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ice
북쪽으로 계속되는 여행의 다음 목적지는 베네치아였다. 지난번 이탈리아 여행 때 가장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라 기대가 되었다. 지난번 이 도시에 방문했을 때는 겨울이었기에 도시 전체가 우중충 했었는데, 이번엔 여름이라 더욱 멋있을 것 같았고 밝고 활기찬 모습을 상상했다. 가이드님은 베네치아에 가는 동안 버스에서 베네치아 출신의 신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두시고는 베네치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이윽고 부두에 도착한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배낭여행이었기에 기차를 탔고 베네치아 안쪽에 있는 기차역에서 내렸지만, 버스로 오니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했다. 본토가 아닌 구도심 내에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어 수로를 이용하거나 걸어야만 한다고 한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작은 배를 타고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산 마르코 성당이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니 만큼 입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역시 성수기와 비성수기는 달랐다. 겨울에 왔을 땐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었는데... 광장에 있는 많은 인파를 헤치고 성당 내부로 먼저 들어갔다.
산 마르코 성당은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지어진 성당으로 유명하다. 지금 베네치아의 성인은 마르코이지만 과거에는 테오토르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해를 피해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몰래 옮겨오면서 마르코가 새로운 수호성인이 되었다. 산 마르코 성당의 벽화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옮겨오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성당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산 마르코 광장은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여느 광장처럼 잡상인들도 많고 노천카페들도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유명한 카페가 하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광장에 자리 잡고 있어 과거의 음악가나 문학가 등의 유명인들이 방문한 적이 있다는 곳. 모든 웨이터들이 정장을 입고 격식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항상 라이브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곳에 앉아 커피를 한 잔 하면 라이브 음악에 대한 돈도 함께 청구된다. 수준 높은 연주이니 지불해도 괜찮겠지만 모르고 청구를 받는다면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으니 알아두고 가자.
다른 쪽에는 시계탑이 있다. 개인적으로 12 궁도가 그려진 이 시계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시계탑 꼭대기에 있는 청동상이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데, 산 마르코의 종탑에 올라가면 청동상이 종을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 베네치아의 도제가 사용하던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도 볼 수 있다. 산 마르코 성당과 붙어 있어 성당의 일부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러 미술작품들과 벽화를 볼 수 있고 광장과 바다를 바라보는 뷰가 좋아 가볼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아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두칼레 궁전의 옆면은 어디서 많이 보던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루이비통의 무늬가 여기서 왔다고 하는 설이 있다.
광장에서 주어진 자유시간에 나는 종탑으로 올라갔다.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모두 곤돌라를 타러 갔다. 나도 곤돌라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종탑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종탑은 한 번 붕괴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지금은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어 줄을 길게 서기는 하나 많이 걸어 올라가지는 않아도 된다. 종탑 위에 올라가서 보는 오밀조밀한 베네치아의 모습은 눈부신 날씨와 바다와 어우러져 반짝거렸다.
광장에 있던 시계탑 위도 내려다 보여 종을 치고 있는 청동상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되기를 기다려 청동상이 종을 치는 모습도 보았는데, 멀리서 내려다 보여서 그런지 장난감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멀리에 바다도 보이고 다른 섬들도 보이는 것이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그곳, 바로 리알토 다리. 좁은 골목길로 흐르는 물 위에 아치 형태로 놓인 다리는 언제나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다른 이탈리아의 도시들도 그렇지만 베네치아는 조금 더 좁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리알토 다리와 산 마르코 광장만 기억한다면 표지판을 보면서 길을 찾기 쉬울 것이다. 골목길 표지판에는 산 마르코 광장의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와 리알토 다리의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가 함께 그려져 있으니.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많은 명품샵과 화장품 샵이 자리하고 있는데, 베네치아의 자랑인 무라노 유리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였다. 유리 공예가 유명해지면서 비법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실력 있는 장인들을 섬에 가두어 두었다는 이야기는 옛날 우리나라의 도자기 공예 장인들을 생각나게 한다. 예쁜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관광지여서 그런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작은 가방걸이 몇 개와 보석함을 고르고, 지난번에 와인 사주신 것을 보답할 겸 가이드님의 딸 선물로 탁상시계를 하나 골랐다. 여행이 업이시니만큼 각 도시의 유명하다는 기념품은 다 가지고 계실 테지만.
오늘의 점심은 자유시간 중에 알아서 먹는 자유식이었다. 뭘 먹고 싶으냐는 가이드님의 물음에, 당연히 고기라고 대답했더니 스테이크가 맛있는 곳이라며 레스토랑을 하나 알려주셨다. 가족끼리 하는 식사에 신이 나서 이것저것 시켜서 먹었다. 자유식이니만큼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된다는 생각에 이탈리아에 오면 꼭 먹어 보고 싶은 치오피노를 찾았는데 그런 음식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이었지만; 치오피노 이야기) 아쉬운 대로 해산물 몇 개와 스테이크 큰 것 그리고 바롤로 와인을 주문했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리몬첼로 한잔과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저녁은 단체로 가이드님이 예약한 식당으로 이동하여 먹었는데, 점심에 갔던 곳과 같은 곳이 아닌가. 물론 메뉴는 달라서 상관없었지만 점심, 저녁을 같은 식당에서 먹다니. 여기 정말 맛있는 곳이로구나. 저녁은 먹물 파스타가 메인인 코스였다. 여러 종류의 파스타를 계속 먹다 보니 먹물 파스타는 없나 싶긴 했었는데 여기서 먹게 되다니. 애피타이저로 생선과 오징어, 새우 등 각종 해산물을 튀긴 것이 나왔고, 후식으로는 젤라토가 나왔다. 배가 너무 불러 후식을 먹지 못할 것 같았는데 막상 먹은 젤라토도 굉장히 맛있었다.
이 식당의 맞은편에서 피렌체에서 보았던 가죽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남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가게로 들어가 선물용 장갑과 지갑을 몇 개 재빨리 사고는 식당으로 돌아왔다. 피렌체보다 가격도 싸서 더욱 좋았다.
베네치아에서 묵었던 숙소는 이번 여행의 숙소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항상 좋은 호텔에서 묵었었기에 모든 숙소가 다 좋았었는데, 베네치아의 숙소는 더욱 특별했다. 이곳은 굉장히 아담한 호텔이었다. 객실도 20개도 되지 않았고, 멀리서 보면 그냥 좀 큰 저택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누군가의 집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곳은 예전에 어떤 귀족의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방 각각은 게스트 침실로 쓰였던 곳이라고. 그래서 각 방마다 인테리어나 크기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른 사람들의 방을 구경하기도 했다. 호텔 회사에서 이곳을 인수해서 호텔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방이 몇 개 되지 않아서 우리 일행이 이 전체 호텔을 예약한 것 마냥 되어버렸다. 이 호텔도 단체 관광객은 처음 받는 것인지 우리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저녁에는 벽화로 가득 그려진 홀에 앉아 사람들과 함께 와인을 마셨다. 홀에는 엔틱 느낌의 의자와 소파가 가득했고 벽 한쪽에는 벽난로도 있었다. 복도에는 어느 귀족의 초상화 같아 보이는 그림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계단 위의 샹들리에와 은은한 조명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방 안은 깔끔하고 아늑했다. 아침에는 잔디밭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정말 인상적인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