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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가 Feb 09. 2019

이탈리아 여행 #8. 피사

Pisa

    피사에 도착하니 날씨가 매우 흐려졌다. 비도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 이외에는 볼 것도, 할 것도 없다는 소문에 이 곳을 오지 않았었다. 실제 둘러본 피사는 굉장히 작은 도시였고, 큰 광장에 피사의 사탑과 두오모 성당, 세례당이 함께 모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소도시를 좋아하기에 피사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고,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 피사 두오모

(Duomo di Pisa)

    로마네스크 건축물의 걸작으로 꼽힌다는데 건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어떤 부분이 어떤 양식이고 아치의 모양이 어떻고 하는 설명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멋있다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하지만 건축을 전공한 삼촌은 나와는 다른 눈을 가졌는지 여기저기 살펴보고 다녔다.


# 세례당

(Battistero di San Giovanni)

    둥근 형태의 건물이 아주 멋있어 보이는 산 조반니의 세례당.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섞여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둥근 돔 형태의 이 건물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건물이 가진 돔 형태 때문에 내부의 공명효과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 않아서 확인해 볼 기회는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 피사의 사탑

(Torre di Pisa)

    대성당의 종탑이지만 그 자체 만으로도 너무 유명해진 건물. 피사의 사탑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그 탑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일화 때문이다.

    탑을 짓기 시작하고 나서 공사 중에 탑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였지만 그대로 공사를 강행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기울어지는 탑을 보완하면서 공사를 진행했지만 계획보다 낮은 탑으로 공사를 마무리했고, 그 덕분에 공사기간도 20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탑은 계속 기울어져만 갔고, 최근에 들어서도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고. 2001년 보수 공사가 끝난 이후에 탑에 입장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올라가 보지 않았다. 이 탑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무게가 다른 두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라고 한다.

    높은 곳이라면 어디든 올라가고 보는 내가 피사의 사탑에는 올라가지 않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말대로 불안한 탑에 뭐하러 올라가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 여유롭지 않은 시간과 입장료도 있었고, 오전에 이미 시에나에서 종탑을 하나 올라갔다 왔기에 내키지 않았다. 일일 일탑이면 족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탑에 올라갔던 분의 사진을 보니 올라갈걸 싶기도 했다.

피사의 사탑 낮과 밤.


# 피사의 길거리 시장

    두오모 성당을 둘러본 이후에 이 광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숙소가 바로 광장 근처여서 부담스러울 것도 없었고, 비가 내리는 통에 다 같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누군가는 피사의 사탑 기념품을 사러 갔고, 누군가는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기도 했다. 이모는 탑에 올라간 사람의 사진을 아래서 찍어주겠다며 가셨고, 엄마와 삼촌은 건물을 더 둘러보고 싶어 하셨기에 나는 광장 저편에 열린 시장을 구경했다.

    우리가 피사에 도착한 것이 이미 늦은 오후 기도 했거니와 비가 와서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도시가 작아서 원래 이런 분위기인 건지 시장은 예상했던 것만큼 북적거리지 않았다. 몇몇 가게는 비를 피해 문도 빨리 닫으려는 움직임이었다. 기념품으로 살만한 게 있을까 싶어 기웃거렸지만, 피사라서 그런지 온갖 재료로 만든 피사의 사탑만이 여기저기서 팔리고 있었다. 뭔가 그런 뻔한 것보다는 색다르고 특별한 것이 좋은데 말이다. 어쨌든 시장 구경은 재미있었다.


# 하우스 피자와 하우스 파스타 그리고 하우스 와인

    자유시간이 끝나고 모두 모여 피사의 사탑과 찍은 사진들을 자랑했다. 탑을 밀어버리는 모습, 탑을 세우려고 버티는 모습 등등 저마다 재미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더랬다. 나는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진만 찍었는데...

    광장 근처의 평범한 이탈리아 식당을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의 평범한 피자와 평범한 파스타를 시켜서. 와인이 빠질 수 없다며 와인을 추가로 시키려 하자 가이드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니 하우스 와인을 테이블 별로 주문해 주셨다.

    피자와 파스타 모두 훌륭한 맛이었다. 특히나 면을 좋아하는 나는 파스타를 항상 좋아하는데, 이탈리아의 진짜 까르보나라를 먹게 되어서 좋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까르보나라는 크림 스파게티의 한 종류이지만 진짜 이탈리아의 까르보나라는 크림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계란으로 특유의 꾸덕함을 만들어 내며, 베이컨이 아닌 콴찰레라는 두꺼운 햄이 들어간다. 물론 모든 음식이 조금씩 짜긴 했지만 그래도 다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호텔로 걸어가는 중에 가이드님은 나에게 와인을 한 병 건네셨다. 추천해주고 싶은 와인이 레스토랑에 있길래 한 병 샀다면서 말이다. 깜짝 선물이어서 놀랐고, 감사했고 그리고 와인이라 너무 좋았다. 저녁에 같이 먹기로 하고 받아서 들고 왔다.


# 피사의 밤

    이번 여행에서 시내 한복판에 숙소가 있었던 것은 피사가 처음이라 일정이 끝난 후 저녁에 동네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호텔이 시내 외곽에 처박혀 있어 호텔 바에서나 삼촌의 방에서 한잔 하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다. 산책하면서 피사의 야경을 볼 수 있어서 매우 신났다.

    동네 바에서 술 한잔 할 수 있을까 부푼 기대를 안고 삼촌이랑 길을 나섰는데 이게 웬걸 동네 가게들은 대부분 7~8시면 문을 닫고, 그나마 늦게까지 여는 곳도 10시라니. 문을 연 가게를 찾아서 들어갔는데,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아니고 술을 파는 곳이었다. 아쉬운 대로 방에서 먹으려고 와인을 한 병 샀다. 

    그곳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발사믹이나 파스타 면 따위도 있었는데, 삼촌은 선물할만한 발사믹을 보는 중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발사믹은 등급에 따라 메달이 붙어있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가게 아저씨. 그 말을 듣고 메달을 확인해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구경을 하는데, 우리 패키지 그룹의 한 무리가 나를 알아보고 가게로 들어왔다. 뭐하냐는 질문에 와인이랑 선물용 발사믹을 사고 있다고 대답하고 아까 가게 주인에게 들은 설명을 해주었더니 그분들도 그곳에서 쇼핑을 하기 시작하셨다.

    문을 닫을 때가 다 되어서 손님을 갑자기 많이 받게 된 주인아저씨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나와 일행들에게 리몬첼로를 꺼내 한 잔씩 따라 주셨다. 리몬첼로는 이탈리아의 술인데, 달고 레몬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단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행하면서 시도해보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맛보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 함께 호텔로 가 한 방으로 모였다. 삼촌이나 가이드님을 제외하고 다른 일행과 술을 마신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여정의 절반 정도가 지나니 다들 친해진 것일까, 나를 방으로 초대해주셨다. 다들 한국에서 소주도 가져오시고 안주거리도 이것저것 챙겨 오셨더라.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들은 함께 여행 다니는 모습이 친구 같았고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오늘의 와인은 가이드님이 선물해주신 아마로네와 내가 사 온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그리고 다른 분이 사 오신 토스카나의 와인이 되겠다. 아마로네는 바롤로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랐는데, 바롤로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세 병 다 모두 훌륭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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