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백하게 Nov 18. 2020

개똥길을 추억하며

포장 없는 콘크리트 도로. 그 위로는 개똥이 드문드문했다. 시멘트 몰탈이 주조색이던 동네. 심심찮게 깨진 유리창이 보이고, 집집마다 빗물 자국이 곰팡이처럼 얼룩졌다. 이것들의 콜라보는 그 행색을 빈곤하게 했다. 거기에 ‘그린벨트만 해제되면….’이라는 염불을 외우는 아주머니들. 밤이면 들리는 뉘 집 아저씨의 얼큰한 고성방가. 동네 헐거움이 이만한데 이것도 풍년이면 풍년이랄까.     


하굣길이면. 소망 문방구, 소리 피아노 학원, 이름 모를 빌라들, 창동아파트, 그리고 성민교회. 여기서 나는 친구와 안녕 인사를 하고 헐거운 우리 동네로 들어간다. 개똥을 피하고, 언덕을 올라, 차가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길모퉁이. 거기에 우리 빌라가 있다.     


계단을 중심으로 한 층에 두 세대씩. 총 6세대. 외벽은 흰색 드라이비트.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 물탱크가 있었고, 보일러 난방을 했다. 방 두 개,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 주방 하나. 다들 고만고만한 크기. 언덕 마지막인 만큼 빌라 뒤로는 바로 산이 이어졌다. 정북 사선 영향인지 조경은 북쪽에 그늘져 있었는데, 그래서 늘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질 못했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바로 아랫집에 윤재랑 순진이가 살았다. 또 그 아랫집에는 은진이가 있었다. 가끔 엄마가 없는 날. 열쇠가 없으면 윤재네로 갔다. 윤재 아주머니한테 당연하다는 듯 과일이나 과자를 얻어먹었다. 그리고 윤재를 데리고 옆 동 훈수랑 대선이 형을 불러서 공을 차고 놀았다.     


그리고 저녁 어스름.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날 때. 누구네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로 우리는 흩어진다. 집에는 어느새 엄마가 저녁상을 차리고 있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창문을 넘어본다. 아빠는 언제 오실까. 내리는 가로등의 불빛이 붉은 시절. 늘어진 그림자를 달고 오실 아빠의 실루엣을 기다린다. 엄마에게 아빠가 온다며 호들갑 떨 생각을 하면서     


어릴 적 헐거웠던 나의 동네. 지금 같은 봄이면 개나리와 목련이 볼만했다. 여름에는 무성해진 쥐똥나무 담장의 가지치기를 했다. 가을이면 뒷산에서 밤을 따왔고, 겨울이면 쌓인 눈에 모르고 개똥을 밟곤 했다. 페이브먼트 깨끗한 도로에 우람한 가로수는 아니지만 우리 동네 개똥길도 동네 청소하는 날이면 어느 정도 봐줄 만했다. 그리고 그날은 그 개똥길 붉은 가로등 밑에서 동네 사람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나랑 내 친구들도 그날만큼은 밤늦게까지 놀 수 있었다.     


아직 변한 게 없다는 동네. 끝내 재개발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한번 찾아가 볼까 싶었다. 하지만 윤재도 순진이도 똥개들도 없는 개똥길에서 내가 추억할 건 무엇일까. 빈곤함만 남은 동네에서 내가 반기며 추억할 건 많지 않을 것이다.      


너무 변해버린 내가 그 동네를 온전히 기억하긴 힘들 것이다. 둘 사이는 이제 이질적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깔끔한 페이브먼트를 애착하게 된 나는 다시 개똥길 같은 추억을 갖기 힘들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걸리를 마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