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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May 11. 2024

'관찰'하게 되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야

"B야,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며칠 전까지만 해도 B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정작 당일 아침에는 잊어버렸다. 늦은 저녁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서 선물을 보내는 것도 까먹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카톡으로 초콜릿 선물을 보냈다.


친구의 고맙다는 메시지.

"쪼꼬렛 왔오. 맛있어. 잘 먹을게."

그런데 문득 B가 초콜릿을 좋아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콜릿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좋아할지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다행이네. 너한테 초콜릿을 보내고 문득 네가 초콜릿을 좋아했던가 생각이 들더라."

"당근 좋아하지!"

"어쩌면 우리는 아직 서로 모르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ㅋㅋㅋㅋㅋㅋ"

"살면서 알아가야겠네, 했다."

친구는 내가 너무 웃긴다는 듯 웃다가 내게 물었다.

"만약, 지구 마지막날 메뉴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넌 뭐 먹을래?"

"야, 디게 어렵다."

하지만 나는 금세 대답했다.

"엄마가 해줬던 된장찌개에 비빈 보리밥. 무생채 잔뜩 넣어서. 너 그거 나랑 먹어볼래?"

"구래!"

"재밌네. 너는?"

"난 쪼꼬렛?"


어쩌면 내 오랜 친구에 대해 생각보다 아는 게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릴 때 만났지만 그들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해 왔을 테니까. 내가 몰랐던 것들을 가끔씩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알던 00이가 아니네. 하고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도 있다.


요즘 관찰을 하게 된다. 사람들을 쳐다보게 되고, 자꾸만 마음을 쓰게 된다. 넘어서면 간섭이 될 테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퇴근을 앞두고 있는데 B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퇴근했어?"

"아직, 이제 하려고!"

"나 지금 너한테 가려는데, 시간 괜찮아?"

서울에서 멀리 사는 B는 오랜만에 나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나와 차 한잔 하자며 온다고 했다. 거리를 따져보니 서울에서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이나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나 시간이 같다.

그렇게 불쑥 오겠다는 친구가 왜 이리 반갑고 고마울까?


우리는 차를 마시자고 했다가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 애매한 시간이길래 저녁을 먹게 되었다. 마주 앉은 B와 나. 갑자기 그토록 오래 만났던 B를 보자니 신기하게도 낯선 이의 향기가 전해졌다.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코끝에 걸고 메뉴를 고르는 장면, 식사가 나오기 전에 젓가락을 가까이 대고 짧게 잡고 먹는 모습, 웃으면 덧니가 살며시 보이는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쑥스럽게 웃는다.

"너 젓가락질 이렇게 했었어?"

"나? 몰라. 하하하"

"요즘에 새로운 것들이 보여."

"뭐야, 나 관찰하는 거야?"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변하기도 했고 말이다. B가 신혼이었을 때 얼마나 박 터지게 싸우던지, 정말 B가 시집갔다가 다시 돌아올까 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혈기왕성하게 치열하게 싸우던 그때. B에게서 파이터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는 표현은 미처 못하고 속으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도 요즘엔 남의 편처럼, 남편이 왜 이리 미운지 몰라. 엄청 싸워."

 '나도 그랴' 하며 다독이던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 너 이혼할까 봐 엄청 걱정했잖아."

"그랬어?"

"요즘엔 너희 보면 정말 서로 잘 맞춰주고 살아가는 거 같아. 엄청 편안해 보여."


최근에 B의 집에 놀러 갔다가 예기치 않게 B와 나 그리고 B의 남편이 같이 하루를 보내며 놀았던 적이 있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미술관을 둘러보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면서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게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왔다. 나이가 먹은 탓이었을까? 오래 본 사이어서 그랬을까?


서울에서 복작거리며 살다가 시골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느리게 살아가는 친구의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B에겐 지금의 모습이 찰떡같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지나가는 꽃들에 눈길을 주며 화원에서 예쁜 아이들을 하나씩 안고와 집 마당에 옮겨 심는 정원 가꾸는 모습. B의 집에 놀러 갔을 때에도 B의 남편이 삽을 들고 땅을 파주고,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노부부처럼 어린 나무를 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두 부부의 모습은 하나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따뜻했고 평화로워서 내 사진기에 찰칵찰칵 몇 장을 담아왔다.


남편이 이야기를 하면 날 세워 날카롭게 얘기하던 B는 없다. 수다스러운 남편의 이야기를 아들 바라보듯 웃으며 들어주는 B가 있을 뿐이었다. B의 집을 나서며 집 입구에 걸린 작은 소품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B의 남자가 소품을 향하는 조명을 '톡' 켜주고 지나갔다.


B의 남자는 내 친구 B에게 이렇게 세심하게 관찰하며 배려해 주며 살아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새삼 고마웠다. 서로 스며들며 관심을 주고받으며 따뜻하게 지내는 모습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나는 관찰자였고, 자꾸만 그 대상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어졌다.


나의 아이들이 TV를 바라볼 때, 나는 그저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눈에 담고 그 순간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처럼.


나의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어떤 반찬에 더 많이 손이 가는지 살피게 되고, B가까이 그 반찬을 밀어주는 나를 발견한다. 삶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삶에서 사랑을 빼면 0이라고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후배 교사의 말에도 100% 동감.


삶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힘들다고 불평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삶이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나를 지켜주는 힘은 바로 사랑이다. 나도 모르게 뭉클하게 눈물이 자꾸 흐르는 것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사랑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기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대상이 강가에 반질반질한 돌멩이든, 길가에 피어난 보랏빛 제비꽃이든, 넘어질 듯 말 듯 아장아장 걷는 아가이든지 말이다. 고개를 쭉 내밀고,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기울어진 마음들.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마음들. 사랑, 사랑, 사랑.


비가 와서 그런가? 마음이  비에 젖어서 뭉클뭉클 적셔지는 건 나이가 들어서인가! 물방울이 맺히니 세상이 반짝이며 춤을 추고 더 아름답게 여겨진다. 술에 취한 듯, 비에 취한 듯 보고 싶다. 그냥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려 눈으로 스치고 지나가며 가슴으로 쓰다듬어 본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나의 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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