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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27. 2024

브런치 DAY 2 당신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엄마, 내가 엄마 아빠한테 물려받은 건 뭘까?"

"음, 엄마, 아빠의 미모?"

"글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그냥 예쁜 거지. 히히히"


꼭 그렇게 점점 예쁘지 않게 말하기 시작한 딸, 인정하지 않는 아들. 다 부모를 닮는 것이다. 알겠느냐?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준 것인가! 도대체 뭘 했느냐고 자문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물려준 생물학적 유전 말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과 좋은 가치관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성실한 자세와 바른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 부지런한 습관, 독서하는 자세, 학습 습관 등.


'뭐 하나 남아있는 것 같지 않은 이 허탈함과 당혹스러움'은 어찌할 것인가!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공들여 잡아온 습관들은 모두 어디로메다요.


나에게 부모님은 부지런한 자세(성실함)와 시간을 소중한 태도를 물려주셨다. 주말 아침엔 일찍 늦잠을 자면 아버지한테 혼났던 기억이 있다. 늘어져서 누워 자고 싶은데 아빠는 오빠들과 나를 깨우셨다. 새벽같이 일어나셨던 아버지와 엄마는 우리를 깨워서 꼭 밥을 먹이셨다. 여전히 나는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


"시간은 금이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었다. 아침에 혼날까 봐 일어나기 싫은 마음을 누루고 벌떡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떼쓰던 시절이 아니었고 통하지도 않았기에 혼나기 전에 일어나는 게 상책이다. 어릴 때는 그런 게 싫었는데 지금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부지런하게 일어나서 무엇이라도 하는 자세를 가진 나를 만들어주셨으니 말이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조각조각 잘 활용할 줄 아는 나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부유하게 크진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다. 사치를 부리지 않게 검소한 생활 자세도 물려받았다. 필요하지 않으면 크게 사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끔씩 엄마가 사시는 물건들에게 뭐라고 하셨는데, 엄마는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도 아빠에게 가격을 제대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필요한 물건들은 다 엄마가 사시니, 어찌 보면 속이기도 쉬웠으리라. 그것이 아빠와 함께 사는 방법이셨다.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가족의 평화를 위한 엄마의 지혜랄까.


수도꼭지도 항상 냉수 쪽으로 돌려놓으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별 걸 다 잔소리한다고 듣기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물을 쓰고 나면 수도꼭지를 냉수 쪽으로 돌려놓는다. 난방비를 아끼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물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냉수 쪽에 있든 온수 쪽에 있든 상관없지만 온수 쪽으로 틀어진 채로 물을 틀면 잠깐이라도 급탕비용이 발생하니까 말이다. 어느 순간, 이런 습관들은 내 것이 되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소한 태도나 습관들은 모두 오랜 세월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토록 사소한 습관 하나, 밥 먹고 양치하기, 밥 먹고 설거지 그릇 갖다 두기, 일찍 자기, 정리 정돈하기, 인사하기 등 이 모든 일상의 행동들이 습관이 되기까지 하루에도 3번 이상, 일주일, 한 달, 1년, 아이들이 자라온 시간만큼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는지. 거저 얻어지는 것들은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님을 더욱 존경하게 된다.


'밥그릇 담가 놔야지, 쓰레기 바로 버리렴, 자기 전에 양치해라'와 같은 잔소리들. 책 좋아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책 무슨 책 읽어줄까?' 하며, 피곤한 몸으로 지치는 날에도 양쪽에 앉혀두고 온 마음으로 읽어주었던 시간들. 일찍 재우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잠자리를 봐두고 조명을 어둡게 하던 잠자리 작전들. 어둠 속에 들려주었던 엉터리 같은 상상 속 이야기들을 얼마나 창작해 내었던가.


온 정성을 다해 쌓아 놓은 습관은 유통 기한이 길기도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것을 허물고 다시 정립하는 사춘기의 터널을 지날 때면 와장창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그동안의 수고로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함께 무너진 습관을 허탈하게 바라볼 때도 있다.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던가' 하면서 말이다.  


'습관'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 주는 것 같다.


다만, 나처럼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생활 습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나의 것이 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아본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가 아이에게 물려준 것은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나의 나쁜 습관들까지 자리 잡을지 모르는 두려움이 생기지만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최선인 것 같다.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바른 인성과 태도, 좋은 습관을 물려주게 되기를.



부모님을 생각하면 '情'이 생각난다. 정이 많은 사람들. 엄마는 음식을 하면 손이 크다. 손수 만들어서 나눠 드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여전히 음식 하는 것을 즐겨하시고, '아, 밥 하기 싫어, 귀찮아!' 하는 소리를 엄마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신이 아플 때에도 몸을 일으켜 아빠의 끼니를 챙겨주셨으니까. 옛날 사람들이 다 그러했으려나. 우리 부모님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에도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고 여전히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살아가신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시면서도 아버지는 정작 당뇨로 많이 드시지도 않으시면서 사람들과 나눠먹을 커피를 타고, 과자며 과일을 잔뜩 챙겨서 나가신다. 오히려 엄마가 적당히 하시라고 말리시는 정도. 노인정에 가서 형님들 챙기느라 빈손으로 들어가신 적이 없다.


얼마 전, 친구가 아파서 있는 동안에도 친구의 반찬, 친구 딸의 반찬을 해서 갖다 주시거나 최근에도 계단에서 넘어진 친구를 위해 장을 보러 가신다고 했다. 당신은 다리도 아프고, 손가락 관절도 시원치 않으시면서 다녀오시고 나서 며칠 고생을 하시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무거운 짐 들고 올라간 엄마 모습을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당신보다 더 아픈 친구를 또 어떻게 안 도와주냐고 하시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 상황이 되면 나도 똑같이 할 것 같아서이다.


나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엄마처럼 손이 사람도 아니고, 음식 솜씨가 좋은 것이 아니니 다른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나눈다. 부모님의 마음을 따라갈 수 없지만 뜨거운 마음을 가진 부모님의 사랑으로 따뜻한 마음을 조금씩 더 데워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렇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부자라 아니라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보물들을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나는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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