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에서 보내는 편지

a letter from Piran

by 주유가

슬로베니아는 물론 내륙 지방에 자리 잡고 있지만, 지도에서 보면 서쪽 끝에 작은 부분이 아드리아해와 맞닿아 있어. 그곳으로 가면 바다를 볼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이탈리아까지 보인다고 해. 이 나라의 서쪽 끝으로 가본다는 생각에 좀 두근두근 했어. 얼마 전에 포르투갈에서 서쪽 끝에 있는 호카곶에 갔던 게 기억나기도 하고.


원래는 버스를 타고 피란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포스토니아 인포 센터에서 만난 분이 추천해 준 경로로 가기로 했어. 우리는 피란 옆에 있는 포르토로즈라는 도시에서 내렸어. 이 도시 역시 바다와 접해있고, 과거 항구로 유명했던 곳이야. 여기서부터 피란까지 걸어갈 수 있는 해변길이 그분이 추천해 준 경로였어. 지도 상에서 볼 땐 1시간이 채 걸릴 것 같지 않던 그 길은 실제로 걸어보니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는데, 우리가 중간에서 쉬고 군것질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걸어서 그런 것 같아. 그만큼 뷰가 좋았다고.


가다가 커다란 소나무를 만나면 나무 위에도 올라가 보고,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이면 아이스크림도 입에 하나 물고 그렇게 경치도 즐기고 재밌게 놀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피란에 도착했어. 피란은 생각보다 예쁘고 작은 마을이라 골목골목을 걸으며 돌아다니기 참 좋았어. 한가운데에 광장이 있고 좁은 골목길이 모두 광장으로 연결되는 오래된 유럽 소도시의 느낌이 물씬 났지.


바다를 좀 더 걸을까 산 위로 올라가 볼까 하다가 산 위에 있는 성에 가보기로 결정했어. 걸어오면서 바다는 많이 봤잖아.ㅋㅋ 그리고 막내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타입인 듯! ㅋㅋ


멀리서 성을 봤을 때는 꽤나 멀어 보였는데, 막상 걸어보니 그렇게 멀진 않더라고. 무인 자판기에서 티켓을 팔고 있었는데, 돈을 넣으면 토큰 같은 게 나와서 그 토큰을 성 문 앞에 설치된 기계에 넣으면 회전 바가 돌아가서 들어갈 수 있더라고. 생김새나 작동하는 법이 한국의 지하철 개찰구 같았어.


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 성벽에 오르니 피란 시내가 한눈에 보이더라. 바다와 맞닿아 있는 시내는 너무나 예뻤어. 맑은 날씨의 선명한 바다와 하늘은 피란 시내의 빨간 지붕들과 대조를 이루어 사진에 담지 못할 만큼 멋있는 풍경을 만들어 냈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북서쪽으로 이탈리아도 보이더라. 그만큼 날씨가 좋았던 것 같아. 운이 좋았지.


슬로베니아의 끝이기도 한 피란의 서쪽 끝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성에서 내려오니 해도 지고 있고, 버스가 곧 출발할 시간이라 포기해야만 했어. 다음번에 또 온다면 서쪽 끝까지 가서 해지는 걸 보고 싶어. 버스터미널에 서서도 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버스에 오르기가 싫더라. 얼마나 날씨가 좋았는지 해가 빨간 공처럼 바다에 둥실둥실 떠있었어. 사진으로는 빨간 해의 선명한 모습을 담을 수 없었지만, 그 또렷한 모습에 감탄에 감탄을 하며 버스에 올라탔어.


오늘이 슬로베니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니 너무 아쉽다. 여행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긴 하지만 말이야. 내일은 크로아티아로 갈 텐데 굉장히 기대하고 있어. 나는 처음 가보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곳이잖아. 동생들이랑 싸우지 말고 즐거운 여행이 계속되기를.ㅋ 너도 잘 지내고 있어! 또 편지할게.


2019. 03. in P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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