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점심을 먹은 뒤에는 로마 시내로 이동했다. 유럽의 대부분의 길이 그렇겠지만 아스팔트로 포장된 현대화된 길이 아니라 예전의 돌로 된 길을 사용하는 곳이 많아서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얼마나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다녔던가. 비포장 도로의 불편함은 대형 버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로마 시내는 어찌나 차가 많은지 밀리고 또 밀리고, 대형버스는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또한 골목골목이 좁아서 때로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어 길을 돌아서 가야만 했다.
로마 시내의 유명 관광지들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어 일행을 잃어버릴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이런 시즌에는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을 테고. 가이드님은 이탈리아가 9월이 극성수기라며, 올해는 특히 사람이 많은데 올해(2017년)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많은 개신교 신도들이 이곳을 찾아와 그렇다고 덧붙였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장면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사람이 너무 많아서 스치듯 지나가고 말았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스페인 광장에 있던 분수가 트래비 분수보다 좋았는데, 분수에도 계단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걸 보고는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게다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근처는 사기꾼이 많더라. 9년 전에는 웬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어준다면서 돈을 받아가려 했었는데, 이번에는 장미꽃 나눠주며 돈을 받아가려는 할머니가 있었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분수. 이 분수가 유명해진 것은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로 돌아오게 된다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설 때문이다. 나는 미신은 믿는 편이 아니라 분수에 동전을 던진 적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는 통에 분수 앞으로 가려면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워낙에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터라 평소의 나였다면 트래비 분수 따위 보지 않고 지나쳤을 것을, 엄마의 첫 유럽 여행인데 이 앞에서 사진 한 번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인파를 해치고 나아갔다. 하지만 역시나 삼촌은 커피 한 잔 하겠다며 카페로 가버리고 이모는 젤라토를 사 먹으러 가버렸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인데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판테온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인데 건물을 보면 이름답게 신전처럼 생겼다. 판테온의 정면에 아그리파가 이 건물을 완공했다고 적혀 있어서 설마 내가 아는 그 아그리파인가 싶어서 찾아보았는데 진짜 미술시간에 많이 보던 그 아그리파였다.
내부는 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천장의 원형 모양이 굉장히 특이하다. 천장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서만 빛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구멍을 제외하고는 창문도 하나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내부의 공기가 이 구멍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기압차가 생겨 비가 와도 내부로는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확인해 볼 수 없었다.
이 곳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다. 비문으로 자연이 라파엘로가 자신을 능가할까 봐 두려워해서 라파엘로를 죽음으로 데려갔다는 의미의 글이 적혀있다. 라파엘로가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그러한 비문이 적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여 유명한 광장이다. 광장에는 로마 시청사와 누오보 궁전, 카피톨리노 박물관이, 그리고 마르쿠스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의 진입로에는 광장으로 갈 수 있는 계단과 성당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면 신기한 계단들이다. 이 두 계단의 실제 길이는 같은데 겉으로 보았을 때는 광장으로 가는 계단이 더 짧아 보인다. 미켈란젤로가 원근법에 따른 착시를 이용하여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사가 낮은 쪽 계단을 올라가 캄피돌리오 광장에 도착하면 광장 가운데에 위치한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이 동상의 주인공은 로마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동상 뒤쪽으로는 로마 시청사가 위치하고 있다. 광장의 바닥에는 별인 듯 원인 듯한 패턴이 있는데 이 또한 미켈란젤로의 구상이라고 한다. 시청사나 양 옆에 위치한 건물에 들어가면 위에서 이 패턴을 바라볼 수 있을 듯하였는데, 광장에 서서 보려니 어떤 문양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아쉬웠다.
시청사 쪽으로 광장을 빠져나오면 로마의 상징인 늑대 젖을 빨고 있는 아이들의 동상이 있다. 로마의 건국 신화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가 등장한다. 상속권 다툼 중에 이 갓난아이들을 죽이려 어린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강에 떠내려 보냈는데 어미 늑대가 젖을 물려 키웠다고 한다. 이 쌍둥이가 후에 로마를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이다. 거의 다 무너진 듯한 모양새이지만 로마시대에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언덕 위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굉장히 멋있다.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으로 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건축물이다. 이 곳은 나와 애증의 관계가 있는 곳인데, 이전에 로마를 왔을 때부터 이 곳을 세 번 방문하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안쪽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처음 로마에 도착해서 봤던 콜로세움의 야경이 너무나 멋있게 기억에 남아 자꾸 들르게 되었다. 이번에도 사람이 너무 많고 일부는 공사 중이라 안쪽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멋있었다.
콜로세움은 여러 차례 복원 과정을 거쳤는데, 벽돌의 색이나 재질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부분과 새로 복원 과정을 거친 부분이 멀리서 보아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또한 역사라 생각하여 예전의 모습과 똑같이 복원하는 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에 내가 알고 지내던 엄마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이모나 삼촌이 옆에 있거나 우리 중에 누군가가 같이 찍자고 졸라야만 사진을 찍곤 했다. 하지만 로마에서 하루 보내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의 강요에만 사진을 찍었던 엄마가 어느 순간 '여기에서 사진 찍어줘'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멋있다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엄마이지만 한 번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첫 날을 보낸 것뿐이니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