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방울 Jun 02. 2024

남편이 헤어지자고 합니다

어찌할까요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여보. 잘 잤어?"

뒤척이며 남편이 눈도 뜬채만채 웅얼웅얼 말합니다.

"아니, 우리, 헤어져."

"뭐래, 아침부터 잠꼬대야?"

그제야 잠꼬대가 아니라는 듯 옆으로 돌아누워 쳐다보며 말합니다.

"우리 헤어지자고. 어제 한숨도 못 잤어."

"아니, 왜?"

"당신은 잘 잤지?"

 그러더니 요즘 제가 코를 곤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저는 제 코 고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아, 정말 억울합니다. 이쯤이면 심판이 없어 더욱 답답하고요.


출처 픽사베이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지이긴 합니다. 한편 무지하게 억울하기도 합니다. 머리만 닿으면 신생아처럼 잘 자는 남편은 지금까지 저와 살면서 숙면을 취했단 말이죠. 저는요? 제가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요. 잠이 들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잠에 예민한 여자라고요. 남편은 지금도 잠이 들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어요. 코를 고는 건 남편이라고요. 지금은 그 소리가 미미하지만 제가 좀 예민해서요. 잠이 들려면 좀 걸리겠어요. 베개를 툭 쳐보지만 몇 초 멈칫하더니 계속 코를 고는 남편. 함께 한 시간 중 남편보다 제가 더 잠을 설쳤으면 설쳤지. 그렇다고 헤어지자니요. 뭐가 어째요?




얼마  딸아이가 우리와 함께 침대 가운데서 잠을 자던 날이었어요. 그 다음 날 자고 일어난 우리 둘에게 다가왔어요.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죠.


"어제 내가 잠을 못 잤어. 엄마랑 아빠가 번갈아서 코를 얼마나 크게 고는지 알아?"

"딸아, 아빠는 평생 코를 곤 적이 없단다."

"아빤 몰라도 엄마도 코 안 골아."

완전 딱 잡아뗐지만 소용없었어요.


휴대폰을 들고 온 딸은 녹음된 파일을 클릭해서 들려주었어요. 증거는 그것이면 충분했어요.


"드르렁 큭, 으르렁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크러렁 큭"

 저와 남편의 소리가 번갈아 연주를 하고 있더군요. 가끔 합주도 하고 바람을 푸 내뱉기도 하고요. 처음 듣는 제 소리를 마주하고 기가 막혔어요.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았어요.


"어머 웬일이니? 이게 엄마 소리라고?"

어이가 없는 웃음만 나왔어요.


증거가 확실하여 더 이상 시치미를 뗄 수 없었어요.

"어제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 봐.

 어머 웬일이니?"

코 고는 소리에 민망함을 웃음소리로 덮었더랬죠.


"이제 다시는 엄마 아빠랑 안 자."

딸의 선언이 좀 서운하고 야속했지만 코 고는 소리를 마주하니 뭐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일단락되었던 코골이 사건은 다시 불거졌죠.  번갈아가며 서로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며 아침부터 핀잔을 줍니다.


늦게 잠자리에 든 저는 남편의 코골이를 자주 목격했고 더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은 저를 탓해야만 했어요. 저녁에 잠들면 아침에야 일어나던 남편은 나이 탓인지 중간에 깨서 화장실을 갔다가 저의 소리에 다시 잠 못 이루는 날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내일 아침엔 제가 남편에게 말할 거예요. 오늘 아침에 들은 말을 돌려주려고요.


"여보 당신 때문에 잠을 못 잤어. 우리 그만 헤어져."

 

 때는 우리 헤어져 각방을 써야안 되겠다며. 서로의 숙면을 위해 사람은 혼자 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사뭇 진지하게 말해야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헤어지려면 한 사람은 거실에서 찬바닥에  자야 한다는 슬픈 현실.


이참에 방 하나 더 있는 큰집으로 옮겨줘요!

이런, 당장 갈 수 있는 해결책이 없는데 우리 서로 숙면의 꿈을 이루게 해 주소서.


'여보, 아무리 농담이지만 일어나자마자 그 말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요! 친구들과 어디 놀러라도 가면 코골이 때문에 큰 일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프기도 해요. 갱년기로 겪는 호르몬으로 탄성이 더욱 저하되고 나이가 들어 근육이 늘어나 겪게 되는 변화라지만 너무 가혹하네요.


남편과 서로 코 곤다고 구박하지 말고 서로 가엾이 여기며 건강 챙기며 살아야겠어요. 해피엔딩을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헤어지는 건 일단 보류요. 방 4개 딸린 집으로 갈 때까지 좀 참읍시다!


<나이 들면 코골이기 심해지는 까닭>

코골이는 입천장과 목젖이 늘어지거나 편도선·혀가 큰 경우, 근육덩어리인 혀가 뒤로 떨어지면서 상기도가 막혀 발생한다. 숨을 쉬는 통로가 좁아져 호흡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피곤하면 평소 코를 골지 않던 사람이라도 코골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또 편도선과 아데노이드조직이 자라면서 소아 때 코를 골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코골이가 더 심해져 코를 골지 않던 사람이 코골이를 시작하기도 한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이비인후과 신재민 교수는 “코골이는 연령에 비례해 심해진다”며 “잘 때 구강, 목젖, 혀 등의 긴장이 유지돼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근육의 탄성이 느슨해져 누웠을 때 기도가 더 잘 막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여성은 폐경 이후 호르몬변화의 영향으로 탄성이 더욱 저하된다”라고 덧붙였다.

출처 : 경향신문

https://naver.me/53Um6xTE


새벽 3시. 저는 아직도 잠 못 이루며 이렇게 글을 씁니다. 남편의 베개를 툭 건드리고 잠시 멈춘 틈을 타고 잠 속으로 잡입해야겠어요.


아, 도저히 안 되겠네.

"우리 헤어져!"

남편의 오늘 첫마디가 스치고 지나갑니다.

'아, 달아나 버린 내 잠 내놔.'


남편이 아닌 코골이와 이별을 꿈꿉니다. 코골이 수술말고 좋은 방법 있나요?



사진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