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ano
이번 여행에서 밀라노의 일정은 총 2박 3일이었다. 하지만 그중에 하루는 쇼핑몰에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이드님은 일정에 쇼핑몰에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동안 쇼핑할 시간을 따로 주지 않았다면서, 그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처음에는 기념품 하나 살 여유가 없음에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몰래몰래 대열을 이탈하여 재빠르게 사고 눈에 띄지 않게 대열에 다시 합류하는 스킬을 습득하였다.
밀라노는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나는 비행기표를 바꿔 한국으로 가는 것을 미뤘지만 어쨌든 우리의 여정은 여기까지 였다. 함께 온 사람들과 가이드님에게 정이 많이 들었고, 이탈리아에서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기에 여행의 끝이 올 수록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한 스칼라 극장.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으로 처음 지어졌던 건축물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갔으며, 나비부인, 오델로, 투란도트 등의 명작이 여기서 초연하였다.
일행 중에 아주 재미있는 부부 한 쌍이 계셨다. 부부 두 분이 세례명이 도미니코, 도미니카로 같아서 (종종 같은 이름에 마지막 모음을 ‘a’로 사용하면 여자 이름이 된다. 예, 미카엘-미카엘라, 베네딕토-베네딕타) 사람들이 늘 한쌍으로 부르곤 했다. 남편 분은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치고 몸개그를 하셨고, 와이프분은 못살겠다고 창피하다고 구박을 하시면서도 웃음이 한가득 이셨다. 같이 있다 보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부부셨다. 이 곳에서 그 남편 분이 공연장 내부사진을 따로 아시는 단톡방에 공유하며 밀라노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너무 멋있다고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하시더라. 가이드님이 무언가를 설명할 때마다 그 설명을 그대로 카톡방에 전달하시면서.
혼자 왔더라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된 공연을 하나 봤을 테지만 패키지로 온 이상 그런 여유는 없었다. 이 곳에서의 공연은 인기가 매우 많아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면 서둘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공연을 예약하지 못하였다면 내부 투어를 따로 예약할 수 있다. 내부 시설과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투어이다.
예전에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처음으로 방문했던 곳이 밀라노 두오모였다. 처음 본 이탈리아 성당의 규모에 매우 놀랐었던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때마침 미사가 있어서 미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만난 이탈리아 할머니도 있고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이제는 여행을 많이 다니기도 했고, 멋있는 성당을 많이 보기도 했고 옛날만큼의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가이드님은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고는 자유롭게 성당이나 박물관을 둘러보게끔 시간을 주셨다. 티켓을 사면 두오모 성당과 그 옆에 건물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다. 박물관에는 두오모 성당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작게 만든 모형도 있고, 그 외에 성당에서 사용했던 혹은 이전에 성당의 일부였던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지난번에 왔을 때 밀라노 두오모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터라 이번에는 박물관에서 시간을 좀 더 보냈다.
두오모 성당의 탑에 올라가는 것은 따로 티켓을 구매하여야 한다. 자유시간도 충분했고 엘리베이터도 있고 마지막 두오모 이기도 해서 많은 분들이 올라가겠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올라가지 않았는데 각자 티켓을 사서 자유시간 동안 올라가셨더라.
일행 중에 할머니 자매분이 계셨다. 나이도 많으신데 나보다 체력도 좋으셔서 언제나 씩씩하게 걸으시고 두 분이 우애가 좋으신 것 같아 보였다. 자유시간에 탑에 올라가고 싶은데 어떻게 티켓을 사는지 모르셔서 난감해하고 계셨다. 가이드님을 찾는 눈빛이었는데, 가이드님은 근처에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도와드리기로 하고 티켓을 파는 곳을 찾아 줄을 섰다. 두 분은 그제야 안심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은 자유시간이 좋을지 몰라도 우린 아니라며 불평을 하셨다. 말도 안 통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그 말씀에 한 그룹을 가이드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생각되던지, 여행사 가이드도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두오모 성당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멋있는 아케이드가 있는데 굉장히 멋있게 지어진 쇼핑몰이다. 명품샵과 레스토랑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여길 왔을 때 명품샵 사이에 있는 맥도널드를 보고 웃었더랬다. 이번에는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서점을 발견하고는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탈리아의 주요 건물들이 스케치되어 있는 노트를 사기도 했다.
밀라노에 남아 보존되어 있는 성이다. 2차 세계 대전 도중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개축되어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을 방문할 시간은 없었지만 저녁에 멋있게 불이 켜진 성곽을 따라 걷는 것도 운치 있었다. 필라레테 탑 앞에 있는 분수대에서 다 같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항상 두 손을 앞쪽에 가지런히 모으고 사진을 찍곤 하셨는데, 여기서 이모가 계속 똑같은 포즈로 찍지 말고 브이라도 해보라고 하도 성화를 하시는 통에 재미난 표정으로 쌍브이를 그려 보이기도 하셨다.
마지막 날 아침에 방문했던 성당. 원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그림인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가기 위해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을 가기로 계획했으나, 몇 달 전에 예약이 다 차 버리는 엄청난 인기 때문에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가이드님이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실패하신 것 같다.
산 암브로시오 성당은 4세기경에 지어진 밀라노에서 아주 오래된 성당 중에 하나로 암브로시오 성인이 지은 성당이다. 초대 가톨릭 교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현재 밀라노의 수호성인은 암브로시오이며 이 성당의 지하에 암브로시오 성인이 모셔져 있다.
종탑이 양쪽에 두 개나 있는 것이 특이하다. 오른쪽의 더 낮은 탑은 수도원의 탑이라 불리기도 하며, 9세기경 이 곳에서 수도원들이 따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성당 내부의 오래된 듯한 느낌이 좋았고, 성당 바깥쪽으로 펼쳐져 있는 잔디밭을 산책하는 것도 좋았다. 한쪽에는 밀라노의 성녀 사비나를 위한 예배당도 마련되어 있었다.
첫 번째 밀라노에서의 식사는 인테리어가 아주 예쁜 레스토랑이었다. 밀라노 두오모 옆의 쇼핑센터에서 멀지 않은 좁은 골목에 있는 식당이었다. 인테리어가 맘에 들어 안쪽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더랬다. 여행의 막바지라서 그런지 다들 조금은 이탈리아 음식에 적응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한국에 가면 다시 먹지 못할 테니 더 정을 붙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치즈와 바질 페스토가 곁들여진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펜네 파스타와 티라미수까지 맛있게 먹었다. 이탈리아에 와서 군것질한 것 중에 티라미수가 가장 맛있었는데, 이렇게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로 먹게 되다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와인을 한 병 시키는 것은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이드님은 이렇게 매끼마다 와인을 시켜 먹는 그룹은 처음이라며 정말 매력적이라고 좋아하셨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가 인원이 많다 보니 아래층에 넓은 자리를 내어 주었는데 웨이터가 전혀 들여다보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와인이나 물을 더 주문할 수도 없었고, 겨우 웨이터를 부르고 뭔가를 부탁하는데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채 돌아가버렸다. 인테리어로 첫인상이 좋았던 반면 서비스가 좋지 않아 나중엔 떨떠름했다. 가이드님은 우리가 인원이 많다 보니 항상 레스토랑에 팁을 주시곤 했었는데, 이 레스토랑만큼은 그냥 음식값만 계산하셨다.
또 한 가지 일이 더 일어났는데, 내가 식당에 여행용 모자를 두고 온 것이었다. 밀라노 두오모로 이동한 뒤, 주어졌던 자유시간에 재빨리 식당에 한 번 다녀오려고 했다. 자유시간이 시작하자마자 달려간 식당은 문이 잠겨있었고 식당을 기웃거려봤더니 아무래도 점심시간이랑 저녁시간 사이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점심에 밥을 먹고 모자를 두고 가서 다시 왔다면서 그 모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문 열면 다시 오라고 하고는 그냥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후 문 열기를 기다려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래층 자리로 내려가 보니 아직 치우지도 않은 식탁 맨 끝 자리 의자에 내 모자가 걸려있었다. 그 모자를 가지고 나오면서 이렇게 간단한 것을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다니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쉬는 시간에 일에 관련된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가이드님은 그 식당 서비스 안 좋을 때부터 알아봤다며 같이 분노해주셨고, 삼촌은 그 모자 예쁘지도 않은데 뭐하러 찾으러 갔냐며 자기가 하나 사 줄 테니 그냥 버리라고 했다. 그 모자, 자외선 차단도 되고 목도 가려주고 바람구멍도 있는 인디아나 존스나 쓸 법한 탐험가스러운 모자기에 멋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친구가 여행 중에 사준 것인 데다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추억을 같이 쌓아왔기에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밀라노에서는 한국 식당이 있어서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뜨끈한 찌개 국물과 쌈밥에 미친 듯이 밥을 먹었다. 아무도 남기지 않고 다 긁어먹을 정도였다. 다들 곧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한 달 정도 여행을 더 하기로 했으므로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르는 한식이었다.
하루는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날은 시내 관광을 하지 않고 면세점 쇼핑을 하러 다녀온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땅히 저녁 먹을 곳이 없었는지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리조또와 멜롯 와인이 아주 잘 어울렸다. 병 라벨이 맘에 들어서 고른 와인이었는데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멜롯이었다. Merlot,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우리로서는 멜롯이 익숙하지만, 유럽에서는 메를로라고 불린다고 한다. 잘 모르지만 여인의 이름 같아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돌아다니다가 와인샵을 발견하면 와인을 사서 호텔방에서 마시는 것이 여행 일정 중에 하나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바롤로와 가장 맞는 것 같다. 밀라노는 마지막이니 만큼 예전에 수비아코에서 구입했던 그라파도 꺼내 마셨다. 이 그라파는 원래 가이드님 드리려고 산 것이었지만 가이드님이 같이 먹자고 하셔서 같이 나눠 마셨다. 뭔가 독특한 맛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소주 같이 투명하고 알코올 도수도 40도나 되어서 독주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만의 특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