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여자
너를 만난 지 10개월 남짓 되었나. 유난히 많은 일이 있었고 너는 제법 귀염을 떠는 사랑스러운 아기로 지금 내 곁에 있다.
침대에 누울 때마다 곤히 자고 있는 네 손을 한참씩 만지작거리면서 너를 관찰하는 게 엄마의 습관이 돼 버렸어. 자면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360도 회전까지 하던 네가 어제는 엄마 몸에 다리 한쪽을 올려놓고 자더구나. 쪼그만 게 벌써 편한 건 알아가지고. 그러다가 얼핏 잠이 깼는지 엄마의 얼굴과 팔을 쓰다듬다 아침에서야 짙고 깊은 너의 눈을 떴지.
너에겐 지금 아빠가 없지만 엄마는 네가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한단다. 엄마를 사랑 많은 사람으로 키워주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하루 종일 너만 바라보고 너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시거든. 정작 엄마인 나는 너에게 그리 많은 걸 해 주지 못한 것 같다. 맛있는 이유식도 할머니가 만들어주셨고 네 옷을 굳이 손빨래만 하시는 분도 할머니이시고 가끔 잠투정을 하는 너를 아늑하게 재워주시는 분은 할아버지이시고 엄마는 네 분유 담당, 기저귀 담당, 성장 체크 담당 정도라고나 할까.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게 널 키우고 싶어. 네가 행복하다면 네가 꼭 해야 하는 일만 한다면 무엇 하나 막고 싶지 않아.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고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너에게 필요한 건 내 아들로 태어난 너를 위해 엄마가 다 해주고 싶어.
지금 너는 엄마 곁에서 낮잠을 자고 있구나. 그런 너를 볼 때마다 처음으로 우리가 만나던 날이 생각난다. 너를 만지기 위해 난생처음 수술이라는 걸 해 봤고 티브이에서나 보던 링거를 꽂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너를 보는 순간 정말 다 괜찮아졌어.
마취가 다 깨지 않은 순간에 어렴풋이 들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제일 먼저 했던 말이, "손가락, 발가락 10개씩 맞나요?"였던 것 같아. "네, 모두 정상이고 너무 건강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머리를 내려놓으니 안도의 기쁨 때문인지 수술 후 아픔이 이제야 느껴지는 건지 눈물이 흐르더구나.
너를 처음 본 순간 너에게 반해버렸어. 넌 평균보다 약간 큰 손과 발, 키를 타고났는데 막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가 말갛게 고왔단다. 그때는 지금의 긴 속눈썹과 짙은 눈썹은 없었지만 내 아들로 태어나 준 너의 모든 것에 엄마는 완벽하게 만족했어. 내 인생에서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도 조금도 아쉽지 않을 만큼 너의 전부에 감사했단다.
병원 수유실에서 너에게 처음 젖을 먹이던 날, 주변의 산모들이 우리를 번갈아보며 알려줬어. "아기랑 엄마랑 입술이 똑같아요." 찍어놓은 듯 나와 똑같은 빨갛고 도톰한 입술을 연신 옴실거리며 배불리 젖을 먹는 네가 경이로웠다.
기억을 못 하겠지만 너는 엄마 맘을 참 잘 아는 기민하고 세심한 아기였어. 엄마에겐 백일이 조금 넘은 너를 껴안고 몇 시간이고 울었던 날들이 있었단다. 네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해서 너를 안고 네 등 뒤에서 울거나 분유를 먹는 네 곁에서 고개를 돌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런 날들이 있었지. 그런 내 아픔을 너는 어찌 알았을까. 평소에 징징대고 엄마를 힘들게 하던 네가 그때만큼은 투명한 눈으로 그리고 너의 따스한 체온으로 엄마를 포근하게 감싸주기만 하더구나. 너는 네 존재만으로 엄마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어왔단다.
며칠 있으면 10개월이 되는 내 아들아. 좀처럼 아프지 않던 네가 얼마 전에는 열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편도선염이란다. 다행히 초기에 일찍 처방을 받아서 너는 거뜬하게 이틀 만에 거의 완쾌가 되었지. 이후에 온몸에 열꽃이 피어 엄마는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너는 가렵거나 아프지는 않은 듯 평소처럼 잘 먹고 잘 놀고 오늘엔 예전처럼 뽀얗고 깨끗한 피부를 되찾았단다.
다 나은 기념으로 목욕을 하고 잠시 몸을 말리는 동안 네가 첫 작품을 만들었단다. 옷을 입히기 위해 너를 안고 보니 이불 위에 엄마 맘과 똑같이 생긴 하트가 그려져 있었어. 토실토실 엉덩이로 어찌 이리 예쁜 하트를 만들었는지 아들의 재능에 감탄했어.
무엇이든지 심지어는 약까지도 너무 맛있게 잘 먹고 봄볕처럼 새근새근 잠들고 상냥한 보조개로 환하게 웃어주는 너. 너는 진정 나에게 축복인 것 같다.
너무나 소중한 내 아들의 모든 것을 엄마는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단다. 오늘은 그동안 미루었던 시간 때문에 두서없이 이야기가 엉키었지만 다음부터는 좀 더 차근히 너의 행복한 유년을 이어주고 싶다.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맙다.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하고 멋진 엄마로 너와 함께 오늘도 자라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