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살아가리다
"아프지 않고 사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시구를 읽듯 속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마흔 중반쯤 사니 중간중간 아픈 일 투성이다. 뒤틀렸던 대학입시부터 첫 사랑앓이, 그리고 스물여덟의 이혼, 이후 18년 동안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며 왜 아프지 않았겠는가.
도망치고 싶었다. 다 버리고 훨훨 떠나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았다. "비구니가 되면 나을까, 아예 죽어버리는 게 나을까?" 고민하다 결국 둘 다 못했다. 내가 사라지면 내 부모는 자식을 잃고, 내 자식은 부모를 잃게 되니 도리가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적고 읽고 되뇌면서 버텼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연필을 쥐고 치부를 드러내며 나를 위로하는 글을 썼다. 또박또박 글자를 새긴 후 문장을 다듬고 앞뒤 상황을 짜 맞춰보면 숨 쉬기 힘든 가슴이 편안해졌다.
이후 몇 번의 실연 때마다, 육아에 버거울 때마다, 갖은 실패로 아플 때마다 글을 썼다. "기다리면 답이 있다."라는 정답을 찾았는데도 인내의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그 시간을 가장 쉽게 흘려보내는 방법이 글쓰기였다.
마흔 중반이 넘어 되돌아보니 내가 아팠던 거의 모든 순간은 글로 남겨져 있다. 힘들 때만 글쓰기에 의존한 것 같아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엄마로 직장인으로 고군분투했으니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싶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나의 아픔을 찬찬히 살펴보고 상처를 덧나지 않게 매듭 하는 법을 터득했다. 글쓰기를 통해 자가치유를 했고 알알이 안을 채워 여물어가고 있다. 이제 아프지 않아도 글을 쓰고 싶다.
지금 나의 모든 순간에 글을 쓸 수 있다. 여태 나를 살리고 키우는 글쓰기에서 집중했다면 이제 나를 해방하고 꿈꾸게 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내가 만든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고 욕망하는 모든 것을 선하게 그려내며 죽는 날까지 해맑게 성장하는 이웃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를 가장 나답게 빛나게 하는 공간이 글 안에 있다. 글자로 새긴 문장들이 내 얼굴이 되고 형체가 된다. 언젠가 내 몸짓과 미소와 향기가 되어 누군가에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투명한 나를 통해 다른 이의 맑음이 비추어지길 바라본다. 자라나는 내 글이 우리와 함께 어우러지길 소망한다.
짙지 않아도 본연의 색을 가진 채도 낮은 수채화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너울지지 않아 잔잔히 곁에 머무는 선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래가는 온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