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브런치

브런치 할까요?

by 빛방울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브런치 한번 하자.”

‘브런치 그게 뭔가요?’


나는 묻지 못하고 브런치가 뭔지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봤다. 알 것 같긴 한데 확신할 수 없는 그것.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인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말. 아이들이 쓰는 신조어처럼 듣긴 했는데 뜻을 모르는 것 같아 소외감이 느껴지는 그런 말. 혼자서 그 뜻도 모른다는 걸 들킬까 봐 발바닥에 불을 지피듯 뜨거운 피가 솟아올랐고 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졌다.

모를 수도 있지.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야. 모르는 것이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거란다.’ 아이들에게 늘 해주는 이야기면서 정작 나는 ‘브런치’라는 단어 앞에서 쪼그라들었다.

‘브런치 그게 뭐라고.’

그때까지 그렇게 먹는 브런치도 몰랐고 쓰는 브런치도 몰랐다.




브런치의 세계는 어머어마했다. 두 아이가 어려서, 혼자 타지에서 아이 기를 힘을 잃고 한 두해 쉬면서 알게 되었다. 금요일 또는 주말 저녁에 특별히 가족과 먹으러 가는 레스토랑 말고는 가본 적 없는 아점집. 친구가 초대한 브런치 레스토랑은 한산하고 여유로운 카페 같은 곳이라 상상하고 들어서자 다문 입을 연 채, 휘번덕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사진제공 unsplash


아기자기 집으로 업고 오고 싶은 소품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천천히 사진을 찍고 눈에 담아보았다. 아이들을 준비해서 보내느라 혼쭐나게 정신없던 아침의 서두름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실 그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평일 오전에도 북적이며 온 테이블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은 30대의 젊은 아기 엄마들. 직장맘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브런치의 세계.


‘뭐지?’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아침 자는 아이를 둘러업고 때론 죄 없는 아이를 닦달하며 원으로 학교로 내려주고 허둥지둥 출근하는 길. 내내 그렇게 뛰어다니듯 살았던 시간. 잠시 멈춰 서니, 느린 걸음으로 온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었다.

나도 친구도 만나고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런 세계를 알지 못한 채 살았던 치열했던 나의 일상. 브런치를 접하고 나니 내 것 같지 않지만, 왠지 낯선 브런치의 세계는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낯설지만 또 가고 싶은 그런 곳.

브런치는 일상에서 나에게 사치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은 그렇게 치열한 삶 속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는 브런치라는 말 자체가 나를 달콤하게 만들기도 했다. 브런치는 왠지 산뜻한 기분을 들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런 내게 또 다른 ‘브런치’의 세계가 내 앞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심장 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긴 숨을 몰아 내쉬었다. 해볼까? 무슨 지금 이 바쁜 와중에 작가는 무슨 작가. 내게 핀잔을 주다가도 못 본채 할 수 없다.



‘브런치 해 볼래?’

그렇게 말을 걸었던 브런치 프로젝트. 프로포즈 받듯 이 설렘은 뭘까?


가슴 뛰는 일을 하라. 그것이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목적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자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중에서-

스물세 살에 만난 책 한 권. 미래의 불안함을 가득 안았던 젊은 시절. 꿈도 많았지만 좌절이 가득했던 청춘. 책을 받아 들고 한편에는 희망을 품고, 진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정말 그렇게 살 수나 있는 거냐고 되묻던 그 시절이었다.

브런치를 만난 지금 나는 가슴이 뛴다. 암호명 '브런치'를 외치고 '철커덕' 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마음속 깊이 손을 넣어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며 메뉴를 정해 보는 여유를 부린다. 브런치 가게를 열고도 자릿세를 내라는 건물주도 없고 문을 언제 열든 메뉴를 계속 바꾸든 민원 넣는 진상 고객도 없는 브런치 세계에서 ‘쓰는 사치’를 부리고 있다. 먹는 브런치보다 ‘쓰는 브런치’가 내겐 더 달콤한 이유다.


누구와 약속을 하지 않아도 내가 브런치를 하고 플 때마다 또는 나 이런 브런치 한다고 얼굴도 모르는 읽는 이들에게 슬며시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한다.

'나 매주 목요일밤 브런치 할 거야. 내 브런치 맛보러 와.'하고 말이다.

설렌다. 가슴이 뛴다.

브런치의 넓고 넓은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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