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가 Feb 13. 2019

비행기 옆자리의 그녀

    호주에서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싼 비행기를 편도로 찾느라 대만 항공을 이용했었기에 타이페이에서 경유를 해야 했다. 호주에서 타이페이까지 오는데 꽤나 긴 비행을 했고, 한 달이 넘는 여정 끝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기에 타이페이에서 서울까지는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복도 자리를 선호하던 나였는데 이 비행기는 창가 자리에 배정이 되어 있었다. 내가 선택한 건지 시스템이 선택한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자리를 찾아서 들어갔다.


    헌데, 내 자리에 다른 누군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여기가 내 자리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자기 아들이 비행기를 처음 타는데 창가에 앉고 싶어 했다면서 미안하지만 양보해줄 수 있겠냐고. 평소라면 들어주지 않았을 부탁이었다. 개인적으로 자리를 바꿔달라는 부탁은 잘 들어주지 않는 편이다. 이날은 부탁하는 사람이 간절해 보이기도 하고 바꿔주겠다는 자리가 복도 쪽이기도 하고 어차피 몇 시간 안 간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서 그러겠노라고 했다.


    새로운 내 자리는 내가 선호하는 복도 쪽 좌석이었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아까 나를 불러 세운, 내 자리를 탐한 아이의 엄마였다. 옆에 앉은 그녀는 나에게 너무 고맙다고 내가 너무 친절하다며 연신 감사의 표시를 했다. 우리는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은 대만에 사는데 아이들이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눈을 보여주러 여행을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자신은 동대문 시장에 한 번 가보고 싶은데 패키지여행이기도 하고 애들이 많아 가기 힘들 것 같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내릴 때쯤에 혹시나 한국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내 연락처를 주었다. 그녀는 내 또래처럼 보였지만 아이 셋의 엄마였고, 아이 셋과 곧 대학생이 되는 조카까지 넷을 데리고 여행길에 오른 상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인사를 나눈 그녀의 조카는 한류에 빠져있어 약간의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패키지여행을 함께 온 그룹에 합류했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 이후 주고받은 연락처로 몇 번의 메시지를 나누었지만 한국에서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약 1년 뒤, 나는 대만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년 전에 비행기 안에서 잠깐 만났던 사람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만나자마자 매우 반가워했다. 그녀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같이 가주었고 그녀의 아이들도 나를 알아보고는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남편은 처음 만난 나에게 밥을 차려주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고, 그녀의 가족 행사에도 초대되었다. 특별한 가족 행사는 아니었지만 매주 한 번씩 근처 작은 도시에 있는 친정집에서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날이라고 했다. 그녀는 5남매 중 하나였고, 그곳에 모인 가족만 아이들까지 20명은 족히 되었다. 내가 가족끼리의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들 너무 재밌게 놀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 컷에 다 담기지 않는 수 십 가지 반찬의 진수성찬이었다.

    특히나 그녀의 부모님은 영어가 서툴러도 내가 불편할까 계속 몸짓 손짓으로 말을 걸어주셨다. 긴 대화를 이어가고 싶을 때는 그녀가 통역사로 나서 주었다. 가족들은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했고, 우리는 그냥 웃으며 비행기 안에서 만났다고 얘기를 했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나에게 우리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별일 아니었는데 뭔가 마음이 찡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 덕분이니 내가 오히려 고마워해야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더욱 친해졌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어느 여행지에선가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는 서로 헤어졌다. 이후에도 우리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고, 우리 둘 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