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세 번 방문했다. 결혼 전에 마음 심란한 일이 있어 경주를 혼자 한 번 방문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첫째만 데리고 한 번, 둘째만 데리고 또 한 번 방문했다. 여행지라는 것이 한 번 방문하면 굳이 다시 방문할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 있는 반면에, 몇 번을 방문해도 만족감을 주는 곳도 있는데, 경주는 후자에 해당한다.
첫째를 데리고 경주를 방문했을 때는 지진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고, 둘째를 데리고 경주를 방문했을 때는 코로나 시국이었다. 덕분에 두 번 모두 사람이 붐비지 않은 시기여서 돌아다니기는 편했다. 첫째와 여행했을 때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묵었는데, 당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직원이 지진 이후 경주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젊은 사람들은 경주를 떠나려는 생각이 강해지고, 경주 내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분양이 되지 않아 힘들어했다고 했다. 그리고, 경주 시내 카페에서 누군가 물건을 떨어뜨리기만 해도, 관광을 온 사람은 차분히 앉아있는 반면에 경주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만큼 지진이 경주에 준 충격은 컸던 것 같다.
문화유적을 품고 있는 도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경주는 약간 색다른 느낌을 준다. 박물관 한편에 과거를 모아 두고 있다기보다, 그냥 과거와 현재를 모두 같은 공간 안에 두고 있는 느낌이랄까. 해외에 있는 도시 중에서 로마가 주는 느낌과 어쩌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도시의 전성기가 워낙 오래전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경주에 있으면 왠지 옛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고향 인천에서는 한 때 경주가 수학여행의 메카였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이라고 하면 다들 경주로 갈 것이라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제주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제주도 수학여행이 그다지 부담스럽게 여겨지지 않게 되면서, 그나마 유지하던 1순위 수학여행지의 지위조차도 내어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도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경주를 찾는 학생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찾아오는지, 아니며 그때와는 다른 방문객들이 많이 생겼는지 궁금하다.
경주에 올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방문한 곳이 불국사다. 불자는 아니지만, 사찰이 주는 느낌은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불국사는 나를 품어주는 느낌이 들어 좋아한다. 경주를 혼자 방문했을 때는 불국사를 방문하는 날에 비가 왔는데, 비 때문인지 사찰에 방문객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하면서, 인적이 없는 사찰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빗소리가 마음을 어찌나 편안하게 해 주던지, 심란하던 마음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돼버렸다.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있다가 불국사를 떠났고, 그렇게 내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과 방문했을 때는 첨성대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많이 움직였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볼 것이 많고, 숙박 시설이나 음식점도 잘 분포되어 있어 베이스캠프로 삼기 좋은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오고 가며 첨성대를 많이 보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마치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는 것처럼 첨성대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에펠탑처럼 거대한 건축물도 아니고, 복잡한 기술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첨성대가 그리는 곡선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반복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으면 말이라도 걸었을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경주는 문화유적이 아니더라도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조용하게 지내고 싶을 때 경주에 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넓은 공원도 있고, 호수도 있고, 가까운 동해로 이동하면 바다도 있으니, 책 읽고 글 쓰면서 한적하게 보내기에 참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이 퍼지는 시간에 첨성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언젠가 혼자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기면 경주를 다시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