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from Zagreb
도바르단~! 잘 지내고 있나?ㅋㅋ 나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에 도착했어! 자그레브에서는 뭘 딱히 하려고 하지 않았어. 이 곳은 어짜피 이번 여행의 주목적지인 플리트비체에 가기 위해 들른 곳일 뿐이니까!ㅎㅎ 그래서 간단하게 다운타운만 둘러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매력적인 곳이더라고.
하루뿐인 자그레브에서의 일정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서 자그레브 시내에 있는 광장으로 향했어.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광장에 마켓이 서있는거야. 덕분에 구경도 하고 군것질도 하고 재밌게 놀았어. 어떤 나쁜 아줌마한테 인종차별도 당하고.ㅋ 피자 같이 생긴 넓고 얇은 빵을 파는 사람이었는데, 그 빵을 기다리는 나를 내내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빵이 완성되자 가장 못생기고 작고 끄트머리 부분을 골라서 주더라고. 나는 원래 이동네 시장 인심이 야박한건가 싶었는데 내 옆에서 빵을 기다리던 다른 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시며 나한테 괜찮냐고 하는거야. 그래서 당당하게 바꿔달라고 얘기했지. 왜 나만 이런거 주느냐고. 내가 먹을거 갖고 장난치는 건 못참는거 알지?
사실 슬로베니아에서도 몇 번 이런 기분나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데 티나게 뭐라고 한 건 아니니까 딱 대놓고 화내기도 뭐하고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싶기도 해서 그냥 넘어가곤 했었거든. 내 말을 못알아 듣는척 한다던가 하는 그런거 말이야. 뭐 이런것도 여행하면서 보고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부분일테니 타산지석 삼아야지. 어후 절레절레.
도넛처럼 튀겨서 만든 동글동글한 빵도 군것질 거리로 딱이었어. 튀겨서 맛없는건 없다며?ㅋ 튀긴 도너츠에 슈가파우더와 시나몬 가루, 초콜렛까지 뿌려주니 아주 맛있었지. 멀리서부터 츄러스 냄새가 나서 달려갔다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걸 프리툴레라고 부른다더라. 크로아티아의 전통 간식이래. 그치만 특별한 맛은 아니야. 다 예상 가능한 그런 단맛 가득 도넛이지.
암튼 시장에는 꽃가게도 한쪽에 늘어서있었고 광장 위쪽엔 파머스마켓으로 보이는 큰 시장도 있었어. 우리는 장난감을 팔고 계시는 할아버지랑 놀다가 기념품으로 장난감을 몇 개 구입했지. 사실 긴 여행 중이라 초반부터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았는데 신기한 나무 장난감이 많아서 사버렸어.
그리고는 광장에 있던 인포센터에서 챙긴 지도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보니 자그레브 대성당이 나오더라고. 엄청 위엄있는 건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한쪽 탑이 공사중이었어.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운이 좋지 않았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아주 오랫동안 공사중이었고 언제끝날지 모른다고 하더라.ㅋ 공사중인 부분에 외벽 사진인지 그림인지를 입혀놔서 원래 어떤 모양인지 볼 수 있게 해두었는데 사진찍어놓으니 제법 그럴싸하기도 하더라.ㅎ
성당 앞 쪽에는 아주 높게 서있는 성모마리아 상을 볼 수 있는데, 위엄이 대단하더라고. 대지진으로 성당이 무너지고 다시 지어졌을 때, 그 재건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대. 아, 그리고 성당 앞 쪽에 대지진으로 무너진 탑의 일부가 서 있어. 그리고 그 탑의 잔해 뒤쪽으로는 대지진이 일어났던 시각에 멈추어진 시계가 있지.
성당 한 쪽에는 성경에 나오는 두 강도 이야기를 표현한 조형물이 있었는데, 나도 막내가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냥 십자가 상이네 하고 지나쳤을 터였어. 성당 안나간지는 한참되어서 성경이야기도 다 잊어버린지 오래인데, 최근들어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막내는 이제 이런게 눈에 띈다고 하더라고. 역시 다 아는만큼 보이나봐.
성당 구경을 다 하고 난 우리는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이 도시에 있는 종탑에 올라가보기로 했어. 그 곳에 올라가면 방금 다녀왔던 성당과 광장이 한눈에 보인다고 하고, 우리는 어디든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같은 취향이 있었으니까. 대성당과 같이 유명한 산마르코 성당쪽으로 가면 있는 탑인데, 로트르슈차크 탑이라고 불러.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기억하기가 힘들었음.ㅋㅋ) 아무튼 골목 곳곳에서 화살표와 함께 '쿨라 로트르슈차크'라고 써있는 안내판을 볼 수 있어서 찾아가기 힘들진 않았어.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하긴 하지만 그렇게 비싸지 않고 시내 전경이 잘 보이는 뷰이기에 그만큼 가치가 있어. 올라가다 보면 대포도 볼 수 있는데, 매일 정오에 발사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안내문에 보면 귀를 조심하라고 되어 있어. 대포 소리가 어마어마한 듯. 실제로 못들어서 아쉽긴 하지만, 자그레브는 하루 일정으로 왔으니 다음에 또 언젠가 이 도시에 올 일이 있기를.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은 아주 좋았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거든. 꼬질꼬질한 지붕들에 오래된 도시의 느낌이 물씬나는 자그레브는 아주 딱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었어. 마치 올해 초에 포르투갈에서 느꼈던 그 느낌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때도 내가 말했었지, '저 꼬질꼬질한 건물들 좀 봐. 너무 좋아!' 라고.
탑 위에서 시내를 바라보면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타소리가 듣기 좋더라고. 덕분에 더 분위기도 좋고. 흐린 날씨가 조금 쌀쌀했지만 그 음악소리에 좀 더 즐겁게 신나게 길게 탑 위에서 풍경을 즐길 수 있었어.
내려와보니 그 음악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탑 아래쪽에서 기타연주를 하고 계시더라고. 유로 동전을 몇개 꺼내어 기타 가방에 넣어드리고 그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거기 한참있었어. 좋더라고.
아, 이 탑에 오는 길에 성지로 유명한 곳을 봤어. 스톤게이트라고 하는데 문 안쪽에 성모마리아 벽화가 굉장히 신성시 되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간다고 해. 이걸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는데, 이 길을 지나는데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딱 알겠더라고. 벽화 앞에는 꽃과 촛불들이 많이 놓여있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이 곳을 소중히 하는지 느껴졌어.
탑 근처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도 볼 수 있었어. 사진으로 봤을 때는 크로아티아의 색깔인 하얀색, 빨간색, 파란색이 섞인 지붕이 알록달록하니 귀엽기도 하고 멋있기도 한 듯 했는데, 우리가 자그레브에 도착한 날이 너무 흐려서 인지 그런 느낌은 안나더라고. 파사드의 조각들이 많이 손상되어 있고 벽도 낡은 느낌이라 굉장히 오래된 성당인 듯 했어. 그래도 지붕은 귀엽더라.
사실 우리가 크로아티아에서 자그레브를 먼저 찾은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환전과 한국음식 이었어. 독일에서 싸온 한국음식이 거의 다 떨어졌거든. 그래봤자 라면이랑 김 뿐이지만. 크로아티아는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르게 유로를 사용하지 않아서, 환전도 필요했고. 그 두 가지를 자그레브에서 해결하고 싶었던건, 우리가 두보르브니크까지 남쪽으로 계속 여행을 할텐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물가가 비싸진다는 얘기를 들어서야.ㅋㅋ
아무튼 대충 관광을 끝내고 검색해서 찾아둔 한인마트를 찾아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그 골목길이 아주 마음에 들더라구. 좁은 골목길에 양옆에는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내가 딱 좋아하는 그런 곳이었어. 상점에서 이것저것 구경도하고 기념품도 사면서 한인마트에 도착해 라면을 몇 개 구입했지.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닌 우리는 슬슬 배고픔에 지쳐가고 있었어. 사실 탑에서 내려올 때부터 배는 고파지기 시작했는데, 마땅한 식당을 못찾아서 계속 여기저기 둘러보기만 하고 헤매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제 한계치에 다다른거지. 그래서 구글 맵에서 평점좋고 크로아티아 음식을 한다고 되어 있는 곳을 아무데나 가자고 한 뒤 한곳을 찍어놓고 걸어갔어. 식당이 많이 있는 골목이 나오더라고. 그 골목도 꽤나 맘에 들었어. 오래된 카페도 있고 힙한 느낌으로 치장한 맥주 탭하우스도 있었거든. 그 골목의 끝 쯤에 우리가 찾는 식당이 있었어. 생각보다 멋있는 식당이라 비쌀까 걱정이 되었는데, 가게 앞에 있는 메뉴판을 보니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듯 해서 들어갔지. 어짜피 남쪽으로 갈수록 물가가 비싸진다면 여기서 좋은 레스토랑을 가자는 마음도 있었고.ㅋ 앞으로는 식당은 꿈도 못꿀테니 마지막 만찬을 즐기자면서.
그런데 생각보다 이 레스토랑 너무 좋은거야.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짱 좋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2층 바깥쪽에 앉았더니 아래로 식당가 골목길도 보이고. 그래서 와인도 한잔 시켜먹고 디저트까지 다 먹고 나왔지 뭐야. 알고봤더니 여기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이더라고. 어쩐지...ㅎㅎ
야외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어서 그런지 해질녘이 되니까 좀 쌀쌀하더라구. 그 식당에 좀 더 여유롭게 있고 싶었는데 슬슬 집으로 갈까해서 걸어 나왔어. 한참을 집을 향해 걸어가다가 아쉬워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 집에 가기가 싫어졌어. 그래서 집에 동생들을 보내고 나는 다시 나와서 자그레브 시내의 밤을 구경했어.
낮에 가보았던 곳을 다시 가서 조명이 켜진 모습을 보는 것 뿐이었지만 다른 느낌으로 멋있더라. 성당은 멋있는 조명아래 조용하게 서 있었고, 광장은 낮처럼 활발하진 않지만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분주하게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었어. 골목의 술집들은 세인트 패트릭의 날을 기념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아주 시끄러웠고.ㅎㅎ
크게 볼 것 없을거라 생각했던 자그레브인데 막상 하루만 있다 가려니까 아쉽더라. 식당이 많은 골목길에서 맥주도 한잔하고 광장에서 보았던 서점에서도 좀 더 있고 싶었는데. 여행의 아쉬움이야 머문 기간에 상관없이 항상 남는 것일테니 받아들여야지.ㅎㅎ
내일은 드디어 플리트비체로 간다! 두근두근! 아주 기대가 커.
크로아티아에서 첫 날은 이렇게 가는구나.ㅎ 너도 오늘 하루 잘 보냈기를!
2019. 03. in Zagr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