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얀에서 보내는 편지

a letter from Skocjan

by 주유가

도브리단~ 잘 지내고 있어? 벌써 슬로베니아에 온지도 며칠이 흘렀네.


오늘은 아침부터 일찍 서둘렀어. 오후에 가고 싶은 피란이 멀기도 했지만, 피란 가기 전에 스코얀 동굴을 가고 싶어서였지. 비수기의 스코얀 동굴은 하루에 두 번만 투어가 있는 데다가, 차 없이 가기도 힘들어서 일찍 출발해야만 했어.


우선 버스를 타고 동굴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디바차에 도착을 했는데 그곳에서부터 스코얀 동굴까지는 걸어가야만 했어. 디바차의 기차역에서 스코얀 동굴까지 운행을 하는 셔틀이 있었는데, 비수기에는 셔틀마저 축소가 되어서 오전에는 버스가 없었거든. 차가 많지 않은 작은 동네라서 택시를 잡기도 힘들고. 아무튼 스코얀 동굴까지는 걸어가야만 했는데, 45분~50분 정도? 한 시간 좀 안 되는 시간이 걸리더라. 처음엔 차도를 따라 걸어서 좀 위험했는데, 금세 작은 마을이 나와서 마을을 구경하면서 걸었어. 작은 교회도 있고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런 시골 동네였어. 좀 더 걸으니 산길이 나왔는데, 험하지 않았고 구경하면서 걸을만하더라. 좀 더 여유롭게 걷고 싶었지만 투어 시간 전에 도착하려고 좀 서둘렀어.


동굴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투어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더라고. 우리 빼고는 전부 차를 가지고 왔더라. 걸어온 사람은 우리뿐이었어. 투어 티켓을 사고 기념품 샵을 둘러보며 조금 기다리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이드를 해줄 분이 걸어오셨어. 약간 무뚝뚝한 인상으로 슬로베니아어로 한 번, 영어로 한 번 설명을 하더라. 동굴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산길을 따라서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야 했어. 가이드님의 뒤를 따라 모두가 함께 졸졸졸 걸어가는데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따라 소풍 가던 느낌이더라.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유의사항을 듣는데, 동굴에 손대지 마라, 사진 찍지 마라, 시끄럽게 하지 마라 그런 것들이었지. 동굴에 들어가서도 이 가이드님의 경고는 계속되었어. 특정 석순을 보여주면서 이게 다 사람들이 만져서 이렇게 된 거다, 만지지 마라 하면서 말이야. 나중에는 이 사람은 정말로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가이드님이 계속 경고를 하는 와중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더라. 슬로베니아어와 영어를 둘 다 못해서 경고를 못 알아들은 거겠지 싶다가도 욱하더라. 이 동굴은 유네스코 지정 유산이라 모두가 함께 보호해야 할 곳인데. 씁쓸했어.


아무튼 동굴은 굉장히 멋있었어. 포스토니아 동굴과 비슷한 종유석 동굴이라지만 좀 다른 느낌이 들었어. 빛이 없고 훨씬 어두워서 그런지 더욱 으스스한 느낌도 나고 말이야. 물이라도 똑똑 떨어질 때면 천장에 박쥐들이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내부 사진은 없지만 동굴 안에 커다란 협곡이 있었어. 우리는 그 협곡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는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게 골짜기 같기도 하더라. 동굴 안에 그렇게 커다란 협곡이 있다니 자연은 역시나 대단해. 너무 멋있었어. 처음 이 동굴을 발견한 탐험가 들은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이 협곡으로 들어오게 되었대. 그러니까 그들은 협곡 아래서 동굴 위를 올려다보았겠지. 이 동굴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루트가 많아서, 일부 구간은 매우 위험하다고 해.


동굴의 출구가 보이고 바깥의 빛이 들어오는 게 느껴질 때쯤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하더라고. 동굴의 끝 부분을 사진기에 담았지. 하지만 막상 나가서 확인해보니 그쪽이 입구였던 것 같더라. 동굴로 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산길을 조금 걸었는데, 그 길도 멋있는 풍경이 많았어.


산길을 조금 걸어 도착한 곳에는 케이블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케이블카를 타고 처음 모두가 만났던 건물의 뒤쪽으로 도착했어.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사무실과 인포센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니 작은 산책길이 하나 있더라고. 그 산책길을 따라가면 굉장히 멋있는 폭포를 볼 수 있다고 했어. 돌아가는 길에는 디바차 기차역으로 가는 셔틀을 탈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조금 애매하게 남아서 그 폭포를 보러 갈지 말지 고민이 되었어. 하지만 안 보고 가기는 아쉬워서 빠르게 뛰어갔다 오기로 하고선 산책길을 뛰어서 폭포까지 도착했지. 지금이 건기이니만큼 물이 조금 부족하기는 했지만, 엄청 멋있더라. 높디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과 그 절벽 끝에 지어진 건물이 그림 같아 보였어. 나중에 물도 더 많고 산이 푸르를 때 한 번 더 오고 싶어.


셔틀을 타고 디바차 시내로 온 우리는 버스도 자주 있지 않았기에 버스 시간표부터 확인을 했는데 1시간 정도 뒤에 버스가 올 예정이더라고. 그래서 시내에서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어.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동굴 투어를 하고 나니 배가 많이 고팠거든. 시골이라서 문 연 식당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더라. 스테이크와 파스타, 피자를 하나씩 시키고는 기다리는데, 20분이 지나도 메뉴가 나오질 않는 거야. 우리는 버스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한데.


좌불안석하다가 버스시간이 15분 남았을 때, 내가 서버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어. 우리가 버스시간이 촉박한데, 음식은 아직 멀었느냐, 포장이 가능하냐 하고. 그 서버는 미리 얘기를 했으면 스테이크는 시키지 말라고 했을 거라면서, 그릴 요리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 최대한 빨리 포장을 해주기로 했는데, 스테이크는 포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고. 그래서 스테이크만 먹고 피자와 파스타는 포장을 하기로 했어. 스테이크가 나오자마자 5분 만에 쓱싹 썰어서 셋이서 한 조각씩 입에 넣고 피자와 파스타는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지.


아니 근데 그 스테이크 진짜 너무 맛있더라.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굽기나 소스와의 어우러짐이 정말 딱 좋았어. 스테이크 위에 얹어준 베이컨도 최고였고, 간도 딱 맞더라니까. 이런 시골 마을에서 스테이크 맛집을 찾게 될 줄이야. 나머지 피자와 파스타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먹었어. 서둘러 버스를 타러 왔건만 조금 딜레이 되었는지 버스가 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 온 음식을 먹었지.


우리는 스테이크 맛의 여운을 간직한 채 슬로베니아의 서쪽 끝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어. 동생들은 다음번엔 스코얀 동굴 때문이 아니라 이 스테이크를 먹으러 디바차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더라.ㅋㅋ 다음 번에 너도 이 곳에 함께 올 수 있기를! 스테이크 먹으러.ㅋㅋ


2019. 03. in Skoc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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