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from Ljubljana
도브리단! 잘 지내고 있지? 나는 뮌헨에서 동생을 만나서 바로 슬로베니아로 왔어. 오스트리아를 먼저 갈까 슬로베니아를 먼저 갈까 하다가 슬로베니아를 택했지. 우리의 주목적은 발칸반도니까. 드디어 세 남매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 달 동안 셋이서 여행하는 게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기대되기도 해.
뮌헨에서 저녁 늦게 만난 우리는 1년 반간의 난민(?) 생활로 프로 뮌헨러가 된 막내가 맛있다는 베트남 식당을 갔어. 팟타이(태국 음식인데 왜...)와 포를 먹으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했어. 1년 반 만에 만난 막내는 그간 독일에 많이 적응을 한 듯했지만 한국을 많이 그리워하더라고. 계속 한국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 둘째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기로 했대. 유럽이 그 첫 시작이고, 그 이후로 일본과 태국, 스리랑카에 갈 계획이 있더라고. 그러면서 퇴직금으로 뭘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더라. 그 다음 날 일찍 류블랴나로 넘어가기로 했기 때문에 첫날의 반가운 만남은 짧게 마무리되었지.
뮌헨은 생각보다 추웠어. 알프스 산이 가까워졌다는 게 피부로 와 닿았지. 우린 3월이면 봄으로 간주하는데, 여기선 3월까지 겨울로 치더라고. 그도 그럴 것이 온도가 0도~1도를 왔다 갔다 하더라니까. 길가에는 녹다 만 눈의 흔적도 보였어. 날씨가 이럴 줄 모르고 겨울 옷은 챙기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하는데, 곧 봄이 올 거라 생각하며 그냥 다니려고.
류블랴나는 뮌헨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어. 어후, 처음에 류블랴나를 가기로 정한 것도 어찌나 힘들었는지. 오스트리아를 갈지 슬로베니아를 갈지 끝까지 고민했다니까.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 만나서 노는 와중에도 단톡 방에서 설전을 벌이느라 정신없었다. 후..
뮌헨에서 류블랴나까지는 버스로 5시간 정도가 걸리더라. 아침 일찍 뮌헨의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는데, 버스가 30분이나 지연된 거야. 여행의 시작을 딜레이로 시작하다니 구시렁거리면서 맥도널드에 가서 아침을 사 먹었어. 그래도 덕분에 아침 먹을 여유도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지. 류블랴나에 가는 길에 오스트리아를 지나고 알프스 산도 지나는데,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냈어. 버스로 가는 길이 심심치 않아 좋더라.
류블랴나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더라고. 5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만 있었는데도 배가 고프다니. 시내에 마켓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곳에서 군것질이나 할까 하고 시내 구경부터 시작했어. 용의 다리를 건너 있다는 재래시장에 갔는데 생각보다 살 것도 구경할 것도 없더라고. 조금 실망했지만 근처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너무 맛있게 나서 점심 겸으로 그 생선을 사 먹었어. 맛있었어! 나는 시푸드를 굉장히 좋아하잖아? 물론 고기도 좋아하지만. 근데 둘 다 시푸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고. 싫어하는 건 아니래. 고기를 선호할 뿐이지. ㅋㅋ 남매지만 식성이 다른 게 느껴졌어. 난 고기를 먹고 싶은 날도 있고 생선을 먹고 싶은 날도 있고 날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히 뭐가 더 좋다는 건 없거든. 둘 다 좋은 거지. 어쨌든 생선 굽는 냄새가 너무 좋았기에 다들 생선을 먹는 것에는 찬성을 했어. 그리고 옆 가게에서 처음 보는 특이한 빵을 팔고 있기에 그것도 하나 사와 함께 먹었어.
생선과 피자처럼 생긴 빵으로 적당히 배를 채우고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시내 구경을 했어. 재미있는 기념품 가게를 찾았는데, 그곳엔 온갖 나라의 상징을 하트를 덧씌워서 표현해 둔 재밌는 그림이 있었어. 아일랜드의 상징인 네잎 클로버가 하트로 그려져 있고, 독일은 맥주, 쿠바는 시가, 그런 식이었지. 그런데 한국은 강남스타일이 그려져 있는 거야... 처음엔 황당했는데, 강남스타일이 이렇게 영향력이 크구나 싶기도 하더라. 하지만 그거 이미 옛날 노래 아니냐고.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럽다는 뜻 이래. 그래서 도시 어디를 가든 하트로 장식된 것들이 많이 보이더라고.
그리고는 시내를 구경했어. 마켓은 기대했던 것보다 볼 것이 별로 없었지만 마켓 한쪽에 둘째가 슬로베니아에 오면 꼭 한번 보고 싶다던 우유 자판기가 있었어. 우리 모두 신기해하면서 우유 자판기를 이용해 보았지. 이곳의 우유 자판기는 매일 신선한 우유가 배달되고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게 되어 있었어. 우리는 슬로베니아어로 적혀있는 자판기 앞에서 버튼의 기능을 추측해가며 우유를 받을 수 있었어. 우유 자판기 옆에 서있는 자판기에서는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된 우유 담는 통을 살 수 있었어. 하지만 우리는 항상 텀블러를 들고 다녔기에, 우리의 텀블러에 우유를 받아 마셔 볼 수 있었지. 나는 우유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맛이 다른 걸 딱히 느끼지 못했지만 우유를 좋아하는 둘째는 오묘하게 맛이 다르다고 하더라. 암튼 도착하자마자 우유 자판기를 찾아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여행 내내 찾고 다녔을 테니. 막내는 자판기 앞에 서서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이리저리 살피며 머리를 굴리는 나와 둘째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디오로 촬영해 두었더라고. 마침내 동전을 넣고 플라스틱으로 된 문이 열릴 때는 오오오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류블랴나에는 강이 두 개 흐르고 있는데, 하나는 알프스 산맥에서 시작해서 크로아티아로 흘러가는 사바 강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를 관통하는 류블랴나 강이야. 류블랴나 강은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아 수로 같아 보이기도 해. 사바 강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보지 못했는데, 류블랴나 강은 매일 지나다녔지. 이 강에는 여러 다리가 있어 오가기 편하더라고. 가장 유명한 용의 다리는 다리 입구 양 옆에 용이 버티고 서 있어. 서양의 용은 동양의 용이랑 그 모습이 달라서 흥미로워.
또 다른 다리는 사람의 형상인 듯 한 조형물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어. 그 조형물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함께 사진도 찍고 다리의 경치도 즐겼지. 이 다리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빼곡하게 걸려있었어. 덕분에 길에서 하트 모양 자물쇠를 파는 것을 종종 볼 수 있기도 했고. 역시나 류블랴나의 이름값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리의 안전이 걱정되기도 했지. 예전에 파리 센 강에 있던 그 사랑의 자물쇠로 유명한 다리가 자물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 자물쇠를 치우는 작업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거든. 로맨틱과는 거리가 12억 광년 정도 먼 나에게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이래 봤자 헤어질 사람들은 다 헤어질 텐데 싶다가도 그렇게 찰나의 감정이라는 걸 알기에 다들 뭐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싶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우유 자판기만큼이나 신기한 다른 것을 또 발견했어. 슬로베니아의 쓰레기통! 슬로베니아의 쓰레기통은 겉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내부가 다르다고 해. 땅속에 아주 깊고 넓은 공간이 있어서 쓰레기를 아주 많이 버려도 된다나. 실제로 내부를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처럼 대도시가 많은 곳에서는 이러한 쓰레기통의 사용을 관심 있게 보고 있나 봐.
여기저기 시내를 둘러본 뒤, 류블랴나 성으로 올라갔어. 약간의 산비탈을 올라가야 해서 힘들더라. 길은 정돈된 산길이라서 걷기엔 좋았지만 오르막이라서 숨이 가빠왔지. 하지만 그리 높지 않아서 갈만했어. 류블랴나 성은 엄청 오래된 성이야.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도 했던 곳이고. 성이 처음 지어진 것은 11세기로 추측하고 있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성벽에도 오를 수 있고 성 안쪽도 구경할 수가 있어. 감옥으로 쓰이던 곳도 있었고, 예배당도 있었어.
류블랴나 성은 이런저런 전시도 많이 진행되고 있고 상업적으로 개방이 되어 있었어.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는 성의 일부는 리모델링되어서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결혼식이나 이벤트로 성을 빌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둘러본 전시관들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형극 박물관이었는데, 마리오네트나 손가락 인형 등을 이용한 인형극에 대한 역사와 인형극에 사용되었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어. 직접 손으로 조종해볼 수 있기도 해서, 우리끼리 즉흥 연극을 만들어서 놀았어.
거기서 계속 재밌게 시간을 보내다가 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어. 시내 뷰가 좋을 것 같은 성의 탑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면 좋겠다 생각했지.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릴 겸 성의 탑 올라가기 바로 직전에 있는 류블랴나 성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비디오를 보러 갔어. 정해진 시간에만 상영하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 상영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었지. 이 비디오도 한국어 지원이 되더라고. 보통은 영어나 슬로베니아어로 상영을 하고 그 외의 언어는 오디오를 제공해서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되는 형태였어. 우리는 당연히 한국어를 선택했고, 직원분은 한국어로 세팅된 헤드폰을 건네주려다, 우리 셋 밖에 관람자가 없으면 한국어로 비디오를 틀어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한국어로 상영되는 비디오를 볼 수 있었어. 운이 좋았지.
비디오가 끝나고 성의 꼭대기로 올라갔어. 약간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본 시내는 정말 멋있었어. 날씨가 좋아서 아주 멀리까지도 잘 보였고, 눈 쌓인 알프스도 보이더라. 시간이 조금 지나니 붉게 물들어가는 시내가 너무 좋더라. 눈을 떼기 힘들었어. 탑 위에서 내려오기 싫을 정도였는데, 해가 거의 다 져 갈 때쯤 직원이 탑 위로 올라와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니 내려가 달라고 하더라고. 멋진 시내 뷰를 뒤로하고 내려오기가 너무나 아쉬웠지만 다음번에 또 올 수 있기를 기약하며 내려왔어.
성에서 내려와 시내에 도착을 하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어. 그래서 야경을 좀 보면서 걷다가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전날 도착한 둘째가 피곤해 하기에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서 집으로 갔어. 소시지와 쌀을 사서 대충 밥을 해 먹었지. 우리가 먹는 쌀이 없어서 비슷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는데, 이게 리조또용 쌀이어서 맛이 다르더라고. 쌀은 대실패였어. 그냥 날리는 쌀이더라도 롱 그레인을 살걸 그랬나 봐. 아무튼 이렇게 우리 여행의 첫날이 갔어. 아무 계획이 없어서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ㅎㅎ 그리고 난 슬로베니아가 아주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2019. 03. in Ljublj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