물감이 되지 않기로 했다. 내 색깔을 잃으면서까지 타인의 그림을 완성해 줄 필요는 없었다. 남이 그리는 풍경화 속 배경이 되기보다, 나만의 색채를 가진 문장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