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꿈을 꾸는 여자

by dropfairy

투명한 병에 좀 희한하게 그믐달 비스무리 기울어진 'C'로 시작하는 코로나.

"맥주에 레몬 넣어 먹어 봤니?"

"아니. 그런 게 있어?"

"정말 맛있어. 분명 넌 좋아할 거야."

소개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썸남이 코로나를 알려주었다.




같은 과 여자 동기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안 친한 건 아닌데 막역한 사이도 아니라 소개팅 제안이 의아했다. 3년간 사귄 남자 친구의 절친인데 내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남자 친구 자랑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알겠다고 승낙했다.


170 중반쯤 되는 키에 단단하고 두터운 몸, 삐쭉한 머리카락과 밝은 톤의 피부를 가진 아이였다. 누나가 넷이고 막내란다. 누나들은 엄마가 젊고 건강할 때 낳아서 좋은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고 본인은 맨 나중에 태어나느라 상대적으로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니 누나들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예뻤다. 유일하게 그 아이만 쌍꺼풀이 없고 둥글넓적했다. 그렇다고 못생기지는 않았다. 남자도 피부가 좋으면 못생겨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뭇한 수염 자국 하나 없이 윤기 있고 뽀얀 피부가 곱게 자란 소년인 듯 화사했다.


베이지색 긴치마에 연녹색 니트 카디건을 입고 평소처럼 하얀색 파일과 시집을 챙겼다. 파일에는 '아들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시를 편집한 A4 용지가 끼워져 있었다. 이 시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만일 네가'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 반해 검색을 해보고 정확한 작가명과 작품명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약에(if)》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보고 자주 보려고 파일 겉면에 배치했다. 파일을 들고 전철을 타면 가끔 시를 읽는 이의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더 가끔 시의 제목을 물어보는 이도 있었다.


소개팅남과 두 번째 만남에서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봤다. 평일 동시상영 중인 영화관에는 오십 대쯤 돼 보이는 여성들 무리가 듬성듬성 있었고 빈자리가 가득했다. 스크린 효과음이 커지면 그녀들의 탄식과 웃음도 덩달아 커졌다. 소개팅남이 내게 얼굴을 돌리고 귓속말을 했다.

"저 아줌마들이랑 너랑 반응하는 게 똑같아."

3시간가량 영화를 보면서 그 아이는 틈틈이 귓속말을 했다. 그때마다 귀가 간지러운 것 같았다. 새우깡에 병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보는 라이브 카페도 갔다. 시끄러운 곳이라 그랬겠지만 소개팅남은 좀 더 얼굴을 밀착해서 자주 귓속말을 했다. 귀가 가려운 걸 지나쳐 온몸이 간질간질 근질대는 것 같았다.


다음 만남에는 강남에 있는 바에서 코로나를 마셨다. 병맥주는 카프리나, 버드와이저만 먹어봤던 터라 너무 생소했다. 똑같은 사이즈의 병맥주인데 가격도 3배 이상 비싸고 병맥주 안에 레몬을 넣어 냅킨을 감아 나왔다. 고급진 술집 분위기와 상큼한 레몬향 때문인지, 정말 맛있다는 말을 미리 들은 덕분인지 코로나가 특별하게 맛있었다. 두병쯤 마시고 단정한 자세가 살짝 풀어진 차에 물어봤다.

"어떤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한 거야?"

내가 실없이 묻자 소개팅남이 살짝 풀린 눈으로 말했다.

"야한 여자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처음 만난 날 네가 긴치마를 입었잖아. 앉아있는 거 봤는데 허벅지가 보이더라."

"옆 트임은 종아리까지만 있는데 앉아 있어서 올라간 거야."

당황해서 주절주절했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돌아가는 길에 파일을 꺼내 키플링의 문구를 읽었다.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며칠 후 전공 수업에서 만난 동기에게 물었다.

"야한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했다는데 왜 나야?"

버벅거리며 동기가 급하게 말했다.

"네가 가슴이 크고 몸에 붙는 옷을 많이 입잖아."

"나 모솔인 거 알고 있지? 덕분에 소개팅도 해보고 재밌었어."


소개팅남이 연락을 했다. 올해 군대에 갈 계획이었는데 늦출까 생각 중이란다. 어차피 갈 거 빨리 가라고 했다. 재차 물어도 얼른 가라고 했다. 군대에서 편지를 쓰겠다고 해서 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 아이가 나를 성적인 대상으로 가볍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번을 만나면서 키플링의 시를 알려주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고 있던 내게 가장 좋아하는 시가 뭐냐고 물어봐서 찾아 읽어주었다. 재밌는 듯 나를 쳐다보다 진지해졌던 눈빛을 기억한다. 첫 연애를 그와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2020년, 티브이를 켜면 연일 코로나 뉴스가 쏟아졌다. 감염병 환자가 무섭게 확산되었고 점점 확진자가 주변으로 다가왔다. 3차 백신까지 맞았지만 2022년 초에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 가족들 모두 확진자가 되었다. 권고로 이루어진 1년간의 재택근무를 마치고 그해 5월부터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마스크를 쓴 채 출퇴근을 하고 모임이나 잡담을 최소한으로 했다. 식사도 되도록 자리에서 혼자 해결했고 끝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그 해 11월, 같은 팀 여직원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단톡방에 올라왔다. 그녀와 단짝이었던 동료도 5일 후에 확진됐다. 그 동료와 대각선 책상을 놓고 근무하던 나는 4일 후 금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살짝 있었지만 열은 없어서 감기나 인후염 정도로 믿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남자 친구와 여행 약속이 있었다. 검사를 받고 가야 개운할 것 같았다.


코로나 검사가 코로나보다 아팠다. 코에서 목구멍까지 쑤시는 듯한 고통 때문에 몸이 저절로 뒤로 빠졌다. 의사의 야단을 맞으며 검사를 마치자 눈물이 주룩 흘렀다. 10분쯤 지나 여태 마르지 않은 눈으로 신속항원검사 키트에서 두 줄을 봤다. 선명한 빨간 줄 옆에 점점 붉어지는 선이 하나 더 생겼다.


남자 친구에게 코로나 확진 진단서를 보냈다. 여행은 취소되었고 완치될 때까지 만남을 미루기로 했다. 기침이 심해지고 목소리가 갈갈이 찢어져 통화도 힘들어졌다. 그는 배달을 시켜줄 테니 뭐가 먹고 싶은지 말하라고 했다. 괜찮다고 몇 번 거절하니 더는 묻지 않았다. 집 안에 고립되어 홀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울한 기운이 깊게 내려앉았다. 톡으로 안부를 전하는 대화가 건조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격리된 지 4일째,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그에게 했다. 너처럼 잘해주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그만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일주일 만에 전철을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늘 타던 칸에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서 있었다. 모처럼 맞는 아침 바람에 좀 전까지 오돌거렸는데 이상스레 몸에서 땀이 났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쓰러질 듯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려지고 귀를 막은 듯 주변 소리가 멀어졌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반복되는 말이 들렸다.

"제가 쓰러졌나요?" 바닥에 누워있는 몸을 추스르며 첫마디를 내었다.


주변을 역무원과 승객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119를 불러주겠다는데 한사코 거절하고 여자 승객의 도움을 받아 환승역에서 내렸다. 혼자서 터덜터덜 걸을 수 있고 점차 소리도 또렷해지고 시야도 트이면서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다. 포장이 멀쩡해도 안이 비어있으면 혼자서도 넘어지는 걸 알았다. 참고 불뚝 일어나면 어른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겹 쌓인 아픔으로 3일 동안 잠들지 못해 약해진 나를 마주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고 힘없는 여자가 있었다.






며칠 전 감기로 병원에 갔다가 최근 독감과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마스크를 끼고 검사 대기 중인 환자가 열 명도 넘었다. 3년 전 11월, 이곳에서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 확진을 떠올리니 코로가 맥주가 생각났다. 스무 살 때 마셨던 것처럼 레몬을 끼워 넣고 향부터 들이키며 홀짝였다.


20여 년 전의 손때와 빛바랜 세월이 묻은 시집을 꺼내 보았다. 코로나를 처음 알려준 그에게 읽어 주었던 《귀천》. 마흔이 넘어도 '소풍 중'인 게 생각할수록 다행이다. 기억이 미화되면 추억이 되니 지상의 일들이 추억이 될, 되도록 오랜 훗날 천상에 가야겠다.


언젠가 힘없는 여자가 있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다 기운 낸 여자가 있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돌아가면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