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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하게 Nov 18. 2020

신혼의 크기

작년 12월의 겨울. 친구 A의 결혼식. A와 신부는 두꺼운 코트를 입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나는 공항까지 그 둘을 배웅해줬다. 그리고 계절은 바뀌어 폭염을 앞둔 6월의 끝자락. 아무 말 대잔치의 단톡방에서 언제 만나냐는 말이 발전해 A의 집들이가 결정됐다. 

  

'집들이 뭐 사가지?'


B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 톡은 집들이 당일에야 시작됐다. 나는 가는 길에 다이소가 있는데 거기서 구두약을 사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B는 그럴 바엔 빈손이 좋을 거라고 했다. 우왕좌왕 터무니없는 품목들이 오갔다. 그리고 길지 못한 고심 끝에, 우리는 무지에서 대용량 디퓨저를 하나 샀다. 고민의 흔적일랑 찾을 수 없는 품목에, 그것도 부부가 매일 지나친다는 매장에서. 그래도 B와 나는 구색은 갖췄단 생각에 한숨을 돌렸다. 

 
동호수를 헷갈려 잠시 어리바리하던 차에 이제는 제수씨가 된 A의 아내를 맞닥뜨렸다. 한 손에는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들고 있었다. 멋쩍게 인사를 나눴다. 먼저 올라가라는 제수씨의 인사에 집 좋다는 화답을 했다.  

  

A는 음식 준비 중이었다. 테이블에는 마트에서 사 온 치킨 샐러드와 미지근한 부대찌개가 놓여있었다. 더불어 A는 몇 번 만들어봤는데 괜찮았다며 홈메이드 통닭까지 내놨다. 아직 살림이 어색한 맞벌이 부부가 내놓은 최대치의 성찬. 그런데 안타깝게도 운이 따르지 않아 여기저기 탄 곳이 있었다. 에어프라이어에도 음식이 타는 줄 처음 알았다. 

  

대화의 주제는 보통 A의 흉이었다. 그건 마치 집들이의 정례처럼 자연스러웠다. A를 제외한 셋은 즐거웠고 A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맥주를 많이 마셨고 탄 통닭도 결국에는 잘 먹었다. 가벼운 취기가 유지됐다. 

 
A 부부의 집은 거실 하나에 방 두 개가 딸린 빌라다. 거실과 주방은 구분 없이 싱크대를 포함한다. 딸린 방 두 개 중 하나는 드레스룸. 하나는 침실로 쓴다. 화장실은 욕조 대신 샤워부스. 현관은 주방 싱크대 라인에 맞춰 구석에 형성. 신축 빌라로 인테리어가 깨끗하다. 편의 사항은 옵션에 대부분 포함돼 가구만 들여왔다고 한다. 

 
부부의 집은 신혼의 단출함을 상징했다. 크지 않은 집에선 작은 데시벨의 목소리도 집 구석구석에 닿을 수 있다. 이제 시작하는 둘은 그런 거리에서 서로를 이해해 나갈 것이다. 신혼의 스케일은 이 정도가 알맞다. 누군가에게는 작을지라도 그만큼 단단하게 시작하리라. 

 
작년 추운 겨울. 부부는 두꺼운 코트를 입고 떠났다. 하지만 둘의 종착지는 따뜻한 하와이였다. 겨울 만 되면 여름을 꿈꾸는 나로서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뒤 혼자 지독히 추운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밀린 휴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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