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혼자서 걸음을 떼던 날

엄마가 된 여자

by dropfairy

5개월도 되기 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발을 톡톡 떼었던 너였는데. 그러다 너는 기어 다니기의 명수가 되었다. 어찌나 빨리 기어 다니던지 잡으려면 땀이 흠뻑 젖을 정도였고 너를 가만히 앉혀놓기 위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 휴대폰을 건네주게 되었다. 휴대폰만 보면 멀리서도 방긋 웃으며 열심히 기어 왔고 손에 받아 들고는 신나게 음악을 바꾸고 박자에 맞춰 뒤뚱뒤뚱 몸을 흔들었다.


기어 다니는 게 너에게 너무 능숙하고 편해서였을까. 너는 예상보다 조금 늦게 걸음을 떼었다. 물론 그래도 아직 만 11개월이 되지 않았으니 결코 늦은 편이 아니지만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 예상으로는 네가 한 9개월쯤에 혼자서 걸음을 뗄 줄 알았단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네가 드디어 혼자서 세 걸음을 걸었다. 넘어질까 봐 재빨리 나아갔지만 너는 분명히 난생처음 홀로 세상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두 팔을 위로 어기적 올리고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걸어와서는 까르륵 웃던 너. 엄마는 그런 네 모습을 영원토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네가 나를 보며 처음으로 웃던 날,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날, 내게 먼저 다가와 안기던 날, 그리고 걸어서 내게로 오던 날. 너로 인해 엄마의 매일은 설렘과 환희로 채워지고 있다.






요즘 너는 밥을 좋아하고 이가 나면서부터는 분유를 별로 먹으려고 하지 않아 분유는 하루에 세 번 정도만 먹고 있다. 틈틈이 치즈와 계란노른자와 요구르트와 두유, 과일을 먹고 조금 특이하게 너는 토마토와 오이를 무척 좋아한다. 달고 맛있는 수박이나 바나나, 사과, 참외, 오렌지, 딸기 등도 물론 좋아하지만 어찌 보면 그보다는 덜 맛있는 토마토와 오이를 너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가끔 토마토를 먹고 싶은데 수박을 주면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눈물을 뚝뚝 쏟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토마토를 통째로 주면 이로 살짝 틈을 내어 즙을 빨아먹고 몇 번 작게 베어 먹다 적당한 크기가 되면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꿀꺽 삼켜버린다. 그렇게 먹고 나면 너는 목욕을 해야 할 정도로 온몸이 침범벅이 된다.


한 톨도 흘리지 않으려고 입 주위에 묻은 밥 알까지 알뜰하게 챙겨 먹는 너. 너는 TV에 나오는 애국가를 무척 좋아해서 4절까지 잠시도 시선을 놓지 않고 거의 매일 애국가를 애청한단다. 이 밖에 네가 또 좋아하는 건 리모컨, 바퀴, 전화기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 머리카락 뽑기, 자고 있는 할머니 베개 빼앗기, 곰인형 물어뜯기 등이란다. 소파고 의자고 책상이고 어렵지 않게 오르고, 오른 후에는 늘 바닥을 치며 깔깔대며 웃는다. 가끔씩 옅은 코를 골며 자기도 하고 아래 두 개 위에 네 개 난 이로 무엇이든 장난스레 뜯어 놓는다. 또 힘이 어찌나 세졌는지 무거운 베란다 문도 혼자서 여닫을 정도이고 두꺼운 사전이나 베개도 한 손의 아귀힘만으로 들어서 던져버리기도 한다.


너의 하루하루가 엄마에게는 새로운 기쁨이고 축복이다. 너를 먹이고 씻기고 너를 만지고 너와 함께 웃으며 엄마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내가 강해지고 풍족해져 있음을 느낀다. 눈물 흘리며 피하고 싶었던 많은 순간들이 너를 만난 이후로 나에게서 까마득히 옅어져 버렸다. 나에게는 결코 나를 홀로 두고 떠나지 않을 네가 있다. 나를 닮은 입술로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태양처럼 웃는 내 아들. 나 역시 너를 절대로 외로움 속에 처연히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엄마 마음이 네 가슴에 넉넉히 안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를 위해 엄마는 너에 대한 마음을 정갈하고 커다랗고 그러나 무겁지 않게 키우고 싶다. 너를 생각하는 매 순간 풍만한 꽃망울처럼 가슴이 부푸니 엄마는 대단한 사람을 흠모하게 되었나 보다. 대단한 네가 오늘도 나를 사랑하게 만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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