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끝나는 날

꿈을 꾸는 여자

by dropfairy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꿈을 꿨다. 학교에 다녀오니 엄마가 반듯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도 답을 하지도 않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엄마는 이 시구를 자주 읊어주셨다. '귀천'이라는 말을 알게 된 후로 엄마가 이 시를 외울 때마다 하지 말라고 울었다.


엄마는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 이야기도 해주셨다.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셨다. "무엇이든 교체가 가능하고 끝도 마지막도 없는 삶이 행복할까?"라고 물어보셨다. 기계인간은 싫지만 "엄마는 절대로 죽지 마."라고 말했다. 엄마가 죽으면 냉동인간이라도 만들어서 살릴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엄마한테 아빠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좋은 아빠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나 엄마가 물었다.

"괜찮은 아빠 있는지 찾아봤니?"

"응. 찾아봤는데 좀 괜찮은 아저씨들은 이미 다른 아줌마들이 다 데리고 갔어. 그냥 혼자 살아."

내 말을 듣고 엄마가 푹 웃었다.





5살 때쯤, 옆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를 때린 적이 있다. 아빠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던 아이였다. 쪼르르 다가가 신발을 벗어 머리를 툭 쳤다. 아이의 아빠에게 '이 놈', '나쁜 놈'이라는 호통을 들었다.


나는 엄마와 놀았다. 세차게 굴러 날아갈 듯 그네를 타고 꺾을 듯 흔들어 힘껏 스프링 시소를 탔다. 가장 재미있던 건 '악어놀이'였다. 놀이터 미끄럼틀과 연결된 구름다리 아래 엄마가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포악한 악어다. 너를 잡아먹겠다."

다리 중간쯤 가면 엄마가 튀어 오르며 내 발목을 잡을 듯 말 듯 불쑥 손을 뻗었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당장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 소리를 냈다. 악어를 피해 괴성을 지르고 도망 다니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머리카락이 흠씬 젖었다.






엄마도 나와 놀았다. 가끔 회사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온 적은 있지만 노는 건 나랑만 했다. 영화나 연극, 공연을 보러 갈 때도 미술관이나 전시회, 그리고 여행도 나랑 갔다.


나에게 엄지 손가락을 잡힌 엄마 옆에서 깡충거리는 시간이 좋았다. 내가 학교에 가고 엄마가 회사에 가는 시간을 빼놓고는 태반의 시간을 함께 했다. 저녁에는 엄마 팔을 베고 함께 하지 못한 일상을 조잘조잘 얘기했다. 엄마가 "그랬어?", "그랬구나?"라고 하는 동안 하루, 이틀, 해가 지났다. 중학생이 되어 합숙 생활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엄마와 같이 자지 않게 되었고 둘이 하던 놀이가 모두 중단되었다.


혼자 있는 엄마는 가끔 혼술을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서 일요일 한나절에 일어나면 반 병쯤 비워진 와인병을 앞에 두고 세탁 후 건조까지 마친 빨래를 개고 있었다. 아침 8시에 와인병을 오픈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밥을 하고 안주를 준비해서 8시 50분쯤 첫 모금을 시작했단다. 엄마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재잘재잘 일과를 얘기하고 사진을 보내주셨다.


술 마시는 엄마의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집은 늘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와인을 마시는 도중에 내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집안일을 틈틈이 하셨다. 오후 5시쯤 와인 한 병을 다 마신 후에는 식탁정리와 설거지를 바로 끝냈다. 천생 애교가 많던 엄마의 교태가 조금 많아진 것 말고는 혼술 전과 후에 달라진 게 없었다.






엄마가 유치원 발표회에 올 때면 "신데렐라 신발 신고 몸에 딱 붙는 옷 입고 예쁘게 하고 와."라고 주문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긴 머리였고 치마를 자주 입었고 뾰족한 신데렐라 구두까지 신으면 누나처럼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도 엄마는 날씬하게 옷을 입고 나중에 이름을 알게 된 '하이힐'을 신고 학교에 왔다. 수십 명의 학부모 중에 엄마만 달랐다. 유난히 젊고 여리고 엄마 같아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더 이상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와도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엄마가 엄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엄마를 당연하게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창피했다. 내가 수업시간에 번쩍 손을 드는 것만큼 내 이름이 모르는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큼 싫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죽을 뻔한 얘기를 해주셨다.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할머니가 토마토를 먹여서 약을 토하고 다음날 중간고사 시험도 봤다고 했다. 시험 보기 싫어서 죽으려고 했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있었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게 제일 컸단다.

"엄마가 그때 죽었으면 나도 세상에 없었겠네?"

"너 만나려고 엄마가 살았지. 이혼하고 나서도 죽을까 했는데 돌도 안 된 아기를 고아로 만들 수 없어서 안 죽었지. 이제 아들이 어떻게 클지 궁금해서 못 죽겠어."

"엄마 죽지 마.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절대 죽지 마."

"아무리 죽기 싫어도 죽게 될 날이 올텐테, 그날까지는 재밌게 멋지게 살 거야. 엄마는 120세까지는 살 거니까 아들이 엄마보다 오래 살아야 해. 엄마 늙으면 아들이 엄마 키워야지."






어릴 때 있었던 일을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건지, 엄마에게 들은 말을 기억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출가를 했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른다. 왕복 4시간이 걸려 집에 가면 한두 시간 동안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 매주 가서 엄마 얘기를 들어주고 엄마가 죽지 않는지 죽지 않을지 확인하고 온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엄마의 슬픈 욕망이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짐짓 신나 보여도 엄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죽음에 대한 갈증이 있음을 알고 있다. 살짝 풀릴 때마다 바투 묶던 부지런함을 내가 깨워야겠다. 소풍을 최대한 늦게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