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밀었을 때 종은 울리지 않았다. 딸랑, 대신 적막이 갈린 입자가 손가락 마디에 걸렸다. 소리는 없었는데, 분명 무언가 지나갔다. 잠깐 문고리를 쥔 채 멈춰 섰다. 어디선가 끊어진 것 같았다. 기척은 남지 않았는데 지나간 자리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손을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납작했다. 천장이 높은지 낮은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바닥과 벽의 경계도 분명치 않았다. 모든 게 한 번 눌린 뒤 펴지지 않은 것처럼 얇은 면 위에 놓여 있었다. 발을 디뎠는데, 딛고 있다는 감각이 3/4 박자쯤 뒤에 따라왔다. 물속에서 눈을 뜰 때처럼 늦게 망막에 닿았다.
“찾는 게 있나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형체가 있었지만 윤곽이 맺히지 않았다. 막 떠오르려다 흩어지는 이름 같았다. 입가가 올라간 듯했는데 선은 잡히지 않았다. 눈을 마주친 것 같다가도 금세 어긋났다. 아는 사람 같기도, 막 잊은 사람 같기도 했다.
“아니요. 그냥, 처음이라서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그게 내 목소리라는 걸 알았다. '처음'이라는 말이 입 안에 오래 남았다. 처음일리가 없었다.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지나간 자리라는 느낌이 고여 있었다.
진열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공통된 규칙을 가진 것들이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잔 하나.
손잡이가 없다. 쥐려는 순간, 잡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용기 하나.
바닥이 없다. 채우는 행위가 곧 비워내는 결과로 이어진다.
필기구 하나.
끝이 닿지 않는다. 선을 이어도 최종 지점에 도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앞에서 걸음을 세웠다. 모양은 서로 달랐지만, 움직이는 방식은 같았다. 모두 어떤 동작은 허용하면서도 완성만은 미리 막아 둔 형태였다.
물건 옆에는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쥐고 있는 동안, 비어 있을 수 없습니다.”
“내려놓기 전까지,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손을 내밀었다. 물체를 만지려 움직였으나 손끝에 닿았다는 신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결코 완전할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들이다.
짧게 긁히는 소리가 번졌다. 아버지는 쓰러뜨리기 전에 먼저 방향을 가늠했다. 겉을 두드리며 살피고 보이지 않는 이어짐을 포착한 후 그 위에 도구를 얹었다. 희끗한 몸통 안으로 금속이 밀려들었다.
톱날이 파고들자, 옅은 가루가 허공에 떠돌다 눈발처럼 내려앉았다. 나무가 기울어 쓰러진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걸리는 부분을 찾아 잔가지부터 정리하고 불필요한 선을 잘라냈다.
“여기서 먼저 갔어.”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윤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의 입을 올려다 보았다.
“겉은 멀쩡해도, 안쪽에서 이미 시작된 게 있어.”
나는 그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두터운 손이 가리키는 동심원 한 편에 실금이 가 있었다.
“끝까지 가는 건 없어.”
토막 난 통나무들이 차례로 실려 나갔다. 묶인 채 끌려가며 텁텁한 하얀 냄새가 뿌옇게 퍼졌다.
“가져가시겠습니까?”
질문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일을 확인하는 문장에 가까웠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말부터는 나와 물체의 대화 같았다.
“얼마인가요?”
“값은 없습니다.”
“대신 하나를 두고 가셔야 합니다.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이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걸렸다. 가지고 있는 것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같지 않았다. 무엇을 내야 하는지보다, 이미 내 쪽에서 이탈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에 더 오래 매달렸다.
나는 빈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그리고 하나를 택했다. 문을 밀고 나왔지만 진동은 없었다. 살갗을 스치는 잔상만 남았다. 밖은 어둠 속에 선명했다. 먼지 냄새, 가로등 불빛, 차량 제동음까지 모두 제 때 도착했다.
한 발을 내디뎠다. 짧은 공백이 있고, 뒤늦게 나머지가 따라붙었다. 중간에 멈춰 섰다. 방금 무엇을 두고 나왔는지 상기했다. 쥐고 있는 건 분명했다. 버린 건 선반 어딘가에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제야 이름이 붙었다. 마수걸이.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아니라, 안쪽의 무게를 덜어내는 절차였다.
지금 이 문장을 이어가는 쪽은 누구인가. 문을 통과한 쪽인가, 아니면 그 안에 남겨진 부분인가.
처음의 자리에는 항상 아무도 없다.
가게 주인을 찾으려는 사유가 길어지자 어릴 적 교실 공간이 겹쳐 떠올랐다. 눈을 들이대고 비틀 때마다 무늬가 달라지던 장면. 안쪽에는 조각들이 있었다. 유리와 금속, 그리고 작은 붉은 점 하나.
돌리면 새로운 장면이 만들어진다고 믿었지만, 실은 같은 축을 반복해 되짚고 있었을 뿐이다. 무언가를 더해 부풀리는 대신, 빠져나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통을 내려놓듯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번에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