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돌아온 우리 집
25년의 마지막 주 Christmas
이번엔 로키 산맥 너머로 넘어간다. 저 강대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항공기 재난 영화의 순간이 떠오르지만 어느새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물의 도시가 해안산맥 사이로 눈에 비쳤다. 피요르드 같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맥의 물결들이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다.
잘했다. 고생 많이 했다.
9년 만에 알류샨 열도의 항공길을 지나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마중 나온 울집대장님은 나를 쉽게 발견하고는 툭툭 서투른 말을 던지신다. 어색하게 안은 모질이의 손을 잡아주는 당신의 손이 더 거칠어지셨다. 내 짐 카트를 덥석 잡아 빼 성탄절의 인파 속을 서두르듯 뚫고 나가는 당신의 모습에 한 번, 공항 밖의 졸음도 확 깨지는 찬바람에 두 번, 그리고 다시 또 보게 된 주차비용에 세 번 화가 났다.
거칠어진 몸, 배달 장사, 2시간의 주차비
고향의 땅을 밟았다는 설렘도 잠시, 말이 없어진 모질이가 있다. 아픈 데는 없는지, 또 나는 모르는 힘든 일들이 없었는지, 목을 차고 넘어오는 말들을 꾹꾹 눌러 놓고는 창문만 바라본다. 참 살갑지 못한 자식이다.
어차피 짐 때문에 늦게 와도 된다니까... 별로 안 기다렸다는 아닌 척 얼굴의 아버지. 나는 또 금명이 가 됐다.
유학길에 나선 이래로 지금까지도 공항 주차비는 기본 값을 낸 적이 없다.
2022년 첫 귀국 때는 오래 기다린 당신에게 화가 나 타박하듯 말한 불효자식이 있다. 밀집된 군중 속의 코로나는 안중에도 없나 보다. 마스크 써서 괜찮다는 울집 대장. 추위가 이렇게 뼛속까지 치고 들어오는데 배달은 어찌 다니는데. 왜 이리 서두르는지 쏟은 카트 짐을 주워 담고는 가자는 말만 반복하는 당신이 있다.
해삼, 낙지, 굴
어두워진 인천대교를 서둘러지나 도착한 우리 가게, 여사님을 서투르게 안아드렸다. "고생했다. 잘했다."
대장님과 똑같은 말을 해주는 당신에게 그래도 이제는 쉽게 안아드릴 수 있다.
한국이 영하 30도의 땅보다 더 춥다. 입 돌아갈 것 같은 정신 나간 날씨, 몸을 녹이려 난로 앞에 앉은 지 10분도 안 되어서 해산물이 가득 담긴 접시들을 들이대는 대장님. 전화로 지나가듯 꺼냈던 내가 먹고 싶었던 것들이다.
부산 이모, 푸른 바다, 눈물 바람
세미나와 미팅, 각종 출장 업무들을 마치고 부산에 계신 친척들을 보러 향했다. 힘들게 내려왔다는 이유로 눈물을 보이는 이모. 앉은자리가 무섭게 채워지는 접시들은 테이블의 크기가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 "아니 이모 KTX 타고 3시간도 안되어서 금방 왔다니까요"라고 말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 닫고 밥을 먹고 있어도 다시 또 눈물을 훔치고는 "고생했어, 강박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훌쩍이는 당신을 본다. 답 정해 놓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성질은 집안 특성임에 분명하다.
이모는 아침 일찍 나를 데리고 절에 가고 싶으셨다. 바다 위에 있는 법당. 하얀 기둥초를 켜놓고는 연신 기도를 하셨다. 중얼중얼 들리는 이모의 간절함이 우리 집 여사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부산 일정을 마치고 길을 떠나는 모질이 조카에게 이모는 여전히 눈물을 보이셨다. 그놈의 강박사 강박사... 상전 모시듯 대해주는 나는 그냥 공부만 오래 한 이들의 모질이다.
이모는 내가 부산을 떠나서야 가방 안에 넣어 놓은 것을 알려주었다. 코찔찔이 때부터 둘째 가면 서러운 아재가 된 지금도, 이 가족들은 언제나 나를 못 챙겨줘서 안달이다. 본인도 먹고살기 힘들면서.
마 씨 일가 나의 또 다른 어머니들은 푸른 바다의 도시에서도, 산속에서도, 도시 속에서도 나의 빛바랜 가치를 높여준다.
태평양 저 너머의 모험
다시 또 인천으로 향하는 밤의 자동차. 아침부터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당신의 모질이가 있다. 이제는 학위 걱정할 일이 없다며 세상 편한 척, 쿨한 척, 2년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말 수가 많아졌다. 그렇게 다짐하며 밤바다를 건넜던 유라시아의 여정을 마치고 이제는 동해 바다 저 너머의 땅으로 향하게 됐음에도, 다시금 질질 짜고 있다. 스스로도 이런 내가 더럽게 짜증 난다.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못해준 것만 상기된다. 내가 받기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혹여 보풀이 떨어질까 꽁꽁 싸매 넣어둔 침대 커버도, 얼굴이 시려 덜덜 떨까 몰래 넣어둔 봄버맨 같은 넥워머도, 휴대폰 조심하라며 바늘로 꿰매 놓은 패딩 안주머니까지도 지금껏 눈물로 짜증 내는 이유가 되었다. 이러니 나는 당신들을 위해 다시 또 멀리 모험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음 모험은 어두운 밤바다를 혼자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