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거북을 선택한 아들

거북이에게 내가 졌다.

by 빛방울

크리스마스날.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 몰래 산타가 되느라 마음이 분주했는데 이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따로 챙기거나 들뜬 기분으로 뭔가를 준비하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의 방식대로 그 시간을 다르게 만들었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환하게 켜진 거북이 수조 곁에는 카드가 한 장 펼쳐져 있었다. 누가 카드를 썼나? 하고 기대에 차서 들여다보니,

"엄마에게"가 아닌 "To 거북이"


안녕 거북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쓴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 그러니까 2016. 9. 내 생일에 너를 처음 보고 데려왔었지. 엄지 손가락만했던 너는 이제 내 손보다 커졌어. 처음에는 하루 대부분을 너와 놀고 관찰하는데 썼지만 요새는 많이 관심을 못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밥주는 것도, 씻기는 것도 미루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 매일 바뀌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귀찮음이 더 컸던 것 같아. 이제는 정말 바뀌도록 노력해볼게. 너와 함께한 시간이 9년이 넘었지만 가까운 것 같진 않아. 앞으로는 정말 관심을 가져즐게. 조명도 자주 켜줄게. 지금까지 미안한 얘기만 했네. 사실 요즘 관심을 못주는 건 사실이었지만 너가 소중한 건 사실이야. 앞으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렴.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지만, 아직도 크리스마스 카드가 거북이 집 앞에 펼쳐져 있다. 볼 때마다 거북에게 진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아들이 쓴 편지가 내내 가슴에 닿는다.


요즘 너에게 관심을 못주는 건 사실이지만 너가 소중한 건 사실이야.

아들이 거북에게 쓴 편지 중에서 이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엄마가 너에게 거친 소리, 높은 소리로 대할 때가 많지만 네가 소중한 건 사실이야.'

아들의 편지를 읽으며 이 말로 바꿔서 말해본다. 문득 미안하고 고맙고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마음이 뭉턱 쏟아졌다.


그래, 아들 너도 엄마가 싫어서 말 안 듣고 도끼 눈을 뜨고 퉁명스럽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중학생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엄마에겐 까칠하고 예민한 고딩이. 서운하고 속상한 게 많지만 너도 엄마가 소중한 존재일 거라고 믿는다.


너의 말대로 엄마가 좀 더 다정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 아직도 너의 까칠함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웃기는 말로 나의 화를 풀어주기도 하고 농담하며 능구렁이처럼 넘어갔던 너는 엄마를 그렇게 안아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꼭 닫긴 방문 너머에서 엄마에게 보내는 '엄마, 죄송해요!' 문자는 너도 어렵게 용기내어 보냈다는 것도 다시 떠올린다. 서로의 문을 꼭 닫는 일이 점점 많았던 순간들을 넘어 너는 먼저 '엄마!'를 불렀고 나는 말없이 식탁에 음식을 내어주었다. 용기없는 우리끼리의 작은 신호처럼 서로 미안하고 고마운 것을 알기에 말없이 넘어가는 일들이 많았다.


어쩔 때는 말빠른 핑퐁을 넘기며 결국은 그 채마저 던지고 나서야 점수도 매길 수 없게 끝나고 마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던져버린 나의 찌그러지고 날카로워진 공들을 돌려받지 못한 채 후회만 남기게 되었다. 참 오래 너와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제 조금씩 서로를 알아채고 조금씩 물러설 때가 많아지긴 했다. 그럼에도 자꾸만 너와 부딪히는 건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9년 동안 함께한 우리 거북이도 엄마대신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을 듯 하다. 물 갈아주는 것을 미루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북을 책임지고 씻기고 밥주는 건 여전히 해내는 걸 보니 고맙고 새삼 기특하다. 앞으로도 몇 십년을 더 함께 할 거북이는 아들이 장가갈 때 함께 떠나보낼 예정이다.


거북에 대한 너의 사랑을 이제 확인했으니 엄마도 마음이 놓인다. 엄마가 너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지 못했지만 너의 사랑을 확인하며 서운한 마음은 내려놓았다.


네가 엄마에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에 대한 너의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닌 걸 알기에.

메리 크리스마스!

아주 아주 지난 인사가 되었지만, 너에게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우리 아들의 하루 하루가 크리스마스처럼 매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