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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Nov 12. 2020

가을 나무, 그 생명의 버림


낙옆이 깔린 산책로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내일은 추울 테니 옷을 두껍게 입고 나가라는 아내의 말을 들었지만, 셔츠 위에 카디건 하나만 덜렁 걸치고 출근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네 싶었는데 한 5분쯤 걸으니 그게 아니다. 콧물이 흐르고 안경에 김까지 서렸다. 늦가을 추위를 무시한, 아내의 조언을 망각한 형벌로 여겼다.   


출근길에서 마주친 가을 나무도 복장이 단출했다. 걸치고 있던 풍성한 잎들을 다 털어내고 가지만 남겨놨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중환자 같다. 아파트 관리인이 다 잘라냈는지 몸통만 덜렁 남은 나무도 있었다. 잎사귀와 가지에 있던 자리에는 찬바람이 정체현상 없이 직진했다.   


내 감정과는 별개로, 나무의 드레스 코드는 그런 날씨에 적절했다. 나무가 최소한의 양분으로 긴 겨울을 나려면 달려 있던 잎사귀를 털어 버려야 한단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는 죽은 게 아니다. 일찌감치 월동 준비를 마친 부지런한 나무다. 다른 나무보다 오히려 생명력이 넘친다. 그 나무가 버린 잎은 썩어져 땅을 비옥하게 하고, 또 다른 잎사귀를 싹 틔우는 양분이 될 것이다. 가을 나무의 버림은 스스로를 살리고 땅도 살리는 생명의 버림이었다. 생명의 선순환이다.


나의 버림은 어떠한가. 떨어지면 바로 땅에 닿는 잎사귀와 달리 내가 버린 것들은 먼 여행을 떠났다. 나는 재활용이 될 만한 것들을 이마트 장바구니에 나눠 담아 베란다에 둔다. 다 차서 더 둘 곳이 없으면 분리수거장에 내다 놓는다. 우리 구역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호시탐탐 재활용 망태기 자루를 살피다가 가득 차면 외주 업체에 연락을 돌린다. 업체는 포대를 수거해 옥석을 구분한다. 다시 빛을 볼 것과 땅에 묻힐 것이 가려지는 순간이다.


내가 버린 것들의 여정에는 책임감이 개입됐다. 이것은 뛰어야 할 거리가 정해진 계주와 같아서 내가 적게 뛴 만큼 남이 더 뛰어야 하는 단체전이었다. 첫 주자는 항상 나였다. 적당히 분리하고 경비 아저씨에게 바통을 넘겼다. 적게 뛴 날에도 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매달 이만 이천오백 원을 아파트 관리비로 내온 나다. 그 비용 안엔 분명 분리수거를 위한 노임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경비 아저씨가 얼마나 뛰고 바통을 넘겼는지,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관심도 없다. 내가 적게 뛰는 것 만이 중요했다.


어느 날인가 분리수거장에 빨간색 글씨의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외주업체가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을 수 있으니, 분리에 좀 더 신경을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움찔했다. 공지문 뒤에는 스티로폼 박스 위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손톱으로 떼어내고 있는 경비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수십 살은 어릴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말끔해진 스티로폼을 자기 키높이보다 높게 쌓느라 낑낑댔다. 그걸 노끈으로 묶으려고 하는데 자꾸 무너졌다. 문득 내가 버린 스티로폼도 저기 껴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좀 더 뛰었으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아저씨는 벌써 일을 마치고 경비실로 돌아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까. 내게 꾸벅 인사할 일도 없도, 외주 업체의 협박 아닌 협박이 담긴 공지문이 붙이는 일도 없었을까. 아니면 내가 뛴 거리와 상관없이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옷을 얇게 입고 나간 나에게 가을 나무가 내준 뜻밖의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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