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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May 01. 2023

學而 (2) 실천하기

실천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듣기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은 仁 한 사람이 적다.”(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의 이 말은 지금 사회에서도 굉장히 유효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칭찬해 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좋게 보이려고 할 때가 있다. 가령 친구, 혹은 선배, 직장에서는 상관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이처럼 행동하므로, 이것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공자는 이처럼 행동하는 사람 중에는 仁 한 사람이 적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주희는 주석을 당길 “그 말을 듣기 좋게 하고 그 얼굴빛을 좋게 하여 외면에 꾸미기를 지극히 해서 남을 기쁘게 하기를 힘쓴다면 人慾이 함부로 부려져서 本心의 德(仁)이 없어질 것이다(好其言, 善其色, 致飾於外, 務以悅人則人欲肆而本心之德, 亡矣).”라고 말한다. 이 구절의 앞 구절을 보면, “君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면 道가 생겨나니, 孝弟는 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라는 말이 나온다. 즉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孝弟이다. 孝는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고 弟는 윗사람과 어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잘 섬긴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윗사람과 어른이 바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仁은 주희의 입장을 따르면, 사랑의 이치이고 마음의 德(愛之理, 心之德)이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무릇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비라지 어긋난 방향으로 가길 원하지 않는다.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외면만 꾸미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일 뿐, 타인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은 아니므로 사람 중에는 仁 한 사람이 적은 것이다.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피니, 남을 위하여 도모해 줌에 忠 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귐에 信 하지 않았는가, 배운 것(傳受)을 익히지 않았는가이다.(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반성을 통해 오늘 한 잘못을 내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고, 나아가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돌아보아야 할까? 증자는 이를 위해 세 가지를 말했는데, 그중 忠과 信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忠이란, 자신을 다하는 것이고, 信이란 성실히 하는 것이다(盡己之謂忠, 以實之謂信). 우리는 흔히 盡心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를 직역하면 마음을 다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쉽지 않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다하기보다는 힘을 아낀다. 더군다나 남을 위하여 도모해 주는 일인데, 왜 나의 힘을 다하겠는가. 유학에서 이와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은, 남을 위하여 자신의 힘을 다하는 공부가 곧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다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체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 어긋난 것이 없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곧 자신을 위한 수양이고, 자신을 위한 공부가 된다. 


자하가 말하였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女色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君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친구와 더불어 사귀되 말함에 信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르겠다.”(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우리는 누군가를 보고 배웠다고 말할 때, 학력이나 직업을 따지곤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배운 사람이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보고 배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학에서 말하는 배움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 유학에서 말하는 배움이란, 실천하는 것이다. 자기가 행동하는 바가 仁 하다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곧 배운 사람이다. 

나는 論語 안에서 이 문장을 꽤 좋아한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여러 방면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지식의 넓이나 깊이는 넓어지고 깊어졌지만,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적다(윤리적인 방면에서). 더욱 끔찍한 범죄가 나오고 있고, 법을 공부한 사람은 법을 지키기보다는 그 법의 약점을 파악해서 법에 안 걸리게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자하의 말은 정말로 필요하다. 우리가 아는 것이 많다고 배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배운 것을 삶에서 실천하면 배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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