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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Oct 19. 2024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

뽀얗고 보드라운 나의...

 

15년이 지난 지금도 코앞에서 냄새를 맡는 것처럼 눈을 감으면 그 냄새를 들이마신 듯 코끝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토옥, 토옥 톡톡”

한 손은 엉덩이를 받치고 고갯짓도 잘못하는 아가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고 한 손으로는 작은 등을 쓸어내린다. 솜털처럼 뽀얀 아가의 보드라운 볼살이 내 귀에 느껴지면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안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아가에게 안긴 착각에 빠져든다.


송송 올라온 땀띠 사이로, 볼록볼록 살들이 겹쳐진 틈에서 새콤한 땀 냄새가 다. 킁킁 아가의 등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킁킁 거린다. 토닥토닥 두드리는 오른손은 자동으로 움직여지고 코는 이미 아가의 볼살에 부비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심스레 숨을 쉬는 아가의 정수리에서 코를 묻고 입을 맞춘다. 벌써 사춘기가 되어버린 열다섯 살 소년의 땀 냄새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      


“끄윽”

“아고 잘했네.”


아가의 입에서 올라오는 젖 냄새는 또 어떠한가? 뽀얀 젖 냄새가 시큰달큰하게 올라온다. 입 주변으로 하얗게 흘려진 젖을 가재 수건으로 닦아낸다. 조그만 입에 차마 아까워 대지 못하고 갓 트림을 하고 시원해진 아가가 젖을 올리지 않게 조심스레 눕힌다. 작게 벌어진 아가의 입에 킁킁 가까이 대고 아가 냄새를 한 옹큼 마신다.      


베이비파우더를 온몸에 덧칠할 것도 아닌데, 아가에게서 아가아가한 냄새가 난다. 맡으면 그냥 기분 좋아지는 아기 냄새. 향기라고 표현할 수 없는 순하고 뽀얀 냄새. 향수병에 담아낼 수 있다면 이런 냄새를 담을 수가 있을까?      


잠이 든 아가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눈으로 몇 번이고 쓸어내리고, 아가가 작은 소리에 놀라지 않게 가벼운 인형을 배 위에 올리고 조심스레 꽉 쥐어진 손에 검지 손가락을 끼워 넣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먼지 냄새. 야무지게 쥐어진 양손 앞에 시큼한 땀 냄새와 먼지 냄새가 포슬포슬 올라온다. 맡아도 또 맡고 싶은 아가 냄새.      


어떤 수면제보다도 아가 냄새 맡으며 누워있으면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듯 스르르 잠이 든다. 들릴락말락 아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 아기와 함께 있는 방 안 가득, 어느새 아로마 향기 한 방울 뿌린 듯 온 방은 아기 냄새로 가득 피어오른다.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난 아가의 엉덩이에서 구수한 냄새가 스물스물 새어 나온다. 엉덩이에 킁킁 코를 갖다 대면 노오란 누룽지 냄새. 아직 사람 밥을 먹지 않고 젖이나 우유만 먹으니 초식 동물의 것에서 냄새가 지독하지 않은 것처럼 아가에게서도 아가를 닮은 아기 똥 냄새가 난다. 엄마라면 아가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코를 킁킁 가져다 댄다.      


내가 아가를 낳았을 때, 손주를 처음 안아본 친정 엄마는 아가 기저귀를 갈면서 그러셨다.

“이궁 이쁜 똥강아지! 안 이쁜 게 하나도 없네. 울 아가 똥도 예쁘게 누네.”

하셨으니까.     

우리 엄마도 내가 아가였을 때, 작은 내 가슴에 코를 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발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아가의 구석구석 모든 것에 사랑에 빠진 엄마에게 아가의 냄새는 그 세상 어떤 냄새보다 향기롭고 사랑스러우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아가의 냄새가 바로 내 코앞에 있다. 살결을 부비고 만지고 싶지만 지금은 나보다 훌쩍 자라 버린 덩치 큰 사내 하나.

    

그럼에도 다 커버린 내 아들 너머로 눈감으면 떠오르는 아가에게 코를 킁킁 갖다 대며 그때의 냄새를 어루만진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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