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라이킷이 끊어지기 전에

by 빛방울

조회수가 10을 돌파했습니다. 그래도 10명이 봤어. 몇 번이고 호흡 곤란증이 있는 사람처럼 연신 숨을 깊이 쉬었다가 내쉰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어머 웬일이니. 반응이 뜨거우려나 그럴 리 없잖아.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다음 날엔 19명으로 곤두박질. 나도 같이 내동댕이 쳐진다. 그럼 그렇지. 댓글이 달리자마자 대기하고 기다렸다는 듯 감사 댓글을 달아본다. 브런치 알림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 콩닥콩' 불규칙한 증상을 보인다. 연일 달라지는 반응들에 내 마음도 엎어졌다가 일으켰다가 브런치가 다 뭐람. 내가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던가?




딸랑 메뉴 하나 내놓고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는 브런치 식당 주인 같으니라고! 앞으로 신메뉴를 개발하고 출시해야 하는데 지금 글 반응도 시원찮고. 발행해 놓고 보니, 일주일 동안 롤러코스트를 타듯 안정되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나는 왜 이리도 모자란 인간이란 말인가. 잘 쓰는 글을 보면 부러운 마음 반 괜한 샘이 생기기도 했다. 만들어 두었던 목차를 글로 써야 하는 건 아닌 가 하는 조바심도 생겼다.

금요일 저녁, 수많은 동기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하찮게 느껴졌던 내 존재를 받아들이고는 위안이 되었다. 수업을 듣는 동안 이내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건 아니었다.

몰아세우지 마! 천천히 해. 너를 잃어버리지 마.


평소 일기장에 끄적인 글들은 고스란히 내 것이지만 세상에 던져놓으니 발가벗은 듯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좀 봐주길 바라는 마음과 응원의 댓글보다는 글 내용이 좋다는 댓글을 바라는 작가의 심정. 시험을 앞두고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며 100점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 시험인데, 어쩌지? 공부를 많이 못했음에도 연필을 굴려 찍어 맞추든 어느 것을 고르든 내가 고르면 다 맞게 해 달라는 도둑놈 심보처럼.

아흐, 그럴 줄 알았다. 댓글 5개 끝. 일주일 동안 그게 전부다. 내 글을 읽고 남길 만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을 테지. 별 감흥 없이 훅 읽다가 닫고 마는 글이었을 테지. 나라도.

이런 글을 읽고도 응원한다는 작가분들의 한마디가 귀하고 귀했고 글을 올리고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는 위안이 되었다.



두 달 전 즈음 '슬픔의 방문'을 읽고 아, 쓰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책.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불과 보름 만에 벌어진 꿈같은 일. 브런치 작가 합격이 된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 없지만 합격의 기쁨만 간직한 채 꿈속을 헤맬 여유가 없었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 채, 휴지 조각처럼 내 글은 가볍게 저 멀리 저 멀리 날아가 보이지도 않는 먼지가 되어 버렸다. 쓰레기라고 굳이 표현하고 싶지 않다. 아직 내겐 '퇴고'라는 이름의 '심폐소생술'이 있지 않은가!

한 번 살려봐? 살렸는데 도로 죽어버리면, 글은 그냥 사장되는 거지. 아니야 먼지가 쌓이긴 하겠지만 내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이잖아. 언제고 다시 꺼내어 볼 수 있고. 언제고 다시 꺼내었을 때 그 글 앞에서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때를 떠올리며 많이 성장했다고 뿌듯해질 나를 위한 주춧돌.

완벽한 것만이 최고는 아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정성을 다해 올려놓는 주출돌처럼 답답하게 풀리지 않는 내 글을 풀어내고 지펴줄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에 길이 생길 것이다. 걸어간 걸음 위에 나를 만난 수많은 이야기들이 올려질 것이다. 내가 만드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지나칠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나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겐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때론 속상하고, 때론 기쁘고, 때론 절망스럽고, 때론 즐겁다가 때론 실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뒤엉킨 감정들이 온 글을 휘감았다가 글을 써 내려가며 차분히 가라앉게 될 것이다.



쓰기로 했던 순간,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다. 쓰기로 했다는 것은 솔직해지려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죽었다고 슬퍼하지 말자. 내 글이 장렬히 전사하여 사장되었더라도 무덤에 묻히기 직전에 나만의 심폐소생법으로 간신히라고 살리고, 또 살려서 나중에는 단단하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게 다지고 다질 것이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기고 스스로를 변태 시키자.


슬프게도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제대로 살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건드려서 더 망치는 건 아닌가 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도 죽게 놔둘 순 없지 않은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처럼 생기를 잃은 글에 숨을 불어넣어 조금이라도 살려보자.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르면 내 마음이 녹아내려
언제나 나 하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 같아.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르면 중에서-

다정히 내 글들을 손보면 내 글들이 살아나서
언제나 내 글을 위해 준비된 작가 같아.

라이킷, 구독 독자의 응원이 작가를
쓰게 합니다.



오글오글, 이런 글을 쓰게 되다니. 심폐소생술 시작합니다. 살리러 갑니다. 일단 부끄러워 죽겠는 나부터 살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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