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에도 차가운 바람의 순간에도 모래는 떨어진다
생의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들 안 될 거라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해내고 말 거다.
2009년 일기장에 써놨던 문구였다. 지나치게 큰 글자, 알아보기도 힘든 흩날리는 필체의 이 꼬부랑글씨들은 열정, 노력, 근성 등 각종 동기부여의 요소들이 가득한 글들 뿐이었다. 작성 당시의 감정이 상기된다. 페이지를 더 넘겨보니 되지도 않는 억지쟁이에 두서가 없는 그저 막연함이 많은 모질이 같다. 글 중간중간에 자기 비하가 매번 섞여 있지만, 결말은 언제나 행복함을 바란다. 꽉 막힌 답정너, 19세의 나를 부감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
17세의 다짐, 17년이 지난 후, 그래서 나는 그렇게 수백 번 다짐한 글처럼 끊임없이 발전하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부족하고, 재능의 벽에 한계를 마주해 왔었다. 그때마다 나는 정서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은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하는 일은 왜 잘 안 풀리는지, 갈수록 꼬이고 꼬이는 일들의 연속이고, 돌파할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은 그런 상황. 숨조차 쉽게 내쉬지 못한다. 당장의 미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보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한숨이 내 심장을 턱턱 막히게 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장면은 당신이 당신의 가장 아끼는 보물에게 실망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캐나다로 대륙을 바꿔오며 다짐한 것들이 있다. 그런 다짐들로 꿈에 더 가까워지고 싶은 소망이었지만 이번만은 더욱더 심한 자기 비하가 섞여 있었다. 지난 1년은 내가 과연 이 길에 맞는가 하루하루를 의심하였다. 인생의 전부를 바쳐서 공들인 길인데, 나는 언제쯤 매번 마주하는 이 재능의 벽에 익숙해질까. 모래 같은 멘탈은 쌓아도 쌓아도 끊임없이 무너진다.
당신의 모질이가 또 작아질 때면, 그만 포기하고 돌아오라고 한다. 그만하면 됐다.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답도 없는 모질이는 또 근성이나 노력 따위의 억지를 부리며 되려 크게 화를 낸다. 9,000 km 가 떨어진 저 멀리서도 나를 위해 불빛 비추어주려는 당신에게 아니라 나에게.
가족들의 한숨은 나를 도와주지 못한 그들의 답답함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마음에 더 화가 나고 스스로를 미워했다. 마음이 무거워져 하염없이 심해로 내려갈 때도 이미 알고 있다. 나를 무겁게 하는 건 그런 상황이 아니라 나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런 내 정서가 모래시계 속 모래와 같아 보인다. 심해바다, 극지대, 외딴섬 한가운데 어디에 던져 놓아도 다 떨어진 모래는 다시 돌리기만 하면 되는, 전기나 다른 화석 에너지 연로 따위는 필요 없는 그런 간단한 기계장치. 지금까지 해왔듯, 다시 또 해보면 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기계 장치가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점차 동력원은 생기를 잃어갈 것이다.
그래도 이런 나에게 신이 또 죽지 말라 단비를 내려줄 것이라 믿는다. 매 순간 오직 하나만 한다는 내 선택들 덕에 지금껏 동력원이 되어 시계가 돌아간 것이니, 다음 미지의 동력원들도 마찬가지이겠다.
앞으로 어떤 동력원이 나를 지탱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선택들의 끝에는 지난 순간들은 결국 웃어넘기는 나를 생각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모래시계가 부서진다고 해도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