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살아가다
"어떤 여자야?"
"너보다 괜찮은 데가 한 군데도 없는 여자. 닳고 닳은 여자야."
"근데 왜 만났어?"
"편해서 좋았어."
조금 전까지 발뺌을 하던 남편이 그 여자 이름을 듣고는 모든 걸 순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사촌동생으로 소개하고 셋이서 밥을 먹기로 했다.
예약한 식당에 먼저 도착해서 들어오는 모든 여자들을 스캔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다 아니다. 그렇게 열 명 정도 지나치고 들어온 여자. "이 여자다."
굵은 긴 웨이브 파마에 살짝 붉은색으로 염색을 한, 무릎까지 부츠를 올리고 허리를 잘록하게 묶은 저 여자다.
내 남편 옆자리에 앉아 내 남편을 자연스럽게 터치하며 나에게 잘 보이려는 듯 이렇게 예쁜 동생이 있었냐며 치켜세운다.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데이트를 했는지 그녀에게 물어봤다.
"제가 너무 맘에 들어서 대시했어요. 노래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자상하잖아요. 머리 스타일도 제가 바꾸라고 했더니 바로 바꿨어요." 그녀는 무용담을 털어놓듯 내게 자랑한다.
출산한 지 5개월이 되지 않은 상태였던 내 경험담이다.
그를 미친 듯이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다. 다만 결혼한 후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는 무명가수였다. 술, 담배, 여자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삶이 싫다고 했다. 나보다 8살이 많았지만 매일 헬스로 단련한 탄탄한 몸에,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처음 본 날 다음부터 나를 매일 데리러 오고 바래다주었다. 아무 날도 아닌데 꽃다발을 안기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손수 깎아 찬합 그릇에 전하고 커다란 하트 상자에 초콜릿과 쿠키 등의 간식을 담아 선물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 주었고 곤곤히 흐르는 강물 옆에서 풀꽃을 꺾어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했다. 얼마 후 직접 만든 만든 노래를 부르며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정식으로 청혼을 했다.
나는 주목받았다. 내향인에 수줍음 투성이인 나에게 많은 카메라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내가 연예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며 가수인 그가 돈이 너무 없었다. 그는 사업에 돈을 다 투자해서 현금이 없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예단, 예물, 결혼 비용을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내가 거의 다 지출했다. 결혼을 해서 살 집도 마땅치 않았다. 역시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내가 준비했다.
스물여섯, 그를 만난 지 5개월도 되지 않아 결혼을 했고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고 급속도로 살이 붙었다. 50킬로를 넘지 않았던 몸이 막달에는 70킬로 후반이 되었다. 그는 내 다리가 "코끼리 다리 같다."라고 했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그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 사정이 안 좋고 지방 공연이 많다며 버거워했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결혼식 날 참석했던 회사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요즘 사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아보려고 했다.
나의 물음에 "회사에는 아무 일도 없고, 그가 사업에 투자한 돈도 없어요."라는 대표님의 답이 돌아왔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이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을.
이후 그를 세밀히 관찰했다. 매일 팩을 하고 멋진 옷을 사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그는 활기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그가 바람을 피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전후 사정을 얘기했더니 "100% 여자가 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덜컥 화를 냈다.
결혼한 지 10개월째 건강하고 예쁜 아들이 태어났다. 아기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 추후 아기를 더 낳아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아이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왕절개를 한 복부의 칼자국이 벌겋게 부풀어올라 피가 나도록 긁을 만큼 가려웠다. 가끔 개그 프로를 보다 배까지 울리도록 웃을 때면 봉합된 상처가 터진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젖몸살로 열이 오르고 밤낮으로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나와 내 아기를 위해 밖에서 일을 해야 하니 그에게는 집안에서 어떤 짐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따로 잠자리를 마련해 줬고 아기는 온전히 나 혼자서 돌봤다.
때마침 공연이 있다며 그의 생일,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 모두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이 얼마나 바쁜지 기획사에 전화를 했다. 그의 생일에도 크리스마스 때도 새해 첫날에도 공연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명의로 휴대폰 번호가 2개인 걸 알게 됐다. 공중전화기에서 그의 명의인 낯선 번호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 연결음이 몇 번 지나지 않아 "ㅇㅇ씨 와이프세요?"라고 생경한 여자가 대뜸 말했다.
"네? 어떻게 아세요?"
"언젠가 전화할 줄 알았어요."
그리고 그녀의 폭로가 시작됐다.
나를 만나기 전에 그가 3년 정도 사귀었고 결혼을 할 뻔했다는 여자. 결혼 생활 내내 여전히 내 남편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던 여자.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휴대폰 번호가 2개인 것이 이상해 전화를 건 나에게 그녀는 마치 그의 결혼이 파탄 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처럼 그에 대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가 얼마나 숱한 여성 편력을 가졌었는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이중적인 사람들인지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그녀가 솔직한 듯했던 말. 사실은 자기도 바람을 폈다고. 하지만 자신은 남자들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논 것뿐. 마음은 오직 그 사람에게만 주었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그녀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와 마주하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그가 핸드폰 명의 변경 문제로 그녀와 만나던 날. 나는 스치듯 몇 차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바람을 폈던 여자와 비슷한 이미지의 그녀. 늘씬한 몸매에 긴 머리카락, 또렷한 얼굴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녀의 눈빛과 표정과 몸짓에서 나는 어떤 매력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단 한 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남편의 외도와 그의 감춰진 과거를 알게 되었고 그가 나에게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 나와 결혼을 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느 만큼 많은 거짓말을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충격과 분노와 고통으로 나는 말라갔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다 문득 그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토록 셀 수 없는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거짓된 생활을 하면서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리고 나를 얼마나 얻고 싶었으면 그랬을지 헤아리고 싶었다.
별거를 하자고 하더니 별안간 이혼을 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그의 앞에 내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뭐든지 다 잘못했고 내가 앞으로 무조건 잘할 테니 제발 가정을 지켜달라고, 우리 아기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지 말아 달라며 애원을 했다.
복수심에서 붙잡았던 것도 아니고 잘못한 부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앞으로 나아지면 되니까 나는 우리가 노력만 하면 그리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머지않은 언젠가 우리가 진정 행복해질 거라고 믿고 그를 붙들었다.
내가 무릎을 꿇자 그는 황급히 자리를 피해 도망갔고 이혼을 위해서 아기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 그리고 내 허락 없이는 평생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으름장에도 순순히 포기 각서를 썼다.
법정에 서던 우리의 마지막 날에도 나는 그가 진심으로 변해주기를 기도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혼을 원한다고 말했고 나도 받아들였고 그곳을 나와 그는 곧바로 이혼 신고를 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을 잃었고 내 아기는 아빠를 잃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것과 갖고 싶은 것을 다 소유하지는 못하듯이 나와 내 아기는 절실했던 한 남자를 끝내 곁에 둘 수 없었다.
스물여섯의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스물일곱의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스물여덟의 나는 그중 하나를 영영 잃었다.
출산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아 나는 결혼 전보다 더 날씬해졌고 칙칙해졌던 피부도 활기를 찾았고 갓 스물여덟 살을 맞이한 이혼녀가 되었다.
내 아기를 절대로 아빠처럼 키우지 않을 것이다. 내 눈물과 절규와 아픔을 아는 내 아들은 훗날 아빠를 만난다면 "나는 당신과 다르다."라고 말하게 하리라.
얼마만의 몸살로 열이 오르던 중에 눈가가 마르지 않아 몇 자 남겨본다.
내 아들아. 잊지 말자. 그리고 오롯한 연민과 사랑으로 서로를 껴안자.
나는 내가 꿈꾸었던 것들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희망을 믿고 영원한 사랑을 믿고 이리 살아온 나를 믿는다.
나의 혹독했던 상처는 이제 가라앉았고 지금 나는 얼마큼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