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na
드디어 내가 출발 전 가장 기대했던 시에나로 이동했다. 예전 이탈리아 여행 때는 가보지 못했었는데 그 이후에 어느 여행 스토리를 듣고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던 시에나였다. 시에나에 가면 꼭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그 종탑에 올라가리라 마음먹었다.
시에나에 있는 산 도미니코 성당은 카타리나 성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 카타리나 성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카타리나 성녀의 머리와 엄지 손가락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는 카타리나 성녀가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고, 시신을 어디에 두느냐로 논란이 있어 일부만 시에나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도메니코 성당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카타리나 성녀 생가에 금세 도착한다. 시에나의 골목길은 좁고 복잡해서 딱 내가 좋아하는 길이었다.
아씨시의 성녀가 클라라라면 시에나의 성녀는 카타리나이다. 카타리나는 이미 어린 나이에 환시를 보았고, 동정녀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대중 속에서 섞여 살며 전염병 환자를 돕는 등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녀는 지도자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으며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했으나, 엄격한 금식 생활로 건강이 나빠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생가가 이 곳 시에나에 남아 있으며 지금은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에나의 좁은 골목길을 갈래갈래 따라가다 보면 금방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데, 이 모든 길은 캄포 광장으로 연결된다. 좁고 복잡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확 트인 광장을 만나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싶어 졌다. 이 도시는 과거 중세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광장에는 사람도 많았고 거리에 노점상도 많았다. 이 광장에서 가이드님은 시에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시간을 가졌고, 가이드님은 내게 탑에 올라갔다오라고 귀띔해주셨다. 내가 시에나에 가게 되면 종탑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는 말을 지나가듯 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자유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뛰어갔다오라고 덧붙이셨다.
골목길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즐기고 싶었지만 시에나의 종탑에서 보는 시에나 시내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다.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고 혼자 종탑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탈리아의 각 도시마다 유명한 종탑이 있는데, 시에나의 종탑은 꽤나 높다고 한다. 옛날 각 도시마다 도시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저마다 높은 종탑을 지었다고 한다. 시에나도 그 경쟁에 참여하여 높은 종탑을 지으려고 했는데 캄포 광장이 지대가 낮아 시에나의 종탑은 더 높이 지어져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올라가기는 더 힘이 들테지...
뛰어 올라가는 동안 땀도 많이 나고 힘들었지만 올라가서 캄포 광장을 내려다보는 순간 너무나 시원해졌다. 시에나 시내가 한눈에 보였는데 비슷한 색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장난감 마을 같았다.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멀리에 두오모 성당도 보였다.
이 캄포 광장에서는 매년 팔라오라고 불리는 큰 축제가 열린다. 여름에 두 번, 시에나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말과 기수가 경마를 한다. 이것은 시에나의 전통적인 축제이며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하여 매우 유명하며, 이탈리아의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다고 한다. 우리가 시에나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축제가 끝난 지 한 달은 지난 뒤였기에 축제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봐야 했다.
시에나의 두오모 대성당은 핑크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고딕과 르네상스 풍이 섞인 건물이다. 핑크색과 하얀색 돌에 햇빛이 내리쬐니 반짝반짝 빛나는 듯하여 더 멋있어 보였다. 성당 앞에서 이 성당에 대한 설명을 마친 가이드님은 들어가고 싶은 사람만 들어갔다 오라고 하시면서 자유시간을 주셨다. 그동안 사람들의 불만을 많이 들었던 탓인지, 이 도시가 작아서 멀리 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자유시간을 많이 주셨다.
나는 성당 안에 들어가지 않고 아까 탑에 올라가느라 하지 못한 골목 탐험을 하기로 했다. 엄마와 삼촌은 다른 분들과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시에나의 스토리가 그려진 작은 동화책을 하나 샀다. 어린이용이라 재밌고 화려한 색상의 그림책이었고, 쉽게 읽히는 영어였다.
시에나의 한 골목길에서 점심을 먹었다. 깔끔하고 작은 식당이었는데 식사도 그에 어울리게 나왔다. 전채로 마늘을 바르고 토마토와 바질을 곁들인 바게트 빵과 치즈 한 조각, 그리고 살라미가 담긴 접시가 놓였다. 이 구성을 보자마자 와인이 생각나 와인을 한 병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인에 치즈와 햄을 먹고 있는 중에 메인인 파스타가 나왔다. 고기로 만든 볼로네제인 듯 보였는데, 평소에 먹던 토마토 볼로네제는 아니었지만 짐작 가능한 맛으로 굉장히 맛있었다.
역시나 가이드님이 예약해둔 식당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한국음식을 너무나 먹고 싶어 하며, 이탈리아 음식을 질려하고 있었기에 가이드님은 고민이 한 가지 늘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