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여자
잊히고 싶지 않은 그러나 너는 기억하지 못할 너에 대해 남겨보려고 한다.
어제는 유모차를 타고 할머니와 함께 대형마트에 다녀왔단다. 휴가철에 휴일이라 사람들이 붐비었지만 너는 얌전히 이곳저곳을 열심히 구경만 하더구나. 덕분에 힘든 일 없이 장을 거의 보았는데 마지막에 요구르트를 집어 든 순간 네 표정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너도 요구르트를 무척 좋아한단다. 가끔은 요구르트만 달라고 떼를 써서 요즘에는 자주 먹이지 않았는데 모처럼 널 데리고 온 기념으로 사게 됐지. 그동안 어린이 요구르트만 먹였는데 어제는 할인을 많이 해서 다른 요구르트를 골랐단다. 너는 병이 다른데도 어찌 요구르트인지 알고 유모차 위에서 일어나 어서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급하게 계산을 하고 하나를 먹고 나서도 요구르트 한 줄을 두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집에 와서 목욕을 하고 흠, 이 얘기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몸을 말리면서 널 놀게 했는데 장바구니 정리를 하다가 언뜻 너를 돌아보니 네가 된장 같은 걸 손가락에 묻혀 입으로 향하고 있더구나. 네가 있던 곳이 주방 옆의 다용도실이라 혹시 할머니가 바닥에 된장항아리를 내려놨었나 생각을 한 것도 잠시, 그게 아니라는 걸 금세 알게 되었다. 다행히 너는 변을 먹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엄마는 놀래고 조금 우습기도 하고 덕분에 너는 다시 한번 목욕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어제 외출을 한 때문인지 네가 아침부터 할머니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할머니가 힘들어하셨다. 휴일 이른 아침, 다 뜨지 못한 눈으로 일어나 너를 안고 흔들흔들 토닥여줬더니 너는 이내 환하게 웃는 착한 아기가 되었다. 너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자식을 키운다는 게 생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힘들 때가 있단다. 그래도 엄마는 화가 나거나 네가 밉거나 하지 않아. 세상에 너 아닌 누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네 안에서 자라났겠니. 너와의 특별한 연을 생각하면 너는 나에게 무조건 용서가 되고 무조건 최우선이 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니.
너는 지금 내 옆에서 엄마의 마우스패드를 뺏어 바닥을 밀고 돌아다니며 놀고 있단다. 수건이든 어떤 물건이든 바닥에 밀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너. 가끔 수건을 양손으로 밀 때는 완전히 걸레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단다. 우스워서 동영상으로 몇 번 담아보려고 했지만 사진기만 대면 걸레질을 멈추는 바람에 결국은 실패했다.
요즘 너는 공을 발로 찰 줄 알게 되었다. 걸음에 힘이 제대로 붙지 않아 엄마가 뒤에서 잡고 같이 걸어주면 오른쪽 발을 45도 위로 올리며 공을 열심히 찬단다. 혼자서 가장 많이 걸을 때는 열 걸음도 걷는 너이지만 아직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땀까지 흘리고 공을 차는데, 엄마는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신기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더구나.
또 너는 유난히도 몸을 기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평소에 앉아있을 때도 사람에게 기대어 있기를 좋아하고 배가 부르면 우선 벌러덩 드러눕기가 일쑤다. 맨바닥에는 머리를 눕히지 않고 엄마나 할머니를 베고 눕거나 폭신한 이불 위에서만 뒹군단다. 네 이불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가끔 네가 혼자 안방으로 들어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몸을 누위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나오더구나. 엄마를 닮았나. 포근한 이불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기대어 앉는 걸 좋아하고. 엄마도 너랑 비슷한 아기였을 것 같다.
지금부터는 너의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 중 하나를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네가 오이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이미 엄마가 말해준 적이 있을 거다. 벌써 일주일은 된 것 같은데 평소처럼 너는 오이를 손에 들고 열심히 베어 먹고 있었다. 엄마는 장난스러운 마음에 "J야. 엄마 아"하면서 입을 벌리고 너를 바라봤단다. 그랬더니 너는 주저 없이 엄마 입으로 오이를 넣어주더구나.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너무 놀랍고 감동스러웠는데 그 이후에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 한 입, 엄마 한 입. 너는 이렇게 엄마를 챙겼다. 돌도 안 된, 말도 거의 모르는 네가 엄마를 먹여주다니 엄마는 내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예뻐서 그 설렘이 며칠을 갔단다.
지금도 너는 오이뿐만이 아니라 토마토든 무엇이든 네가 먹는 것은 뭐든지 엄마를 챙겨주려고 하는 기특한 아기이다. 그런데 가끔 배가 좀 고플 때는 엄마 눈을 절대 쳐다보지 않고 먹여달라고 장난을 거는 엄마를 피해 가며 분주히 혼자서만 먹을 때도 있다. 그 모습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기인 네가 그래도 혼자 먹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나 보다. 엄마가 네 눈을 그리도 응시하는데 한 번도 못 마주치고 결국 등을 돌려가며 먹는데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네 모습이기도 하다.
사랑스러운 내 아들 J야. 네가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 네가 있어서 엄마는 앞으로 많이 멋져질 것 같다. 내 아들이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고 어디든 함께 가고 싶고 네가 이상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이고 싶다. 너에게 꼭 그런 사람이 되도록 엄마는 너와 함께 하는 매일동안 늘 나아질 거다. 네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멋지게 자라나 너의 곁에 초라하지 않게 설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다가 올 우리의 시간들이 행복한 현실로 가까워 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