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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Nov 29. 2023

엄마의 행복을 주는 커피

일상 속 아름다운 한 컷 

얼마 전 한글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감사한 것 5가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대부분 아이들이 가족, 친구, 학교, 교회 등에 대해 적었다. 감사한 것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니 아이들은 감사한 것이 하나 둘 더 생각이 났는지 연신 추가해서 이야기했다. 멀리 있는 친구들과 함께 연락할 수 있는 인터넷,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책, 우리를 고쳐주는 의사 선생님들, 911까지. 주변에 많은 것들에 감사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했다. 


그중에서 한 아이가 코피라고 적어서 뭐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라고 했다. 커피를 쓸 줄 몰라서 코피라고 적은 것. 맞춤법을 고쳐주면서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바쁜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커피는 잠깐동안 여유를 가져다줘 행복했을 테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함께 상상하니 그 장면이 인생의 아름다운 한 컷 같이 느껴졌다.  


커피와 함께 한 내 인생의 한 컷은 어떤 모습인가를 더듬어보았다. 


1.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엄마는 수술을 많이 해서 음식을 잘 못 드셨다. 엄마는 밥 대신 하루 세잔 달달한 커피를 드셨다. 그래서인지 엄마에겐 늘 달달한 냄새가 났다.  


2. 고등학생 시절, 시험 기간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마셨다. '이제 밤새 시험 공부할 수 있어' 난생처음 커피를 대접만큼 가득 먹고 자신 만만했던 나는 배가 불러서 밤샘은커녕 평상시보다 더 푹 자버렸다. 시험은 망쳤지만 나는 카페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첫 남자친구는 자판기 커피를 좋아했다.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그 남은 종이컵을 꾸겨서 컵차기를 했다. 남자들은 저렇게도 노는구나. 신기했다. 


4. 대학원에 들어가자 나는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아침 일찍 학교 앞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연구실로 올라갔다. 그때의 아메리카노는 아침잠을 깨우는 것은 물론 힘든 대학원 시절에 나에게 위로가 돼 주었다.   


5. 20대 후반, 유학하고 있는 친구와 뉴욕에서 만났다.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는 스타벅스 겨울 메뉴인 에그녹 커피를 시켜놓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3-4시간 주야장천 떠들어댔다. 친구의 유학 이야기, 나의 힘들었던 대학원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좋아했던 뮤지컬 이야기. 지금도 에그녹 커피가 나오면 그때가 생각난다.

  

6. 파워 E인 나는 신혼 초 쉬는 날이면 무조건 남편과 외출했다. 특별히 갈 곳이 없더라도 집 근처 예쁘고 특이한 로컬 커피숍을 찾아 1시간이라도 나가 있다 왔다.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꼭 밖에 나가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커피숍에 가서 책 보는 건데 쉬는 거잖아”라고 답했다. I인 남편은 사실 나가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고 했다. 1년 반이면 많이 참았구나 싶어 그 이후로는 매일 나가진 않게 되었지만 어느새 커피숍 탐방은 우리 부부의 취미가 되었다. 


7. 하루는 자주 가는 커피숍에 아이 사진이 하나 붙어 있었다. 아직도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한다. 클레어. 백혈병에 시달리다가 1년도 채 못살고 떠난 그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기리며 손님들에게 커피를 공짜로 대접했다. 나는 SNS에 아이의 사진과 사연을 소개했다. 생전에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커피로 인연이 되었다.  


8.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후배는 본인이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나에게 소개해준다. 우리는 함께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석촌 호수를 걸으며 밀린 이야기를 한다.

  

하나하나 더듬어 보니 나에게도 엄마에게 행복을 준 커피에게 고마워했던 아이처럼 많은 이들이 나의 행복을 위해 애썼구나가 보인다.

 '인생의 소중한 한컷은 커피와 함께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구나' 


커피는 우리에게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공간을, 기억을 선물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쓰디쓴 많은 사연들도 잠시 멈춰서 한 모금 마시고,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름다운 한 컷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일상 속 아름다운 행복을 만들어주는 그대가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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