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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Jan 28. 2021

부린이 기자, 문래동 현장 답사

서울시 역세권 고밀화 사업 취재기  

기자는 원래 순환보직이라 몇 년 단위로 부서를 바꾼다. 본인의 의사나 지식과 상관없이 회사에서 가라면 가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면에서 언론사는 군대와 비슷하다.) 올해 걸린 분야는 부동산이다. 이건 내게 심각한 문제다. 나는 부동산에 관해 1도 아는 게 없다. 관심도 없다. 부모님이 부자이거나 내가 자가 보유자도 아닌데도 그렇다. 그 흔한 청약통장도 없다. 이 좁은 땅에서 인구는 줄고 아파트는 넘쳐나니 그런 걸 갖고 있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몇 년 전에 해지해 버렸다. 그때는 천재다운 발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천하의 바보 같은 짓이었다.  


같은 기자가 쓴 글인데도 부동산 기사는 무슨 암호 같다. 건축선, 용적률 같은 용어가 나오면 뇌가 그냥 멈춰 버린다. 그러나 이제 부동산 기자가 된 만큼 피할 곳은 없다. 부동산 공부는 기본이고 현장에 나가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었다. 첫 취재지에서 특종까진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건져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27일 아침 댓바람부터 문래동을 찾았다. 왜 문래동이냐. 딱히 이유는 없었다. 역세권 재개발이 워낙 이슈인데, 지하철 노선도를 놓고 보니 문래동이 적당해 보였다. 내가 결정권 자라면 문래동 같이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려고 했을 것 같다. 더구나 문래동은 우리 집에서 가까웠다.   


공장지대가 나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문래역 역사 앞은 브랜드 아파트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순간 잘못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그 위용은 대단했다. 분명 쇠락한 지역이라 들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했다. 그새 개발이 다 끝난 건가. 문래동이 아니라 문정동을 가야 했나. 이렇게 말끔한 신도시에 공장이나 오래된 빌라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억누르고 네이버 지도를 다시 켰다. 한참을 헤맨 끝에 골목 사이에 숨어있는 준공업단지를 겨우 찾아냈다.  


이른 아침에 와서인지 거리는 고요했다. 유통센터 뒤편으로 길게 늘어선 공장지대에서 깡깡 대는 쇳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짐을 가득 실은 차 몇 대와 군복 같은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그곳이 유령도시가 아님을 알렸지만, 공장에서 나온 건 아닌 듯했다. 동네 구조는 특이하다 못해 이상했다. 일 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장과 빌라단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중간에 서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공장, 왼쪽으로 돌리면 낡은 빌라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사이에는 새로 지은 미용실과 커피숍, 신장개업한 식당, 신축 빌라 몇 동이 헌 옷에 덧댄 새 천조각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 


열 시가 넘어가니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불을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꽁꽁 언 몸을 좀 녹이고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겸 해서 아무개 중개사무소에 들어갔다. 머리가 희끗한 공인중개사님은 나를 힐끔 쳐다볼 뿐 무언가 잔뜩 적힌 장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요즘 동네 분위기 어떤가요. 정부에서 역세권 개발한다던데 주민들이 좋아하겠네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중개사님은 그제야 나를 쳐다보더니 여기 물건 없다. 사려는 사람은 좀 있는데 내놓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한참을 말씀하시다 그런데 넌 누구냐고 물어서 기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난데없이 정부 욕을 하기 시작하셨다. 평당 6천까지 올랐다. 저 오래된 건물이 그렇다는 거다. 이게 말이 되냐. 나라 부채가 수조 원이다. 망조에 걸렸다 등등등. 중개사님은 말 끝마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딱히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몇 군데 중개사무소를 더 들렸다. 물건이 없다. 들어오려는 이는 많은 데 나가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 얘긴 주민들과 외부 투자자 모두 앞으로 문래동 집값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는 뜻 같다. 다행히 내 의견을 묻거나 정부 욕을 하시는 분은 없었다. 오후에는 수색역 인근 중개사무소 몇 곳에 전화를 돌렸다. (내 생각에 그곳도 문래동 못지않게 낙후된 곳이다.) 대면 취재가 아닌지라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중개사님은 우리는 그런 거 안 합니다 라고 하며 전화를 뚝 끊었다. 내가 대출을 받으라는 것도 아닌데 뭘 안 한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교훈 하나를 얻은 셈 치기로 했다. 취재는 발로 해야 한다. 지금은 용적률도 잘 모르는 부린이지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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