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온기와 포근함의 또 다른 이름

by 폐관수련인

연필과 종이, 망치와 못, 그리고 피아노와 건반과 같이 양가성의 관계를 갖는 존재들이 있다. 서로 비슷할 것 같지만, 비슷하지 않은, 목적은 다른 존재들. 그러나 이들은 필연적인 관계이다. 따뜻함이 있으면 그걸 느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것처럼. 가족이란 단어는 나에게 그런 의미인 것 같다. 특히 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은 동생.


한국에 있을 때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가게 위층에 올라가 잠을 청하다 얼마나 지났나, 정신도 못 차리는데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이다 잊었던 휴대폰을 찾으러 계단에 내려갈 때 아버지가 황급히 무언가 숨기셨다. 아버지는 가끔 아들의 사생활이 궁금하신 듯 휴대폰을 몰래 보시곤 했다.


"뭘 보고 있어요 아버지" 방안에 혼자 자고 있던 내가 잠이 덜 깬 어투로 물었다.

갑작스럽게 문자 메시지가 와서 봤다고 둘러대는 아버지. 감정표현이 서투른 티를 내신다.

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학부,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도, 아들의 생활이 궁금하신 아버지이시다.

"직접 물어보면 되는걸 뭘 몰래 보고 그래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여쭙으니 그냥 궁금해서 봤었다는 말로 토라지듯 대답하신다.


사춘기 아들이 어려웠던 아버지, 다 큰 아재가 된 당신의 모질이에게 이제는 궁금한 것들은 직접 물어보신다.

그만큼 아들이 편해지신건가, 아니면 아버지의 자존심이 낮아진 건가.


사실 그때 계단을 내려가다 아버지가 내 휴대폰에 무엇을 하셨는지 봐버렸다. 휴대폰에 금이 간 폰그립을 이쑤시개로 한 땀 한 땀 순간접착제를 발라가며 집중하고 계셨다. 혹여나 그 투명한 접착제가 다른 곳에 묻지 않게 얼마나 공을 들여 붙였는지, 크랙은 메꾸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아주 조금의 접착제가 휴대폰 케이스 위에 묻어있어 아버지의 서투름을 떠나서, 아버지의 이마에 송골송골하게 맺힌 땀방울이 기억에 남는다. 그저 당신의 아들이 사람 많은 결혼식에 간다는 이유로 성해보이는 휴대폰을 고쳐주고 싶으셨나 보다.


오빠를 많이 원망하듯 괴로워한 동생이 있다. 덩치의 그림자에 빛도 못 보고 커온 온실 속 화초. 주변인들의 원인 모를 크기 비교에 많이도 나를 미워했겠다. 동생이 내 탓을 하며 화를 내어도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돌을 던져봤자 본인만 아플 테니. 그럼에도 속마음을 거꾸로 표현하는 방식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시간이 지나 동생은 학위를 갈망하게 되었다. 막상 대학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빛으로 걸어가는 듯했다.

그럼에도 대학원의 초기, 서투른 연구원의 행동들은 아버지와 닮아 이 둘도 어쩔 수 없는 부녀관계다 했었지만, 당신의 또 다른 자식이 더 멀리 나아가는 성장을 한다는 점은 당신의 과거와는 아주 살짝 다른 것 같았다. 이것도 당신이 더 멀리 나아가게끔 땀방울을 맺혀줬기 때문이다.


어느새 동생은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동생은 이미 그림자에 드리워지지 않을 정도로 빛이나 보이지만, 역시 그림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물론 항상 삶의 문제가 잘 풀리기만 할 수는 없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이들의 옆에서 빛으로서, 그림자로서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