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드릴 카드를 쓰고, 아이들은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미리미리 챙기지 못하고 출발 직전에 맘이 급하다. 선물을 준비하지 않고 봉투를 준비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사들고 가면 부모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았다. 큰 맘먹고 산 부모님 옷은 장식물처럼 옷장에 걸려있었다. 딱 1번 입으셨으려나. 자식이 준 선물이니 고맙게 받으시고는 정작 취향에 척 맞지 않는 옷은 서로에게 미안한 선물이 되고 말기도 한다. 어쩌다가 영양제를 사 드리려고 하면 지금 드시고 있는 약과 혹여나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다. 결국 제일 좋은 건 봉투였다. 필요하신 것을 사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용돈은 고스란히 손주들 용돈으로 우리 집 냉장고 반찬 비용으로 나가는 게 다겠지만 말이다. 선물을 고르는 일이 정성을 담아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언제부터인가 부모님께 돈이 제일 '적당한' 선물이 되어버렸다. 엄마도 쿨하게 말씀하신다.
"뭐 사 오고 그러지 말어. 집에 다 있어."
"뭐, 필요한 거 없어?"
"없어. 줄 거면 돈으로 줘. 하하하"
웃으며 엄마는 말씀하신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어김없이 봉투를 챙겼다. 우리는 서둘러 친정으로 향했다.
딸은 카네이션을 정성껏 만들고, 꾸민 엽서를 남편에게 내밀어 손 편지를 쓰도록 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쓴 편지는 엄마에게 감동의 편지로 남아있고, 최근에 드린 편지들은 게시판에 하나씩 걸려있다. 마음이 분주하다. 어디든지 가기 싫은 아들을 질질 끌고 차에 타기까지 그 가는 길만으로 고되다. 그래도 언제나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내가 달려가 와락 안길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온 식구가 모여 식사를 한다. 효도하러 간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 무늬만 효도하러 가고, 우리는 엄마 아빠의 대접을 받으러 간다. 밖에서 식사를 대접하려고 해도 한사코 마다하신다.
"엄마가 해 줄 수 있을 때 집에서 먹자. 밖에 나가면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하지, 먹을 것도 없더라. 집에서 푸짐하게 먹자."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맛있지. 근데 집에서 먹으면 이렇게 엄마만 맨날 고생이잖아."
"뭐가 고생이야. 조금 힘들어도 너네 좋아하는 거 해줄 수도 있고. 우리 강아지들 이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 보면 얼마나 행복하냐."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준비했던 선물을 건네드린다.
미리 준비해 준 흰 봉투와 우리가 정성껏 쓴 엽서, 손녀가 만든 카네이션, 손주가 드린 두피 마사지와 나무로 만들어진 마사지 도구.
어, 그런데 봉투를 받아 든 엄마는
"이게 뭐야?"
'돈을 너무 많이 넣었나?'
"뭐긴, 엄마. 얼마 안돼."
봉투를 손에 들고 내게 보여준 봉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을 담았다고 하기에는 황당한 웃음의 엄마 표정.
"하하하, 딸한테 빈봉투를 선물 받았네."
아버지는 봉투를 당신에게 달라 신다. 사람들에게 자랑하신다고.
아니, 이제 뭐지? 귀까지 빨개진 나는 봉투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는다.
돈을 챙겨서 흰 봉투에 담았다가 딸냄이의 빨간 카네이션을 보고 빨간 봉투에 다시 옮겨 넣었다. 그리고는 친정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빈봉투를 가져온 것.
"우리 방울이 또 한 건 했다."
가끔씩 실수가 잦은 나는 우리 집에서 털팔이로 유명하다. (*털팔이 : 경상도 사투리로 행동이 조신하지 못하고 덤벙대는 사람을 일컫는 말)
"생긴 건 참하게 생겨서 걱정이다. 이보게 K서방! 우리 딸이랑 살아줘서 고맙네."
"아이참. 내가 일부러 큰 웃음 주려고 그런 거지. 봉투 안에 안보이남? 사랑 두둑이 넣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