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일

사랑은 어쩔 수 없기에

by dropfairy

당신과 헤어진 지 2년이 되었네요.

당신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을 잊는 데는 2년 정도의 시간이 적당한 것 같다고 했었죠. 그 말대로라면 당신은 이제 저에게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 당신이 그보다 훨씬 전에 절 지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전 첫사랑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원한 이별이었으니.


지난 1년 전에는 당신에게 심한 분노감을 느꼈던 게 떠오릅니다. 그건 단순한 분노감만이 아니라 온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감이기도 했었죠. 매일을 꼽아가며 시간을 인내했습니다. 숱하게 다그치며 참아야 한다고. 인내해야 한다고. 그러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보낸 1년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라지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제가 그때 당신께 드리고 싶었던 진정한 말은 1년 동안 당신만 생각해 왔다고, '천사'를 만난 건 당신이 부담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천사'를 만난 내내 온통 당신 얘기만 했다고. 그런 말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당신에게 짐이 될까 봐 조금도 꺼낼 수 없었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꺼내고 말았군요.


당신은 깨끗이 절 잊었을지 모릅니다. 사실 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당신은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의 손을 절대로 그렇게 놓을 분이 아니니까요. 당신에게 저는 단지 한 때의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한, 어쩌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여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신은 널 사랑한 건 거짓이 아니었다고 했죠. 저도 알고 있어요. 당신의 행동, 눈빛, 몸짓, 언어, 나를 대하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헤어진 지 1년째 된 날, 제가 알게 된 건 당신에게 난 조금도 소중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더 이상 귀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도 날 배려하지 않을 수 있고 그토록 매몰찰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어쩔 수 없겠죠.


그날 이후로 당신에게 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라는 현실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놓으려 애쓰며 1년을 더 살았는데 가슴이 아직 아프군요. 불쑥 오늘도 마음이 퍼렇게 시린 이유는 제가 여태 미련의 끝을 완전히 놓지 못한 까닭인가 봅니다.


실연 후 당신에 대한 미움이 서서히 옅어져 가면서 당신에 대한 사랑도 식어 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애증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니 당신에 대한 미움은 시간을 삭임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당신을 향한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사라져 가는 것뿐이며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임을 확인하게 되는군요.


당신은 2년 세월이면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을 잊을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저는 2년이 되어도 변함없는 가슴을 가지는 것일까요? 당신에게서 그토록 많은 체념을 받아놓고도 아직 무엇을 더 기대해 여직 당신 이름을 부르는 걸까요? 이런 내가 스스로도 원망스럽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2년이 지난 지금. 전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편지를 왜 또 띄우는 것일까요. 당신 마음만 상하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는데. 제 욕심 때문일까요. 그런 것도 같군요. 굳이 당신에게 2년 전에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여자의, 2년 후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 하는 건 당신에 대한 사랑을 지울 수 없는 제 마음의 답답함 때문이기도 할 테니까요.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얻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당신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이제 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여자, 어떻게 되어도 별 상관없는 여자이겠지만 저에게 당신은 여전히 제 가슴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자리 잡은 유일한 남자입니다. 아직 내 사랑은 어쩔 수 없기에, 전 당신의 장점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당신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오늘까지는 매달려보렵니다.


9월 1일. 우리가 처음 얼굴을 본 그날도 아니고 당신이 저에게 쪽지를 건 낸 날도 아니고 100일째 되어 당신 부모님을 뵈었던 그날도 아니고 당신과 헤어진 날.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든 따라갈 수 있었던 날. 기차 안에서 혼자 한없이 울고 있던 날. 그로부터 2년 후, 9월 1일.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잘 지내세요. 부디. 당신이 웃는 날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이 편지를 읽었다는 것만으로 제 욕심을 차고 채우겠습니다.


1년 동안 참아왔던 말을 하자니 할 말은 너무 많은데 글을 쓰다 보니 그 말들이 조금씩 가슴에 막혀 잦아들고 있네요. 그리고 당신이 길게 쓴 글을 보면 피곤하다 할까 봐 더 이상은 쓰지 못하겠습니다.


아직, 여태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