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방울 Jun 09. 2024

십만 원으로 둔갑시킨 3300원 삼겹살

10만 원을 국가에 바치다

처음이 아니다.


운전을 하면서 상상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 라디오를 켠 채 집중하기보다 듣다가 나온 주제에 대해 깊숙이 빠져서 라디오에서 뭐라고 했는지 들리지 않았던 기억 상실의 경험. 길다가가 본 풍경을 브런치 제목에 넣고 머리로 글을 쓰는 시간으로 빠지는 경험. 요즘 내가 왜 이러는 것인가. 작가로서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될 수 있겠다만.


운전하다가 생각에 빠져 약속장소로 가던 중 습관적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 와서야 약속 장소로 핸들을 돌려 약속 장소로 방향을 튼 적도 있다.


좋다. 여기까지 봐줄만했다.

내비게이션에서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로 얼마나 설명을 잘해주는지 모른다. 속도를 넘으면 미리 삑삑 거리며 어린이 보호구간이니 속도를 줄이라는 둥, 안전하게 운전하라는 멘트도 나오고, 정말 위반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운전하는 나는 유체이탈로 어딘가를 날아다니고 있고, 내 몸만이 유일하게 운전대를 잡고 달린 모양이다.


"시속 40KM 운행 도로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들은 적이 없다. 60KM를 신나게 달리고 나서야 돌아온 나의 영혼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올해부터 새로운 지역에 발령을 받고 30~40분의 출퇴근 시간. 코 앞거리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매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서서 30분 이상 운전하는 것이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수도권에서 차를 이용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1시간은 기본 거리라지만 내겐 익숙하지 않은 출근 길이 시작된 것이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사람은 적응의 동물. 운전을 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의 시간. 그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와의 수다 시간으로도 안성맞춤이고 좋아하는 음악을 내내 틀어놓고 부르는 노래방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뭔가에 꽂혀서 생각거리가 머릿속으로 쏙 들어가면 술술술술 막힘없이 상상하며 중얼중얼 마음속에서 타자를 기도 한다.



주말부부 시절 소형차로 구불구불 위험한 길을 달려야 했다.  밤길에도 눈길에도 움직일 일이 많아지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2년 전에 10년 지기였던 내 친구 소형차를 싼 값에 넘기고 남편이 타던 차로 갈아타게 되었다. 남편 차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2년. 차에 크게 관심이 없던 차에 관리까지 남편이 해주니 더 편해졌다. 그런데 딱 하나 안좋은 것이 있었다. 이것만은 관리받고 싶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위반딱지가 남편의 폰으로 날아온다는 것이다.


여느 날처럼 퇴근길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신나셨어요?"

"네네, 기분 좋아요."


이런 물음은 아이에게나 하는 질문 아닌가? 싶었지만 기분 좋게 최대한 어린이다운 말투로 대답을 했다. 일종의 쿵짝을 맞추고 싶어서. 그런데 남편의 이어지는 유아형의 말투.

"아이고, 그날도 신~~나셨구나!"

"엥? 그날도 신났다니?"

"0월0일 0시 00사거리"

"엄청 신나서 달렸나 봐요."

"아 그날!"

아, 그제야 감이 왔다. 남편의 폰으로 또 날아온 위반딱지. 정말 나 어떡하지? 어느 곳인지 알 것 같은 그 순간!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진짜 몇 년 만에  만날 친구 생각에 신나게 달렸다.

'과속 딱지.  브런치 에세이 딱지도 못 받았는데, 과속딱지라니!'

과속한 내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아깝게 나가는 돈에 속이 쓰렸다.

"잉 어떡해."

"괜찮아, 신났으면 됐지 뭐."

이렇게 얘기해 주니, 미안하면서도 대인배처럼 넘어가주는 남편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마무리를 하고 잊었다. 



남편과 같은 날 병원 예약을 하고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

조퇴를 하고 집 앞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띵똥' 남편이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

"뭐야? 십만 원? 당신, 진짜 너무 심한 거 아냐? 한두 번도 아니고!"

'두 번 아닌가!'

그렇게 쿨하고 맘 좋은 남편은 '어디로메다'요?

병원을 가는 내내 남편은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저만치 앉아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흥!'

어쩌랴. 지은 죄가 있어서 뭐라고 따질 순 없고 마음이 자꾸 쪼그라든다. 병원비도 내가 계산하고 약값도 밥값 내듯 남편을 젖히고 내가 나선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렇게 평일에 병원도 같아 다니고 넘 좋다. 그치?"

"좋아? 근데 난 오늘 좀 짜증이 나더라."

"헤헤."

나는 최대한 그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웃음으로 우고 말을 돌린다. 남편이 그랬으면 나는 가만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십만 원이 적은 돈이야? 그 돈이면 우리 식구들 며칠 식비인 줄 알아?'

아까운 십만 원에 속 쓰려하며 잔소리를 쏟아부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 뭐 먹지?"

"집에 있는 거나 먹자. 10만 원 날렸으니!"


좋아. 지난주 세일해서  둔 한돈 삼겹살 3360원. 10만 원처럼 먹여주리라. 김치찌개에 공깃밥, 냉면 4개, 추가하면 얼추 10만 원 되겠구먼.



그나저나. 10만 원 벌기는 어렵고 한 순간에 날리는 것은 이리도 쉬우니. 글감으로 변신하긴 했지만 비싸도 너무 비싼 글감. 순간, 딴생각으로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지나친 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쌩하니 지나간 죄. 네비의 친절한 말에도 듣지도, 대꾸도 않고 무시한 죄.(그날따라 지나치게 네비 음량이 작았는데 봄이가 음악 듣는다고 네비 음량을 최대한 줄여놓은 것도 하나의 탓을 돌려본다. 잘못한 게 많아 양심 없어서 소곤소곤) 그 대가로 10만 원을 국가에 바쳤다. 길이길이 좋은 곳에 쓰이길 쓰린 맘으로 보태어 본다. 이참에 정신차리고 안전 운전도 약속하기로 하자.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잦은 딱지에 대인배 남편은 없다.


위반 지 대신 브런치에 딱지나 으면 좋겠다. 글쓰기에 속도를 내어보자. 부릉부릉!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헤어지자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