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대신 집밥!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회사마다 개성 있는 송년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할 듯하다. 가장 무난한 송년회인 고생한 직원들과 함께 먹는 맛있는 식사 한 끼의 송년회부터, 야외활동을 하는 송년회,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등 요새는 한국도 회사마다 다양한 송년회가 진행되고 있다. 타로카드나 마술쇼, 뮤지컬 등 공연을 함께 보는 이색 송년회도 있는 듯하다.
미국에도 송년회가 있다. 내가 근무한 연구소에서도 1년에 한 번 송년회 혹은 신년회를 한다. 점심시간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선물 추첨도 한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자유롭게 여기저기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 약간의 술(맥주)이 함께 하는 것 정도일 듯하다.
한국의 회식과 다른 것은 회사마다 회식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회식도 더치페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술은 무조건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내는 경우가 많다. 함께 바에 가면 각자 서로 크레디트 카드를 오픈해 놓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내가 먹은 만큼 먹고 클로징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 와서 일을 하면서 가장 좋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던 것이 회식문화였다. 대부분 저녁 시간은 가족들과 보낸다는 인식 때문인지 회식을 자주 하지도 않고 회식이 필요하면 점심을 함께 했다.
술자리가 없으니 사적인 친분은 어떻게 쌓을까 싶었는데 술자리 대신 집밥이 있었다. 바로 집으로 초대하는 것. 나도 종종 초대를 받았다.
특별히 다국적 팀이었던 우리 팀은 특별한 초대가 많았다. 중국인 친구는 중국에서는 자신의 생일에 자신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며 팀원 모두를 초대해 함께 핫팟을 먹었다. 영국인 친구는 펜케익 데이(Shrove Tuesday-사순절 수요일 전날로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이 날 펜케이크를 먹는다고)라고 초대를 했다.
대부분은 호스트가 준비하지만 각자 하나씩 먹을 것을 가지고 가는 포트락(Potluck) 파티형태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호스트가 좀 더 부담 없이 초대할 수 있는 듯하다. 음식을 모여서 함께 준비하다 보니 서로의 가정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함께 감자를 깎던 독일인 이민자인 친구는 아버지가 감자 농장을 해서 어릴 적부터 하도 감자를 깎아서 감자를 기가 막히게 깎는다고 했다.
1년에 한두 번 상사도 집에 초대를 했다. 상사의 집을 가는 건 태어나서 난생처음이라 어떻게 가나 많이 떨리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가족도 함께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좀 더 개인적인 부분들을 알게 되어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의 집을 오픈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오픈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 그런지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의 회식에서도 가족동반 회식이 종종 생겼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직장 상사의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친구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예전에는 한국도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점점 그런 모습의 문화가 없어지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든다. 오히려 한국은 점점 개인의 삶이 중요해지면서 예전에 좋았던 문화들이 없어졌달까. 아마도 여러 복잡한 이유 때문일 테다. 현대 한국인의 삶이 너무 바빠서일 테고, 개인의 삶이 더 중요 해져서일 테고, 누군가를 개인의 공간에 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워일 수도 있다. 이러쿵저러쿵 타인의 삶과 집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인 문화 하면 '정'이었던 걸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나이가 들수록 더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집에 활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스스로 벽을 허물고 음식을 통해 정과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산다면 집이 좀 더 활기로 채워지지 않을까? 함께 일하는 사람 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을 초대하는 건 우리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한다. 올 연말에는 나도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해 밥 한 끼 먹어야겠다. 술 대신 집 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