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토니아에서 보내는 편지

a letter from Postojna

by 주유가

도브리단! 오늘은 포스토니아에 다녀왔어. 들어본 적 없지? 나에게도 포스토니아는 좀 생소한 이름이었어. 사실 슬로베니아를 여행하기 전까지 슬로베니아의 수도가 류블랴나인 것도 몰랐으니 당연할 수도.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나라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것 같아 좋다. 그동안 이 나라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은 좀 아쉽지만 말이야.


포스토니아는 슬로베니아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곳이더라고. 여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굴이 있기 때문인데, 여기 말고도 여러 곳에 유명하고 비슷한 종유석 동굴이 있더라고. 아무튼 포스토니아 자체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어. 다운타운에서도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정도로.


수도인 류블랴나의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포스토니아로 향했어. 포스토니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향한 곳은 인포센터였어. 여행객으로서 제일 먼저 방문하기 딱 좋은 곳이잖아. 게다가 나는 어딜 가든 제일 먼저 인포센터를 가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포스토니아의 인포센터는 작지만 알찬 곳이었어. 마음에 드는 기념품도 아주 많이 팔고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가이드 분은 정말이지 너무나 고마운 분이었어. 우리가 포스토니아 동굴을 들러보고 스코얀 동굴에도 갈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곳에 가는 법을 알려주시면서, 겨울에는 동굴을 여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차가 없으면 오늘 오후에 가기는 힘들 거라고 하시더라고. 그리고는 우리 일정과 슬로베니아에 얼마나 머무는지 등을 물어보시더니 이렇게 저렇게 일정을 조절해주시더라. 그래서 우리는 그분 말씀대로 피란에 가는 날 조금 서둘러서 스코얀 동굴에 가보기로 했어.


사실 포스토니아로 출발하기 전에 둘째랑 일정을 정하는 문제로 싸운 후였거든. 우리는 계획이 없었고 우리가 정한 것이라고는 류블랴나에서 4박 5일을 있겠다, 슬로베니아에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정도였거든. 사실 독일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류블랴나에 갈지 말지를 정하지 못해서 한참 말이 많았기에 이 정도 정한 것도 류블랴나로 가기 이틀 전이었어. 둘째가 유럽이 처음이라서 가고 싶다는 곳이 있으면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는데, 한국에서 출국 전까지 너무나 바빴는 데다가 시차가 있어서 연락이 잘 안 되더라고. 자꾸 그때 가봐서 정하자라고 하더라고. 맘에 드는 숙소도 다 나가버리고 버스나 기차도 싼 티켓은 빠르게 매진되어 버리는데 말이야. 유럽 여행이 처음인 둘째는 유럽의 버스나 기차가 가격이 변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가격은 비싸지는데 다음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지. 전날 우리 셋이 모두 앉아서 계획을 세우던 중에 둘째가 잠들어 버린 거야. 시차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 막내랑 대충의 이야기를 나누고 루트를 짠 후에 아침에 둘째에게 그걸 공유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는데 그게 싸움이 된 거지. 내가 짜증 내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 같은데, 나는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더라고. 우리끼리 멋대로 일정을 정한 게 싫은 건지 아니면 계획을 세우고 싶지 않은데 계획을 세우자고 닦달해서인지.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포스토니아로 향했지만 어쨌든 좋은 가이드분을 인포센터에서 만나서 슬로베니아에서의 일정은 매우 잘 정할 수 있었어. 그 이후는 여전히 걱정이지만.


포스토니아 동굴로 걸어가는 길은 한적한 마을을 지나는 길이라 조용하고 좋았어. 날씨도 너무 좋아서 푸른 하늘을 보며 기분 좋게 걸어갔지.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엄청나게 넓은 주차장이 나오더라. 이 동굴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 곳인지 짐작이 갔지만 비성수기라서 그런지 그 큰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어. 하지만 막상 동굴 앞에 도착하니 단체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더라고. 우리가 다운타운부터 걸어오면서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걸까 싶더라.


포스토니아 시내의 인포센터에서 만난 가이드 분이 이 동굴은 굉장히 상업적인 동굴이라고 했었는데,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알겠더라. 입장료도 비싸고, 광고도 엄청나게 해대고, 사람도 많고, 동굴 안에는 열차가 있어서 열차를 타고 쉽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도 있었어. 입장권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동굴 안에 들어가는 것만 선택했어. 열차를 타고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데 정말 대단하다 싶더라. 동굴 안에다가 열차를 다니게 만들다니 말이야.


어떤 사람들은 이 동굴이 종유석으로 이루어진 동굴이라 한국에도 많이 있어 특별하지 않았다고 리뷰를 남겼더라고.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도 종유석 동굴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갔어. 처음으로 본 종유석 동굴은 그야말로 대단했어. 크기와 색과 모양이 모두 다른 종유석 혹은 석순이나 석주들이 빼곡히 차있는 그 모습은.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실제로 본 그 모습을 담지는 못했다.


이 동굴 안에는 동굴에서만 서식하는 동물들도 있는데 그중에 알비노 도롱뇽이 마스코트인가 봐. 어딜 가나 이 하얀 도롱뇽 기념품을 팔더라고. 인형이며, 자석이며, 여러 가지. 옛날 사람들은 이게 용의 새끼라고 믿었다나. 동굴 안에서만 서식하는 동물들을 볼 수 있게끔 따로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는데 거긴 가보지 않았어. 입장권이 따로 기도 하고, 너도 알겠지만 난 동물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하지만 동굴의 마지막쯤에 그 도롱뇽만 볼 수 있는 큰 유리박스가 있더라고. 이래저래 도롱뇽만 고생이다 싶음. ㅎ


돌아오는 열차를 타는 곳 앞에 기념품 샵도 있었어. 동굴 안에 기념품 샵이라니 ㅋㅋㅋ 대단하지.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익숙한 얼굴이 벽에 붙어있더라. 누구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봤는데 죠세프와 엘리자벳이었어. 그들이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나 봐. 이 동굴은 울림이 좋아서 가끔 공연을 하곤 한대. (그것도 동굴 생태계에 얼마나 안 좋을까 싶긴 하지만.) 그 황제 부부가 와서 관람한 적이 있는 듯하더라. 그렇다면 이 동굴은 그때 이전에 발견이 되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는 거겠지? 암튼 그 기념품 샵에서 편지를 써서 보내면 특별한 도롱뇽 도장을 찍어서 보내준다고 하더라고. 거기가 뭐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우체국이라나 뭐라나... 상업성 가득한 말인 듯했지만 거기서 엽서를 몇 장 썼어. ㅋㅋ


동굴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 배가 고프더라. 인포센터가 있는 시내 쪽으로 가서 식당을 찾아보았는데, 워낙 사람이 없는 동네라서 그런지 식당처럼 보이는 곳도 별로 없고,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지 문을 연 곳도 많이 없더라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꽤나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되었어. 내부가 근사해서 비싼 곳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다른 문 연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들어갔지. 밥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가격도 나쁘지는 않았어. 시키지도 않은 애피타이저까지 나오는 걸 보니 보통 레스토랑은 아닌가 봐. 아무튼 우린 한 달이나 여행을 다녀야 해서 돈을 아껴야 하는데, 오늘 좋은 레스토랑에 가버렸네.ㅎㅎ


동굴에 다녀오면서 이래저래 오전에 싸웠던 것은 풀렸지만, 이런 식으로 스리슬쩍 분위기 따라 풀리면 뭐가 원인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싫다니까. 어쨌든 슬로베니아 이후의 일정도 마저 짜야하고 말이야. 그래도 숙소로 돌아온 후에 막내가 독일로 돌아가버리겠다는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모두가 함께 다음 일정을 짤 수 있게 되었어. 싸웠던 것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털지 못한 것은 좀 찝찝하지만, 일단은 여행 계획을 조금이나마 짠 것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슬로베니아 여행을 한 후 크로아티아로 가기로 했어!


2019. 03. in Postoj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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