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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Jan 08. 2021

나이트클럽과 스크린골프의 공통점

나는 나이트클럽 명함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클럽에 갈 만큼 좀 놀게 생긴 외모도 아닐뿐더러 잘 꾸미지도 않아서인 것 같다. 한 마디로 수수하다.


그래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내가 클럽이란 곳에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춤을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서 시끌벅적한 곳을 싫어한다. 소위 '클럽 음악'으로 분류되는 장르 특유의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 처음 보는 이성과의 서먹한 즉석만남,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도 부담스럽다. 클럽 삐끼가 나를 거부하기 전에 내가 클럽을 거부했다. 서로 아쉬울 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클럽 명함을 못 받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학생 때는 특히 심했다. 고등학교 시절 승마 바지를 연상케 할 정도의 쫙 줄인 교복 바지부터 멋짐의 상징이던 흰색 휠라 츄리닝까지 패션 트렌드에 충실했던 나였지만 명함을 돌리는 삐끼에겐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과 수유리에 나가도 박찬호나 홍금보 같은 형님들은 꼭 나만 제외했다. 정작 명함을 받은 친구들은 귀찮아하며 쓰레기통을 찾기에 바빴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을 속으로 부러워했다. 너무 범생이처럼 입고 나왔나. 아니면 그냥 못생긴 건가. 한 껏 차려입고 나왔는데도 명함을 못 받은 날이면 자신 있던 과목 시험을 망친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룸살롱을 다닐 나이가 되자 스크린 골프 전단지도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 여의도 지하철 역사를 나서는 길이었다. 새벽부터 부엉이처럼 눈을 부릅뜬 아주머니들이 출구 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분들은 캐주얼 정장을 쫙 빼입은 몇몇 직장인들에게 전단지를 쥐어줬다. 나는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스크린 골프장 전단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동료에게 내가 골프 안치게 생겼냐고 물어보고 싶은걸 꾹 참았다. 골프란 운동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지만, 내심 골프 치는 남자로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당에서 휴대폰 충전선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기종이 뭐냐고 묻지도 않고 갤럭시 충전기를 주면 기분이 상한다. 정확히 갤럭시 충전기가 필요했고 제품도 불만 없이 만족하며 쓰고 있지만 누가 당연하다는 듯이 갤럭시 유저로 보면 괜히 무시당한 기분이 든다. 유럽 여행을 갔는데 누가 한국어로 말을 걸면 고맙고 일본어를 하면 괜찮고 중국어로 말하면 화가 난다. 굳이 따지자면 일본보다 중국이란 나라를 더 좋아하는 데도 말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치길 원하는 나의 마음.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간은 원래 종이 전단지 한 장에 마음이 들썩일 정도로 얄팍한 존재인지. 자신의 본모습과 상관없이 그저 멋져 보이고 싶어 하는 속물인 것인지. 나만 이런 건지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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