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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May 26. 2024

남편이 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어머니와 각별하게 지내시는 아주머님 손주가 결혼을 한다. 전날 하루 종일 바쁜 일로 쫓아다녀서 어깨는 부어있고 들락날락 발가락 사이는 물집이 잡협다.

원래 이날 나들이겸 결혼식장에 가자고 했지만 난 침대에 누워있었다. 전날 어머님이 낼 결혼식에 자고 한번 더 말씀 하시고 가셨다.

"너무 피곤하고 몸이 아파요, 어머님! 낼 전 못가겠어요."

그럼에도 남편과 어머님은 날 꼭 델고 가고 싶은 눈치다.

남편은 "집에서 쉴래?" 해놓고는,

"당신 집에 있어도 애들한테 잔소리하랴 밥 챙겨주랴 더 바쁠 거 같은데?"

눈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한번 더 설득에 나선다.

"가는 길엔 차에서 자고 가서는 차려진 음식 맛있게 먹고 오는게 더 낫지 않을까?"


어라? 틀린 말은 아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그 말에 몸이 일으켜졌다. 남편한테 낚였다. 세수만 한 채 머리를 단정히 묶고, 무난한 원피스를 입고 부은 얼굴을 내밀었다.


아침에 만난 어머님은

"피곤하다며 왜 나왔냐?"고 하셨다.

평소보다 화장도 더 했는데,  허였게 부은 얼굴 때문인지

"화장도 안했네?" 하신다.


무거운 눈두덩이를 손으로  비비다가 잠이 살포시 들었다가 비몽사몽 도착한 결혼식장.



예식장은 아니고 식물원을 빌려서 했는데 유리건물 안에 푸른 숲 사이로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꽃보다 환한 두 사람이 멀리서도 가깝게 보였다.


행복의 기운이 막 들어간 내게까지 힘차게 걸어왔다. 친척이지만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젊은 부부. 그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젊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었다.

서로 마주하고 내내 눈을 마주치며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그 두 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떨리는 듯 숨을 들이마시고 조심스레 떨리는 숨을 내쉬는 신랑에게서 기분좋은 두근거림이 전해졌다. 그 옆에 신부는 활짝 웃는 입가에 보조개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메운 것 같았다.


안오겠다고 끌려나오는 듯한 액션을 취했던 나는 어떤 하객보다 전하지 못할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결혼에 흠뻑 빠졌다.

남편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또 결혼하고 싶어?"

대꾸할 가치도 없다. 말이나 말지. 우리가 결혼했던 장면이 떠오르고 그 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려했는데 말야.

"저 친구들 너무 예뻐."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내 얘기만 하고 그들에게로 다시 빠진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야 어머님은 뒷자리에서 앞으로 옮겨가셨다. 아들 며느리 데리고 와서 친척들에게 인사를 시키시며 인사를 나누신다.


불광동 아주머니는 우리 결혼식에 오셨을 때만해도 젊으셨다. 검은 머리에 같은 파마머리였지만 인정스러운 말투로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하얀 백발이 다 된 아주머니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는 느린 눈빛으로 한참 누구인가 떠올리시는 것 같았다.

세월의 흐름도 있었을 것이고 젊은 그때의 총명한 기억이 희미해진 까닭일지 모르겠다.

"아이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남편의 눈이 벌겋다. 코가 찡해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친척분들과 대화를 나누시도록 하고 우리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이런 저런 안부 인사를 나누며 친척분들과 식사를 하시리라.


"불광동 아주머님 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냐!"


아주머니와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이드신 아주머니 앞에 그간 잘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젊음 시절은 어느 새 흘러 나이들어 간다. 누구나 아는 진리임에도 가끔은 이미 저 너머로 지나가버린 빠른 시절을 돌아보며 세월에 야속하다 탓한다.


아흔이 넘으신 아주머님이 아름답다. 젊고 싱싱한 갓 시작한 두 부부의 할머니. 내겐 그 분이 오늘을 빛나게 함을 느낀다.


어머님과 고운 한복을 입으신 아주머님을 사진에 담는다. 다른 분들은 늙어서 찍기 싫다며 도망가신다.


결혼식장에 장식으로 쓰였던 꽃은 하객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 꽃다발을 한아름 두 분께 안겨드린다.

"너무 고우세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꽃들고 함께 찍어요, 여기 보세요!"


사진 찍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두 분은 찍는 순간 굳은 표정이 되셨지만 내 사진에 두 분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은 다해 사진 찍느라  잠시 내려놓은 가방을 예식장에 두고 온 건 비밀.)


두 분에게 오늘이 가장 젊은 날.

내 눈엔 두 분이 정말 아름다웠다. 남편의 눈물처럼 내 눈 앞도 뿌옇게 흐려진다.


"건강하셔요! 또 봬요."

결혼한 손자가 예쁘게 사는 모습도 지켜봐주시고, 손주 며느리가 낳은 아가에게 따뜻한 손길도 주시기를요.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도 축복을!

뜻밖의 선물, 꽃은 언제나 감동


나오길 잘했다.

피로함도 다 지날테고,

이 귀한 장면을 놓칠 뻔했는데

참 좋다!


남편말을 들으면 자다가 뷔페가 나온다!

오늘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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