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차분하고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사람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듯 지나온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을 긴장 속에 살아야만 하는 나는 베짱이 같은 그들의 모습을 멸시하고 가까이하지 않았다. 나는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나도 그들처럼 아무 목표 없이 시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멍청한 게 뼛속 깊숙이 있는 나는 단 한순간도 숨도 못 쉴 정도로 노력해야 아주 조금의 조금이나마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람이 매일 같이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건 그들의 기준이다. 나는 내게 안된다는 말들을 하나같이 부셔왔었다. 오늘의 퇴근길에 보인 베를린의 풍경은 나를 정신 차리게 다시금 옛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말을 이렇게 해도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고 크게 치솟았던 성적과 등수에 무서울 게 없었던 열아홉의 나는 벽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같은 반 동창이 있었다. 초, 중학교 때부터 전교권에 내려오지 않았던 이 동창은 하향 지원으로 이 꼴통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당연하듯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았다. 나는 고등학교 2년 동안 이 동창과 같은 반이 되지 못한 것에 내심 아쉬워했다가 3학년 때 같은 반에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고 좋아했었다. 정말 이겨보고 싶었다.
이 동창생에게는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이 있었다. sky에 다니는 친형, 남부럽지 않은 재력, 운동 신경, 외모, 그리고 총망 받는 인품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
같은 반에서, 모두가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이 이 사람이었고, 누구도 가까이할 수 없었던 사람이 나였다.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나는 아침 등교 시간 6시 집을 나설 때부터, 집에 다시 올 11시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공부했었는데, 어째서 매번 저 친구한테 지는 것일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중간, 기말고사 등의 학력고사가 끝나면 야자 시간에 방송으로 등수를 공고해 주는 문화가 있었다. 누구보다 이기고 싶어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기말고사를 대비했음에도 2등에 그쳤다. 그것도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잠을 1시간을 자도, 단 한 번도 쉬는 시간을 갖지 않아도, 이길 수가 없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러면서 그 동창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여유로워 보였다.
머리 쓰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요령이 있는 것인가.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여유롭게 1등 하는 그 모습에는 나에게는 없는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들도 그것을 아는지, 각종 칭찬의 몫은 항상 그 동창의 것이었다.
그 동창을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참을 수 없는 화가 나 자신을 향하였다. 내가 싫었고, 또 싫었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싫어하게 된 걸까. 17세에 시작한 일기의 주제는 몇 년이 지나도 바꾸어지지 않았었다.
지금 보면 이 독기나 화를 남에게 돌리기는 싫으니까 내가 받으려고 한 것 같다. 선인인척 하는 악인이 따로 없다. 나는 그냥 그들의 여유로움을 부러워한 것이다. 욕심이고 덜 성숙한 어리석음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쉬어야 할 때 쉬는 방법을 모르고 여유를 가져야 할 때 여유를 가질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건 단순히 학습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선택한 거다. 복잡한 생각은 내가 왜 여유로운 사람의 유형도 갖지 못하였는가이다.
이 끊을 수 없는 주제에 대한 답을 언제쯤 찾게 될 것인가. 여름, 겨울 방학처럼 긴 방학을 떠나지 못하는 내 상황을 보여주는 노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