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는 짐이 들어오는 발소리에 귀 기울며 그에게 줄 시계 줄을 손에 꼭 쥐었다. 짧아진 머리칼을 발견한 짐은 당황했다.
"여보, 머리카락은 곧 자라날 테니까 괜찮아요."
"머리카락을 팔았다고요?"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어요."
짐은 괴로운 눈빛으로 델라를 바라보다가 외투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의 선물은 델라가 갖고 싶어 하던 고급스러운 머리핀.
"당신의 긴 머리에 어울리는 머리핀을 주고 싶었어요."
"아...."
"나는 당신에게 시계줄을 주려고 준비했어요."
"당신..."
크리스마스 선물 (오헨리) 민족의 문학 캡쳐 사진
델라를 위해 시계를 팔아 머리핀을 산 짐.
짐을 위해 긴 머리칼을 팔아 시계줄을 산 델라.
크리스마스 선물의 한 장면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당황스러운 장면을 마주하고 잠시 멈춰진 순간. 그리고 이내 서로를 껴안았다. 서로의 선물이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그들이 서로를 안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선물 안에 담긴 마음을 가슴 깊이 느끼며 눈물이 차올랐을 것 같다. 아프지만 왠지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선물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그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봄이와 나는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2년은 넘게 걸리는 일이니까. 그 선물은 바로 머리카락. 델라처럼 머리카락을 길러서 어디 팔 곳은 없지만 누군가를 위해 쓰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 중에 탈모를 경험하는 어린이들에게 가발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보내는 머리카락은 어머나 운동본부 보내지고 기부절차에 따라 머리카락을 발송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예전에는 머리카락을 기부할 때 염색된 머리나 파마 한 머리는 사용이 안되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파마 한 머리도 되고 염색 머리도 가능하다고 하니, 꼭 도전해 보시기를 권한다.
사진출처 예스24 캡쳐 - 아이들과 머리카락 나눔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기 좋은 그림책
처음 어머나 운동본부를 알게 되었을 때 딸에게 나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머리카락이 필요한 소아암 환자들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봄이는 6살부터 한 번도 자르지도 않고 4년을 길러서 10살이 되던 해에 기부를 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이의 머리라 그런지 생각처럼 길게 자라지 않았다. 그저 두면 자라는 머리는 누군가를 위해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 한켠에 웅장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왠지 잘 지켜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12월에 보내고 몇달이 지나서야 발급받은 기부 증서
아이의 긴 머리는 감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아이의 머리는 자고 나면 엉키기 일쑤. 빗질을 하다가 빗에 머리가 턱 하고 걸리는 순간, 아이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원망하는 눈으로 노려보기도 했다.
"봄아, 그냥 머리 좀 손질해서 짧게 자를까?"
"안 돼, 아직 25cm 되려면 멀었잖아!"
봄이가 혼자서 머리를 감기 시작할 때면 머리는 더 난리가 났다. 머리 부분마다 머리 냄새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제대로 샴푸와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드라이기로 말려주다 보면 덜 감은 냄새가 스치고 지나갔다.
바쁜 아침에 긴 머리를 빗어 머리를 묶어주는 바쁜 워킹 맘에겐 큰 일 중에 하나.
"오늘은 양갈래로 묶어줘."
"오늘 입은 이 옷엔 위로 높이 올려서 똥머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아."
"한쪽으로 묶어서 땋아줘."
어느 날은 딸아이의 친한 친구가 염색하러 가는데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다.
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염색을 한다는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염색을 하거나 파마하면 머릿결이 나빠진다고 안 하겠다는 딸을 보면서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에겐 당연히 주어진 머리카락이 조금만 애써서 기르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봄이의 마음에도 순간순간 그런 마음이 자라나지 않았을까?
두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은 딸과 나도 함께 하기로 했다. 마흔 훌쩍 넘은 새치 많은 아줌마가 매일 긴 머리를 휘날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치 염색도 하고 영양가 없는 머리끝을 다듬고 영양도 주며 머리카락 관리를 해주었다. 세팅을 한 머리의 굽슬거림이 없어질 때까지 버티었던 2년의 시간. 한 번씩 치렁치렁 긴 머리가 지저분하게 느껴지면 순간, '자를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이 머리카락은 내 머리카락이 아니었기에 한번 마음을 먹은 일을 고수하기 위해 굳게 다짐을 해야 했다. 사실 그냥 두면 자라는 게 머리카락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눈을 뜨면 방바닥에 카펫처럼 깔려있는 긴 머리카락을 보면 너무 괴로웠다. 나 말고 긴 머리 소녀가 또 하나 있지 않은가? 욕실에도 한가득, 거실 바닥에도 머리카락은 여기 저리 굴러다녔다. 밥 먹을 때에는 어느새 머리카락이 국에 담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습관처럼 머리를 한쪽으로 모아, 한쪽 어깨로 내리면 친한 동료가 "오, 라푼젤!" 하고 외쳐주어서 웃어버린 일도 있다. 긴 머리로 이쁜 척하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나는 한동안 라푼젤이 되기도 했다.
학기 초 공개수업을 보러 오신 학부모님께도 '나눔'을 주제로 한 수업이었기에 머리카락 기부 이야기를 함께 전해주고 언제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을 전하기도 했다. 우리 반 친구 중에는 기부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겠다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이 하게 되는 작은 실천이 삶을 살아가는 일부가 되고 어떤 부분으로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로 자라나지 않을까? 바로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빛을 낼 아이들이 될 테니까.
드디어 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할 시간.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혹시 몰라 미용실 원장님이 자로 머리 길이를 재고는 싹둑!
오래오래 무거웠던 머리카락의 무게는 한순간 가벼워지고 마음은 묵직하게 뿌듯함이 자리 잡는다. 얼굴 뽀얗고 예쁜 꼬마 친구가 모자 대신 예쁜 가발을 쓰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너와 나의 머리 한다발 선물하는 날
어린 암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그저 긴 머리 싹둑 변신하는 날. 미용실 바닥에 버리지 마시고 '어머나'로 가벼이 보내시라고 권해본다.
머리를 기르는 일이 이토록 의미 있어진다는 것을, 작은 나눔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을, 작은 나눔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나눔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