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수면제

꿈을 꾸는 여자

by dropfairy

자살 시도를 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7살 터울 오빠에게 맞기 시작했다. 그날도 발길질을 당했고 처음으로 오빠 얼굴에 생채기를 남겼다. 제대로 반격한 것 같아 후련한 마음도 있었고 얼굴에 흉터를 남겼다며 법석을 떠는 엄마 덕분에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우지직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방의 유리창이 박살 났다. 손바닥으로 창문을 밀쳤다고 생각했는데 알알이 바스러진 유리 조각이 얼굴과 팔, 손등에 점처럼 박혀있었다. 유리가 박힌 살갗에서 피가 피식 배어 나왔다. 피가 뚝뚝 바닥 위로 낙하할 때쯤 방문이 거칠게 제쳐졌다.


오빠가 소독약과 연고를 가져와 얼굴과 팔, 손등을 닦아주는 동안 아프다는 감각이 돌아왔다. 손으로 뿌리치다 고요히 흐느끼다 나중에는 통곡하듯 울었다. 오빠가 방을 나갈 때까지 신음소리 한마디 없이 엉엉 울기만 했다. 거울 속 나를 세밀히 관찰했다. 불어 터진 오른쪽 볼, 입술 아래, 턱 중앙 곳곳에 흩어진 파편 자국이 도드라지게 미웠다. 유리를 밀쳐냈던 손등은 뜨겁고 깊게 달아올라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갖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도저히 못 살만큼 못생겼다.


약국에 갔다. 수면제를 사야 하는데 그냥은 주지 않을 것 같아 집에 놀러 온 친척들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수면제를 여러 알 사 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집 근처 대여섯 군데 약국을 거치는 동안 단 한 곳만 나를 힐긋 보고 거부했다. 그 외는 말도 안 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수면제를 5알에서 10알 정도 건넸다. 그렇게 서른 알이 조금 넘는 수면제를 모았다.


약을 먹기 전 야니의 <Reflections Of Passion>이라는 앨범을 들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두 번쯤 돌리는 동안 공책 어귀에 유서도 썼다. 가족과 친구에게 전하는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내가 아끼는 물건을 배당받을 이를 지목하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수면제가 몹시 썼다. 평소에도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그 많은 약을 하나하나 천천히 넘기다 보니 입안에 온통 쓴맛만 가득했다. 몸이 물을 머금은 듯 차츰 무거워졌다. "이렇게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점점 잠에 빠져가는데 안방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어기적 몸을 띄워 엄마 품으로 갔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다. 딸이 죽는다고 말했다. 약을 많이 먹어서 곧 죽을 거라고.


엄마는 설익은 토마토를 먹였다. 풋냄새가 가득한 맛없는 토마토를 계속 먹였다. 영문도 모르고 먹다가 구토를 했다. 덩어리 진 알약들이 무리 지어 줄줄이 기어 나왔다. 노란 위액까지 토해내고 누렇게 눌어붙은 장판 위에 주저앉았다. 파리가 자꾸 엄마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아무리 똑 떨어내도 혹처럼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6학년 언니한테 맞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자초지종을 물으셨고 언니는 내가 버릇없게 굴어서 살짝 밀쳤다고 말했다.


살얼음이 굳어 운동장 한편이 빙판장이 되어 있었다. 동급생 여자애와 팔짱을 끼고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럼을 타며 놀고 있었다. 학교 육상 대표에 얼굴도 예쁘고 인기도 많은 언니들이 점차 다가왔다.

"야. 여기서 우리가 놀 거니까 너네들은 나가."

친구가 "가자."라고 말했고, "운동장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이고 우리가 먼저 놀고 있었으니 나가지 않아도 돼."라고 내가 말했다.


언니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버릇없는 아이인 까닭에 나는 뺨을 맞고 무릎을 걷어 차였다. 억울했지만 잘못한 게 없어서 선생님에게도 엄마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오빠한테 마지막으로 맞았을 때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한결같이 나는 매사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내가 보던 티브이 채널을 오빠가 돌리면 곧바로 내 채널로 바꿔놓았다. 오빠가 화를 내면 내가 먼저 보고 있었는데 맘대로 바꿨으니 오빠가 잘못한 거라고 따졌다. 큰 소리로 나더러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면 나가지 않고 방에서 버텼다. 잘못한 게 없는데 힘에 굴복하는 건 비굴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끝까지 버티다 주먹과 발길질에 멍들고 찢긴 채 나는 방에 남겨지고 오빠가 방을 나갔다.


비슷한 상황은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반복됐다. 오빠는 언제부턴가 때리기 전에 가슴을 손으로 가리라고 했다. 그 말은 유일하게 들었나 보다. 가슴을 두 팔로 감싸고 풀썩풀썩 치이는 대로 넘어가다 쓰러지면 얼마 동안 오빠가 집에 오지 않았다. 얼굴을 세게 맞으면 별이 빙빙 도는 것처럼 이 보이고 눈이 판다처럼 멍든다는 걸 알았다. 부러지지 않아도 손가락 두께가 두 배가 될 만큼 퉁퉁 부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깨뼈가 으스러지면 아픈 기억이 사라지며 가뿐히 잠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맷집이 생긴다는 말이 맞다. 때가 되면 맞을 준비를 했고 죽지 않을 만큼 때리니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강요와 강제와 억압에 굴하지 않는다."며 열사라도 되는 듯 맞으면서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스무 살 때는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목을 졸랐다. 죽지 않을 만큼만 조르겠다며 숫자를 세면서 내 목을 졸랐다. 처음에는 온 힘으로 발버둥 치다 나중에는 정말 세상이 몽롱해지며 편안해졌다.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이 고통스럽지 죽음의 찰나는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몸이 늘어졌는데 오빠가 내 목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서면 안 된다고,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이후로 피하고 달아나며 어떻게든 오빠를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기도했다. 내가 죽던지 오빠가 죽어버리던지 제발 누군가는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염원했다. 오빠가 죽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할까? 약도 힘들고 아픈 것도 소름 돋고, 무서운 것도 끔찍한데 확률적으로 오빠가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 우선 버텨볼까?


너무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사는지. 그리 신나 보이고 좋아 보이지 않는데 못 죽어서 사는 건지 살아야 할 이유가 따로 있는 건지 일일이 물어보고 싶었다. 물어도 보고 짐작도 하고 모른 체 넘어가기도 했다. 그저 잠시 웃고 잠시 우울이 스쳐가고 문득 죽고 싶고 이왕 죽을 거면 좀 더 재밌게 살아봐야겠다고 작정했다. 여하튼 죽음을 미루기로 했다. 원하지 않아도 맞이할 즐겁지 않은 손님을 먼저 들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