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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하게 Nov 18. 2020

막걸리를 마셨다

날씨는 얼다가 녹은 듯했다. 그 바람에 설익은 눈은 내리다 추적추적 비가 되었다. 으스스한 습도에 몸은 시리고, 좁은 길목 부딪치는 우산이 버거울 무렵. 모르는 선술집 앞. 모락모락 한 김이 안경에 서린다. 따듯하고 달콤한 기운. 맛있는 안주 냄새가 난다. 아직 늦지 못한 저녁인데 벌써 술집은 그렇지. 아쉽지만 다음에... 언젠가 얻어 마신 전주집 뜨뜻한 모주가 생각나는 날이다. 


오늘처럼 비가 오면 막걸릿집 대문을 호기롭게 열곤 했다. 그러면 열이면 아홉의 황토색 전경. 의자며 상이며 웬만해선 나무로 갖춰놓는데 그 모양은 울퉁불퉁할수록 맛이 산다. 벽에 진짜 황토는 어려워 주로 갈색 페인트를 칠하고, 간혹 훈민정음 벽지를 발라놓는다. 대들보에 서까래가 무슨 연유인지 천장에 늘어져 있고, 조롱박부터 짚신까지 알 수 없는 맥락의 소품들이 주렁주렁하다. 이렇듯 조악한 생김새지만 컨셉만은 분명하다. ‘내가 막걸릿집이다!’ 이런 느낌. 유독 공기처럼 가득한 취기가 도는 건 막걸릿집만의 바이브. 입장부터 나는 벌써 취해 마음이 노곤해지곤 했다. 


비 내리는 처마. 그 아래로 지글지글한 사운드. 이름 모르는 우리 이모님, 너른 불판에 기름을 두른다. 그 위로 파전, 부추전, 해물전에 김치전, 큼직한 것으로 네 개, 다섯 개. 노릇노릇하게 분위기가 오르면 이모님의 뒤집기가 시전 되고, 그 바람에 고인 기름이 들썩이면 찐득한 기름 냄새가 풍긴다. 다른 구석 연탄불에는 두툼한 너비아니. 거기에 가끔 좋은 거 들어왔다는 주인아저씨의 은밀한 접선이 있는데, 그러면 싱싱한 생굴을 먹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주변 테이블에 다 생굴이 있는 걸 보면 딱히 나만 챙겨준 건 아닌 것 같다. 그 밖에 육전, 굴전, 보쌈, 족발, 내 돈 주고는 못 사 먹던 삼합까지. 상다리를 이런 메뉴로 골라놓으면 나라님 부러울 것도 없다. 


이제부터 서울 막걸리. 찌그러진 대접. 뽀얀 아이보리 빛. 가득 채워 벌컥 마신다. 목 넘김은 더위 속 시원한 냉수를 마시듯 해야 한다. 막걸리는 쪼잔해선 안 된다. 간혹 그 꼴이 게걸스럽더라도 막걸리를 마신다면 흉이 못 된다. 단박에 잔을 비우면 가슴에서 통쾌한 기운이 우러난다. 호연지기가 자란다. 열정이 지나친 친구는 트림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비싼 안주 한입. 변변찮은 주머니 사정에 상전처럼 모시지만, 막걸리 한잔이면 아전밖에 못 된다. 고소하게 쓴 뒤끝. 막걸리로 취하자. 흥겨워서 어깨동무하면 옆 테이블 첨 보는 형님. 서로 크게 웃어 본다. 덩실덩실 한 기운. 흥겨운 가락. 조선의 스웩이 넘친다. 


와인은 어려워 못 마시고, 위스키는 비싸서 못 마시고, 소주는 서글퍼 못 마신다. 잊자 잊자 오늘은 잊자며 마시는 술이지만 그래도 신나게 웃고 싶어 막걸리를 마신다. 비관을 살펴 해학으로 풀어내는 것. 우리네 조상님이 물려준 게 그런 거겠지. 설렁탕 봉지를 든 김 첨지의 비극도 종착역은 막걸리였다. 혹자는 탁주라며 여전히 싸구려 취급을 하겠지만, 그 저렴한 혼탁함에 오늘을 숨겨야 내일을 얘기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잰 척, 센 척, 있는 척, 없는 척, 이 척, 저 척 없이 오늘을 누그러트리려 막걸리를 마셨다. 


비만 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시원한 막걸리 생각이 난다. 하지만 술병이 난 이후로 술을 못 마신다. 그래서 여즉 남은 미련에 입을 대더라도 소인배처럼 입만 적실 뿐이다. 내가 소심해진 탓은 대장부같이 막걸리를 대하지 못해서다. 흥겹게 오늘을 덮어두는 법을 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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