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나 많고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영화에서처럼 무작정 공항으로 가서 목적지에 상관없이 가장 빠른 비행기로 주세요 라고 주문할 수 있는 것도 멋있어 보이지만 쉽지 않다. 공항에서 남는 비행기표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비수기라 비행기표가 남는다 하더라도 온라인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이 가격이 훨씬 더 싸다.
나는 남들처럼 꿈에 그리던 목적지가 있었던 적도 없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나 가고 싶은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그때그때 마음 가는 곳이나 갈만한 기회가 생기는 곳으로 떠나곤 했다.
핀란드를 가게 된 것은 그 이전에 스페인을 갈 때 핀란드를 경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핀란드 여행을 가기 1~2년 전쯤, 핀란드 항공을 타고 스페인을 간 적이 있었다. EU 소속 국가로 입국할 때는 어디든 첫 번째 도착한 EU 소속국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데, 나는 목적지가 스페인이었음에도 핀란드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스페인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핀란드에서 입국심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심사 과정 끝에 직원 분이 부드러운 미소로 여권을 돌려주시며 '재밌게 놀아!'라고 해주셨는데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내 생에 입국심사를 하는데 웃으면서 잘 놀다 가라고 인사를 건네준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하다. 항상 인상 쓴 직원이 일에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업무적으로 웃고 있다 하더라도 ‘넌 여기 왜 왔어?’, ‘돌아갈 비행기는 있고?’, ‘며칠이나 있을 건데?’ 하는 식의 심문 같은 질문을 하는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 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비행기 날개에 쌓인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비행기가 출발할 수 없어 갈아탄 비행기가 계속 딜레이가 되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 앉아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와중에 이것저것 챙겨준 너무 친절한 승무원들이 인상 깊었기에 핀란드에 한번 가보자 마음먹었었다.
태국 여행은 더 쉽게 정해졌다. 동생이 캄보디아에 결혼식이 있어 참석을 해야 하는데 태국에서 일행을 만나서 가기로 했다고. 태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었기에 나도 태국까지 같이 가고 싶다는 뜻을 비추었고, 동생은 일행에게 동의를 구한 뒤 함께 가자고 했다. 그야말로 급작스럽게 동생 따라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동생과 태국 일행들은 캄보디아에 가기 전까지 나와 1주일을 아주 잘 놀아주었고, 그들이 캄보디아로 떠난 이후에도 나는 혼자서 태국에서 잘 놀다가 돌아왔다.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 것은 한국에서 보게 된 전시회가 원인이었다. 가우디 전시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시간을 내서 예술의 전당에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기도 했고 실망하기도 했다. 가우디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점이나 전시 자체는 굉장히 좋았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았고 사진이나 영상이 주를 이루었던 점은 아쉬웠다. 그래서 가우디 건축물을 실제로 보러 가고자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끊었더랬다.
대만에 가게 된 것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만에 가기 1년 전쯤 호주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해 대만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적이 있는데,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과 친구가 되어 대만에서 꼭 한번 보자는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 약속을 꼭 지켜야지 하면서도 대만에 갈 기회가 마땅치 않았는데, 백수가 되고 나서 시간이 많아진 틈에 대만 여행도 할 겸, 친구도 만날 겸 다녀왔다. 이것이 나의 첫 대만 여행이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인연이 나를 대만으로 이끌어 준 셈이다.
런던 여행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그때 당시의 나는 여행을 시작한 초반이었고 돈이나 지식이 부족하던 터였다. 유럽여행을 하려고 알아보다 상대적으로 비행기 값이 쌌던 스페인을 가기로 정했고 런던에 살던 다른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스페인에서 같이 놀 수 있을까 물었다. 그 친구는 런던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에 다녀 올 계획이라며 못 만나서 아쉽다고 했다. 며칠 뒤 그 친구가 연락이 와서는 런던에 있는 집을 자기가 한국에 있을 동안 쓸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어차피 돈은 내야 하는데 아무도 안 산다니 너무 아깝다고 했다. 그 친구가 한국에 있는 기간과 내가 스페인에 있을 기간이 딱 겹쳐서 만나지 못했지만 런던에 있는 집을 한 달간 그냥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바로 스페인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끊었고, 순식간에 스페인 여행이 런던 여행으로 바뀌었다. 이때의 런던에서 지냈던 한 달은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파리를 처음으로 가게 된 건, 아주 싼 비행기표를 찾아서였다. 나는 여행 스타일이 남달라서 그런지 그토록 여행을 많이 다녔음에도 가보지 못한 곳이 은근히 많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를 가보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파리였다. 수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고 유럽도 여러 번 갔었지만, 유럽을 여행했다 하는 사람이면 다 가봤다는 그 파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한데, 당시 내가 있던 곳 가장 가까운 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정말 싼 비행기표를 찾은 것이다. 12시간 비행에 직항이었지만 환율을 고려해도 24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를 외치며 바로 파리로 떠났다.
나는 계획을 하고 여행을 다니지는 않는다. 가고 싶은 곳을 가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그냥 간다. 비행기표가 가장 싼 곳을 간다던가, 아니면 우연히 생긴 일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간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목적지를 고른다기보다는 그곳이 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계기를 만들어 주는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들이 고맙다.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게 되는데 기대 없이 그냥 갔던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너무나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언제나 항상 어디를 가게 될까 다음번 여행을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