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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un 27. 2022

권한과 책임

일하는 현장에서는 입장과 입장이 충돌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그런 충돌의 양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로 더 많은 권한을 가지려고 충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더 적은 책임을 가지려고 충돌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런트 엔드 개발자와 백 엔드 개발자의 작업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것들이 존재한다. UI 디자이너와 기획자의 작업에도 경계가 불분명한 것들이 존재한다. 보통은 프로젝트 초기에 그런 것들에 대해 정리를 하고 시작하는데, 종종 입장과 입장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충돌이 때로는 서로 가져가려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서로 미루려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권한과 책임 중 어느 쪽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권한과 책임은 따로 떨어질 수 없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이 생기고, 책임을 지는 만큼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둘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을 간혹 관찰하게 된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로운 것은 더 취하려 하고, 이롭지 않은 것은 덜 취하려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생각한다면 이로운 것을 더 가지고 이롭지 못한 것을 덜 가지려는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조직은 혼자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권한과 책임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할당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권한을 더 갖고 누군가는 책임을 더 갖기보다는, 모두가 권한과 책임을 등가로 가지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상적인 상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상적인 상태에 더 근접하는 것은 가능하다.


권한과 책임이 함께 움직이지 못하는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위임'일 것 같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무언가를 위임할 때는, 권한과 책임을 함께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리더들은 책임만 위임하려 하고, 반대로 어떤 구성원들은 권한만 위임받고 싶어 한다. 실무자의 작업물에 대해 디렉터가 결정권을 행사하려면, 그 작업물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디렉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실무자 역시, 작업물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자 한다면, 최종적인 책임 또한 넘겨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구성원에게 책임만 요구하는 리더나, 리더에게 권한만 요청하는 구성원이 간혹 존재한다.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권한을 확대하려는 경향보다 책임을 축소하려는 경향이 조금 더 흔하게 관찰되는 것 같다. 사람은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다는데, 권한과 책임에 있어서도 책임에 더 민감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어쩌면, 사람들이 조직에서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있던 시절에는 권한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임은 권한으로부터 발생하고, 권한 역시 책임으로부터 발생한다. 더 많은 권한을 획득하려면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에 압도당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역량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책임을 늘리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책임만큼 더 많은 권한과 보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조직은 조직대로 구성원의 안전감을 확보해주어야겠지만, 개개인도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야 할 필요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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